다브다 공연 후기

WE MIGHT BE A LOVELY MOON, DABDA

by 황인경


이음매 없이 매끈한 작품을 보통은 수작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밴드 다브다의 지난 공연은 붙이고 기운 자국이 선명했다. 끊어진 부분을 묶고, 재질이 다른 천을 덧씌운 듯한 오돌토돌함. 그리고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공연장을 나서며 그 오돌토돌한 표면을 쓰다듬어 보았다.

연주가 엉성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연주는 훌륭했고, 공연장 사운드도 좋았고, 셋리스트 구성도 탁월했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스한 공연을 보았다고 말하기엔 좀 아쉽다. 내 감상은 수없이 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한 편의 영화를 본 뒤의 그것과 비슷했다. 단지 '멋진 공연'보다 더 근사한 무언가를 느꼈다고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지난 주말 다녀온 이 공연은 밴드를 탈퇴하는 요셉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물론 아쉬운 일이지만 이 하나의 이슈 또한 이 공연을 특별하게 만드는 작품의 한 요소였다. 평생 몇 번 만날 수 없는 멋진 석양을 보면서 그래도 살아있길 잘했다고 느끼는 것처럼.

무대 위 멤버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포효하기도 했고 몰입하기도 했다. 사랑과 미움, 그리움과 미안함이 무대 위 연기 속에 섞였다. 마음을 다해 다른 멤버의 연주에 자신의 연주를 포갰다. 밴드의 연주란 동시에 그리는 그림 같아서 믿고 자신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나는 그날 멤버들이 진심을 다해 몰입했고, 그 감정의 순도가 정말 높았다고 생각한다. 공연 후기로서 진부한 표현 같지만 단순히 좋은 연주를 보여줬다는 의미가 아니다. 맥박이 뛰고 살이 찢어지는 시간이었고, 먼지를 뒤집어 쓴 사람의 걸음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에 빗대본다면, 능숙한 연주자는 테크닉을 이용해 자신의 연주에 '연기'를 넣을 수 있다. 단순한 예시가 되겠지만,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악기를 세게 치면 된다. 노래에 슬픈 느낌을 주려면 저음이 울리도록 울림통을 조절하며 음을 충분히 길게 내면 된다. 여기에 진짜 같아 보이는 얼굴 표정 연기를 더할 수도 있다. '마법' 같은 연주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완성된다.

물론 기술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의 일상은 열심히 쌓아 올린 기술들로 구성되니까. 다만 가끔은 궁금하다. 기술을 넘어선 마법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그게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지.


나에게 다브다의 이번 공연은 그 답을 들려준 그런 공연이었다. 멤버들은 그날 생애 가장 완벽한 연주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애매한 박자를 연주한 멤버 때문에 마주 보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공연 끝나고 아쉬웠던 연주가 머리에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날 그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가사와 사운드와 리듬을 마법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머리 위에 떠오른 그 달을 그들도 보았을까? 아니 못 보았을 것 같다.

무대의 주인은 밴드일까 관객일까. 무대 위 멤버들이 그날 어떤 정점에 서있었는지 스스로 몰랐더라도 어쩔 수 없다. 파도는 바다의 일이지만 그걸 보는 일은 해변에 앉은 사람의 몫이니까. 그래서 나는 고마웠다. 그 풍경을 보여준 그들에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준 요셉에게 특별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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