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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경 Jan 14. 2023

<도토리 모으기> 공연 사진 기록

2022년 황인경 연말공연 후기

*모든 사진 기록은 포토그래퍼 채보경님이 작업해 주셨습니다.

나는 매사에 장난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클래식하지만 불편한 옷을 갖춰 입고,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와인잔을 들어 올린 것도 오직 장난을 위해서다.

사실 나름대로 진지한 마음으로 한껏 임한다고 해도 장난스레 보였을 것이다.

그게 어떻게 보면 내 본질이기도 하고 내 한계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그런 내 모습이 좋다.


공연의 포스터와 굿즈 작업에 디자이너 추지원님이 함께해 주셨다.

사실 도맡아 했다고 하는 편이 적합할 것 같다.

잔치와 파티의 중간쯤에서 어중간하게 만나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데모 트랙으로 만든 MR에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평소 라이브로 연주하며 부르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어색하긴 했다.

그렇지만 한 해 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들려주겠다고 사람들을 불러놓고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얼렁뚱땅 때우고 싶진 않았다.

(전기뱀장어의 노래 두 곡과 커버곡인 MR.2의 <하얀 겨울>은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했다.)


앨범 발매를 위한 후원회 발족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공연이니 후원회 공식 행사가 있는 것이 마땅하다.

나름대로 개회 선언도 하고, 회칙도 공유했다. 회원증도 관객들에게 나눠주었다.




MBTi 검사의 네 번째 자리가 강렬하게 P로 수렴하는 나는 계획을 세우는데 영 재능이 없다.

작년 어느 날 정규 앨범을 발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전체 예산을 계획하는 일도, 앨범의 윤곽을 그리는 일도 차일피일 미뤘다.

어차피 스케일이 큰 건 머릿속에 다 안 들어온다는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냥 도토리를 모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하나둘 줍다 보니 어느새 주머니가 다 차 있었다-‘ 같은 식이 나는 좋다.


어쩌면 나의 정신은 농경 시대에 머물러 있는 거 아닐까?

얼음이 녹고 개구리가 울면 씨를 뿌리고, 달이 크고 밤이 길어지면 팥죽을 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날짜나 연도가 지나가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똑같은 하루인데 붙이는 숫자가 다른 게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연말 공연을 하겠다고 생각한 건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많은 것들이 바뀌고 흔들리는 와중에 그래도 내 손에 아직 쥐고 있는 게 어떤 것들인지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공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분명했던 것들이 좀 더 명료해졌고, 내 나름대로는 연말 푸닥거리도 되었다. 


2022년, 사회적으로도 나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했던 일 년이었다.

온갖 것들이 동시에 떠올라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지만, 제대로 끝내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중간에 흘린 것도 좀 있었지만 자세를 낮추고 하나둘 주워온 도토리가 꽤 되는 것 같다.

주머니를 열어 보이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 듯한, 그런 공연이었다.

‘이것 봐요. 꽤 되죠?’



셋리스트


1 모랑모랑

2 날씨 때문에

3 탠저린 (전기뱀장어)

4 동심원

5 장마

6 다이어리

7 하얀 겨울 (Mr.2 cover)

8 겨울나무

9 빅뱅이론

10 타고난 길치

11 저녁의 노래 (전기뱀장어)

12 어둠의 저편

13 고요한 슬픔과 부드러운 밤의 온기

앵콜 - 동심원,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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