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황인경 연말공연 후기
*모든 사진 기록은 포토그래퍼 채보경님이 작업해 주셨습니다.
나는 매사에 장난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클래식하지만 불편한 옷을 갖춰 입고,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와인잔을 들어 올린 것도 오직 장난을 위해서다.
사실 나름대로 진지한 마음으로 한껏 임한다고 해도 장난스레 보였을 것이다.
그게 어떻게 보면 내 본질이기도 하고 내 한계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그런 내 모습이 좋다.
공연의 포스터와 굿즈 작업에 디자이너 추지원님이 함께해 주셨다.
사실 도맡아 했다고 하는 편이 적합할 것 같다.
잔치와 파티의 중간쯤에서 어중간하게 만나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데모 트랙으로 만든 MR에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평소 라이브로 연주하며 부르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어색하긴 했다.
그렇지만 한 해 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들려주겠다고 사람들을 불러놓고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얼렁뚱땅 때우고 싶진 않았다.
(전기뱀장어의 노래 두 곡과 커버곡인 MR.2의 <하얀 겨울>은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했다.)
앨범 발매를 위한 후원회 발족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공연이니 후원회 공식 행사가 있는 것이 마땅하다.
나름대로 개회 선언도 하고, 회칙도 공유했다. 회원증도 관객들에게 나눠주었다.
MBTi 검사의 네 번째 자리가 강렬하게 P로 수렴하는 나는 계획을 세우는데 영 재능이 없다.
작년 어느 날 정규 앨범을 발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전체 예산을 계획하는 일도, 앨범의 윤곽을 그리는 일도 차일피일 미뤘다.
어차피 스케일이 큰 건 머릿속에 다 안 들어온다는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냥 도토리를 모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하나둘 줍다 보니 어느새 주머니가 다 차 있었다-‘ 같은 식이 나는 좋다.
어쩌면 나의 정신은 농경 시대에 머물러 있는 거 아닐까?
얼음이 녹고 개구리가 울면 씨를 뿌리고, 달이 크고 밤이 길어지면 팥죽을 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날짜나 연도가 지나가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똑같은 하루인데 붙이는 숫자가 다른 게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연말 공연을 하겠다고 생각한 건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많은 것들이 바뀌고 흔들리는 와중에 그래도 내 손에 아직 쥐고 있는 게 어떤 것들인지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공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분명했던 것들이 좀 더 명료해졌고, 내 나름대로는 연말 푸닥거리도 되었다.
2022년, 사회적으로도 나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했던 일 년이었다.
온갖 것들이 동시에 떠올라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지만, 제대로 끝내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중간에 흘린 것도 좀 있었지만 자세를 낮추고 하나둘 주워온 도토리가 꽤 되는 것 같다.
주머니를 열어 보이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 듯한, 그런 공연이었다.
‘이것 봐요. 꽤 되죠?’
셋리스트
1 모랑모랑
2 날씨 때문에
3 탠저린 (전기뱀장어)
4 동심원
5 장마
6 다이어리
7 하얀 겨울 (Mr.2 cover)
8 겨울나무
9 빅뱅이론
10 타고난 길치
11 저녁의 노래 (전기뱀장어)
12 어둠의 저편
13 고요한 슬픔과 부드러운 밤의 온기
앵콜 - 동심원, 장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