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원 조각 모음
나는 밴드 전기뱀장어의 멤버이다. 사실 멤버가 하나뿐인 밴드라서 밴드라고 불러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오랜 시간 밴드로 활동해 왔으니 일단은 그냥 밴드라고 하기로 했다.
전기뱀장어가 원래부터 원맨 밴드였던 건 아니다. 2009년 겨울 처음 결성했을 때는 네 명의 멤버로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이 오고 갔다. 세 명이 되었다가 두 명이 되었다가 이제는 혼자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 발매한 정규 3집 앨범 [동심원]은 혼자가 된 이후 발매한 앨범이다.
앨범 소개글을 보통 직접 작성하는 편인데, 이번 앨범의 소개글은 여러 번 고쳐 썼다. 폐기한 조각글 중 하나는 멤버 변동에 관한 소회를 담은 내용이었다. 요약하자면 ’멤버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는 동안에도 황인경은 자리를 지켰고 새 앨범을 작업해서 발표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문단의 마지막은 ‘왜 계속 하는 걸까’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정말로 ‘왜 계속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소란스러워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기 힘들어 그 조각글은 결국 폐기하고 말았다.
사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면 이런 일을 제대로 해나갈 수가 없다. 도무지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니까. 당장 정규 앨범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만 하더라도 발매 이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일이 요원하기만 하다. 유명세와 스타덤은 어떨까? 대중의 선택을 받아 인기가 많아지는 일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고 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사실 그게 일 순위는 아니다. 대중의 취향은 다양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은 있으니 인기가 생기려면 대중의 수요가 많은 음악을 만드는 편이 유리하다. 나로서는 창작의 시작점이 ‘사람들은 무얼 듣고 싶어 할까’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인 이상 유행을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
요즘은 새 음반을 전달하기 위해 주변 동료, 작업자를 만나는 일이 잦다. 이번 앨범의 믹싱, 마스터링을 담당해 준 재민 씨와 만났을 때 저 폐기한 소개글에 관해 얘기했다. 이런저런 푸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재민 씨는 음악을 수단 삼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멋진 음악을 만드는 일 자체가 목적인 사람 같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부류임을 알았다. 얼마간은 고달프겠지만 이게 내 인생이구나 생각하니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 마음에 드는 앨범을 만들었으니 흥행 여부를 떠나서 이번 앨범은 일단 목표 달성이다.
벌써 다음에는 어떤 곡을 작업할까 이른 기대를 하는 요즘이다. 물론 제작비가 좀 생겨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