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최근작들을 보고.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중 <에이스 그레이드>라는 영화가 있다. <문라이트>(2016), <레이디버드>(2017) 등 힙스터 명작을 만든 제작사 A24의 작품으로 10대 소녀 성장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 보 번햄은 어린 나이에 유튜브로 커리어를 시작한 코미디언으로, <에이스 그레이드>가 그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얻은 90년대생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여타 동시대 영화와 시각적으로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스마트폰 화면과 그것에 몰두해 있는 캐릭터들을 적극적으로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새롭다.
2000년대 말 아이폰 3세대가 나오고,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스마트폰은 애어른 할 거 없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이상하리만치도 그것은 영화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등장하면 주로 통화, 카메라, 뉴스 검색 용으로만 나오고 실제로 스마트폰을 오래 쓰는 용도인 소셜미디어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이상현상을 유튜브의 Nerdwriter가 이미 분석했다. (Why Are There So Few Smartphones In Popular Movies?) 영상은 그 이유를 스마트폰에 대한 대중의 혐오 감정에 기인하고 있다. 대중은 스마트폰을 달고 살면서도 그것이 우리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동시에 혐오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CWg6KJgjeI
실제로 인물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화면은 보기에 불편하다. 휴대폰이나 PC 컴퓨터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영화 스크린에 종종 등장했지만, 청춘영화에서 자주 쓰여 고유의 몽글몽글한 감성을 자아냈고 스파이 영화에서 등장하면 첨단 하이텍의 위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반면에 <에이스 그레이드>에서 등장하듯, 2010년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그렇듯이 스마트폰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휴대폰만 보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굉장히 거북하다. 이것은 <골목식당>이나 <짠내투어>처럼 요즘 예능에서 출연진에게 고프로나 셀카봉을 하나씩 쥐어주고 공공장소에서 혼자 카메라를 보고 떠드는 모습을 TV로 볼 때 느끼는 거북함과 동일한 맥락 선상에 있다. 공공장소에서 크게 떠드는 모습이 진상인 건 당연지사고, 그룹끼리 이동하고 있고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이미 있는데 그 안에서 또 자기만을 찍는 카메라를 다 들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에이스 그레이드>에서도 친구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는데 다 휴대폰을 보면서 얘기를 한다든지,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데 밥그릇을 앞에 두고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을 하고 있는 장면이 마찬가지로 불쾌하다. 비슷한 불쾌함을 자아내긴 하지만 하나는 의도하지 않았고, 하나는 치밀하게 계획됐다는 점에서 각 사례의 성취는 극명히 다르다. 이 불쾌함의 원인은 홍상수 영화의 아저씨들이 하는 대화를 들을 때 한국인이 느끼는 불편함과 비슷하다. 우리 삶과 극도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의 개념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듯한데, 스마트폰으로 상당수의 시간을 허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그 현실을 싫어하기에 그것을 현실적으로 연출한 것을 스크린에서 목격할 때 불편한 것이다.
여기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최근 영화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2014), <퍼스널 쇼퍼>(2016) 그리고 <논픽션>(2018-미개봉작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했다)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의 영화가 위 작품들과 다른 점은 디지털 디바이스 화면을 보여주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자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해당 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덜 혐오스러운 인간 군상이고, 영화 샷-리버스 샷으로 관객이 스크린 속 스크린이라는 이미지에 익숙해지도록 트레이닝을 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덜 혐오스러운 인간 군상이긴 하지만, 그들 또한 우리가 대놓고 인정하기 무안한 일을 디지털 기기로 한다. 예를 들어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명망 높은 중년의 여배우 '마리아'(줄리엣 비노쉬)가 침대에 누워 자신과 함께 연극을 하게 된 신인 여배우 '조앤'(클로이 모레츠)를 아이패드로 검색한다. 체면도 없이 자극적 기사를 타고 타면서 마리아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조앤이 했던 인터뷰, 조앤이 찍힌 파파라치 사진을 보며 깔깔 웃는다. <논픽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작가이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전자책의 인기를 문제시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전자책으로 책을 즐겨 읽는 등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2017년 상반기에 정성일 평론가가 씨네21에 기고한 열 페이지가 넘는 <퍼스널 쇼퍼> 평론에서 지적했듯이,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디지털 디바이스의 스크린을 관객의 불쾌함을 자아내지 않으면서 영화 이미지의 제재,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들여오기 위해 관객을 '훈련'한다.(온라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듯하다. 씨네21 1094호에 '정성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론'으로 실려있다.) 정성일 평론가가 지적한 부분은 <퍼스널 쇼퍼> 초반부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맡은 주인공이 버스에서 동영상을 보는 장면이다. 여기서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마치 후반부에 자주 등장할 스크린-주인공의 숏-리버스 숏에 관객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두어 번 훈련을 시키는 듯하다. 그래서 이후 스크린-주인공의 화면 전환이 오가도 관객은 휴대폰에 몰두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혐오감이 들지 않고 스크린 속 텍스트를 읽는 속도에도 익숙해진다.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디지털 디바이스 화면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영화 화면에 도입하고 있는 것은 '현실 직시'라는 점에서 상당히 용감하고 유의미하다. 그는 현재 여타 감독들이 피하려고 하는 문제를 고민하자고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제안하고 있다. 디지털 디바이스를 외면하는 경향은 영상 속에서 지적한 마블 영화뿐만 아니라 소위 '예술 영화'에서도 보인다. 예를 들어 <레이디 버드>(2017)의 그레타 거윅은 인터뷰에서 '10대의 이야기를 휴대폰과 SNS를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배경을 2000년대 초반으로 했다'라고 밝혔다. (https://www.52-insights.com/greta-gerwig-i-have-no-desire-to-be-beyonce-acting-ladybird/) 그 외에도 넷플릭스 영화, 드라마를 포함한 각종 미디어에서 보이는 '뉴트로' 웨이브 또한 스마트폰에 온 신경을 뺏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혐오 혹은 공포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많이 보여주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가 늘 좋지는 않다. 혹자는 <퍼스널 쇼퍼>가 '영매'라는 동양적 소재로 칸에서 과대평가받았다고 평했으며, 필자가 조금 일찍 관람한 <논픽션> 또한 전작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 비하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하지만 다작을 하고, 지속적으로 용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늘 차기작이 기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