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이 Aug 25. 2019

사랑에 대하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_『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_알랭 드 보통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실 '사랑에 대하여'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지었지만, 그 누구도 사랑에 대해서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단어가 그렇듯이 단어 하나에 딸려오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 추억들은 각자마다 다른데, 사랑이라는 단어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몇 날 며칠은 기본이고, 1년, 아니 평생이 걸려도 그 의미의  명쾌한 대답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랑은 우리의  삶과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사랑은 우리의 일상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너무나 익숙하게 다뤄지는 소재인데도 알랭 드 보통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랑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만든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랑을 철학과 연결시켜 새롭고 신선하게 사랑에 관한 깨달음을 얻게 하고 철학이라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주제를 그의 유머로 승화시키는,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라는 부분과 '"나"의 확인'이라는 부분이다.



  01.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나는 보통 내  친구들이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 어때?"라든가 "너의 마음은 어때?라고 물어본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주인공인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나'는 '클로이'라는 여자를 비행기 옆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나'는 '클로이'와의 낭만적 만남은 누군가가 "운명의 줄들을 잡아당기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결과로 보며, '클로이'와의 대화 몇 번으로 이미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당연하게도 이 둘은 비행기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로 연인 사이가 되고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된 요리이다. 이 요리에는 철학적인 이야기 한 스푼, 그의 유머 한 스푼이 적절히 조화되어 새로운 관점으로 사랑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새로운 관점 중 하나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라는 부분의 내용이다.



 '나'는 직장동료 '윌'과의 대화에서 '클로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윌은 묻는다. "그 여자에게서 뭘 본 건데?" 이 질문의 담겨있는 의미는 이러하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또는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다고 생각할 만한 내 연인의 행동을 나는 정말 미친 듯이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윌'의 질문에 대해 나중에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윌의 질문 덕분에 한 사람에게 속해 있는 특질과 연인이 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특질 사이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122p.)


 

 '그녀에게서 무엇을 봐?'라는 질문을 읽고 나는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내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는 방식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이처럼 당연한 이야기를 신선하게 깊은 통찰력으로 설득시킨다는 점에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었다.





02. "나"의 확인



  우리들 각각의 '나'는 어떻게 규정되고 확인될 수 있을까? 스스로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나'가 확인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서 '나의 확인'은 더 자주 더 풍부하게 나타난다. 알랭 드 보통은 의미론적으로 볼 때 사랑과 관심은 거의 맞바꾸어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그 관심의 정도도 깊어지기 때문에 관심에 의한 '나의 확인'은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나의 확인'은 다른 사람에 의해 정체성이 좌우될 위험이 생긴다고 알랭 드 보통은 이야기한다. 또 그는 자아는 외벽이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자기규정적인 형태가 없는 아메바에 비유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자아가 아메바에 비유될 수 있다는 점이 나는 정말 흥미로웠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의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



지하철 안에서의 '나'는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삐쭉삐쭉한 아메바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나'는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하기 때문에 아메바의 외벽은 굉장히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나'는 솔직히 어색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는 내성적인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스스럼없이 비밀을 이야기하거나 거리낌 없이 말을 걸 때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모든 모습이 '나'라고 해도 어색하고 혼란스러웠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비유를 마주했을 때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이렇게 표현될 수 있겠구나." 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 본 적은 없는데, 이 표현을 읽고 이렇게 설득력 있는 비유 표현을 사용하는 작가라면 꼭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첫 작품으로 우리 나이로 스물다섯 살쯤 되었을 때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젊은 나이임에도, 다섯 살 어린아이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우리들에게 익숙한 그 사랑에 대해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또 재밌게 이 책을 써냈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웠다. 또 가장 놀라웠던 건 내가 그동안 설명하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속 시원히 표현해 주었다는 점이 통쾌했고 재밌었다. 모든 사랑을 시작하는, 또 사랑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랑의 끝자락에 서 있는 분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확인' 부분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실으면서 이 글을 마친다.



…….(중략)  오래전부터 일요일 저녁이면 우울했다. 죽음, 끝내지 못한 일, 죄, 상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클로이는 신문을 읽었고, 나는 창밖의 차량과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클로이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 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 〔그리고 어쩌면 균형이 잡히지 않은〕 사랑을 느꼈다. 고아에게 고아라고 일깨워 줌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142p.                                                                                                                






+


*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