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지옥변
심해 동물의 90퍼센트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낸다. 의심할 것도 없이,
생물발광은 이 행성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의사소통 방법이다. _ 심해 | 클레르 누비앙
發狂해야만 發光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 그리고 이창동의 『버닝』은 모두 예술성, 광기, 욕망, 파멸이라는 키워드 아래 무언가를 태워 궁극의 예술에 도달하려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차갑다못해 뜨거움을 느끼는 저온화상 상태의 심상을 피부로 체험케하는 지옥변의 요시히데 . 오소소 소름돋게하는 기묘한 광인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다.
반면 광염소나타의 백성수는 타오르는 불꽃을 만져보기를 종용하는 인물이다. 온도는 다르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던 심미주의자, 유미주의자 김동인은 류노스케를 좇아갔음이 유력하다, 상당 부분 유사한 아취를 풍긴다. 현대물같은 세련된 느낌도 준다. 허나 퍽 작위적이다. 학계 용어로 쌩또라이
버닝의 종수는 결이 다르다. 하드 웨어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뜨겁게 닳아오르지만 작 중 작가ㅡ가되리ㅡ라는 인물은 냉소로 가득차있다. 그의 광기는 불을 마주하며 뜨거워진다. 모조리 태운후에는 차갑게 '쓰는'사람.
發狂한 후 發光하고 소설이라는 예술로 소통하는 존재.
재탄생이다.
한자 '狂'에서 개(犬)는 문명 바깥, 본능, 경계 밖의 존재, 왕(王)은 문명, 질서, 사회 구조를 상징한다. 이 둘이 결합된 '狂'은 결국, 질서의 인간이 본능의 세계로 나가버리는 카오스적 상태, 즉 이성과 광기, 문명과 자연의 충돌점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정의하는 예술가는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다. 아슬아슬하게, 위태롭게 경계위를 걷는 존재, 자체발광하지 못한다면 무엇이라도 태워 횃불을 들어야하는 고독한 심해 동물
춥고, 어둡고, 엄청난 압력이 짓누르는 곳
나는 스스로 발광해야만 살아남는 심해 생물이었다.
종특을 살려 소통의 일환으로 발광을 일삼다 교양인이 되고자 그 특성을 폐기했는데
복구해야겠다 발광
지랄발광
광기가 예술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인가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매우너무진짜겁나 복잡한 이야기이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다만, 사알짝 도른자의 질문들은 예술이라는 영역에 늘 외발로 서있으므로 약하기도 한, 강하기도 한 그 질문들을 경외합니다. _부채지느러미바다악마로부터
《지옥변》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025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