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나의 세계는 자주 위태로웠고 늘 비좁았다. 밥상 다리를 펴며 귀에 휴지를 틀어막은 채 하는 궁색한 공부는 꿈과는 멀었다. 방은커녕 존재할 곳에 대한 이상을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채 나의 꿈, 나의 길은 정해졌었다. 당연해서는 안 되는 것이 너무나 쉽게 당연해져 버린 이에게 꿈은 궁색했다. 나까지...나라도...난 어차피... 쪼그라든 나의 세계에는 둘째로 태어 난 k장녀의 텍스트만이 존재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정적이 찾아들기를, 어른이 되기를, 혼자 있기를 바랐다. 책상이, 필통이, 책들이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존재해 주길 바랐다. 타인의 바람을 나의 꿈으로 가진 이에게 미래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거짓 꿈은 하늘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처참한 실패를 안겨 주었고 나는 아무런 희망도 준비도 없이 그저 하루살이 같은 일반고의 학생이 되었다. 가난과, 방이 없는 건 재앙이었다. 그러나 그 '가난'은 자매들에게만 내려앉은 습설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여러분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어요. 나에게 여성과 픽션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자기만의 방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설명해 보도록 하지요. - 1장
'But'은 [여성과 픽션]이라는 개념의 관계에 방의 필요성을 구구절절 쓸 수밖에 없는 여성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끌고 온 접속사다. 방이라는 게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필요한 '설명'. 설명해야만 이해에 이를 수 있는 만연해 있는 인습 속 여성들의 위치. 울프는 말한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열정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사색하고, '나의 이야기'를 쓰는 나만의 자유를 쟁취할 권리를 누리라고. 창의적인 삶을 꿈꾸는 시람들ㅡ난 이 대목에선 여성이라 국한시키고 싶진 않음ㅡ에게 조곤조곤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 이 연설은 진짜가 있는 곳에서 삶을 반짝이게 만들라 조언한다. 그리고 나를,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심시선 여사는 애벌레처럼 읽다 보면 쓰게 된다 했다.
울프는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 했다.
박완서는 딸의 픽션을 보며 "네 세계를 가졌구나"라 했다.
아프게 파고들었다.
나의 방은 아직은 이곳 작은 세계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더 이상 상다리를 펴지 않아도 되고, 휴지로 귀를 틀어막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진짜 내 이야기를 쓸 날이 올지도 모른다. 가끔 생각해 본다. 그날이 내게 어떤 감정을 가져다줄지. 그러나 지금은 지금이 소중하다. 지금의 행복이 더욱더 큰 것이 되길, 오래 지속되길 원치 않는다. 나는 그저 순간을 살아가는 낙관적 허무주의자로 살아갈 뿐이다.
이 글은 빈곤포르노가 아니다. 차별적 빈곤과 성역할로 인해 꿈꿀 기회조차 없었던, 그저 혼자 울 방이 필요했던 열일곱의 나에게 주는 소박한 해방의 메시지.
나의 방을 꿈꾸어라.
그리고.
나만의 방을 가질 당위를 찾으라.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울프
직업이 있나요?
킹메이커입니다.
작가 남편의 성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아내 조안.
작가 지망생이었던 전남편 에드워드에게 가장 냉혹한 비평가였던 수잔.
남편의 추락사로 인해 철저히 해부당하는 유명 작가 산드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연인으로서만 존재해야 하는 '시간들(the hours)'에 염증을 느끼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
각각의 영화 속 인물들이 내뿜는 열정과, 애욕, 기쁨과, 냉소. 또 자기 연민. 자기 비하는 한 단어로부터 파생된다.
'증명'
한 달 내내 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고, 영화를 보고, 걷고 걸으며 내 발 뒤꿈치에 따라붙은 건. 그 모든 복잡다단한 것들이 실은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해내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로 존재하지만 말해져야 하고, 쓰여져야 하고, 보여져야 하는 일. 부정할 수도 애써 부정할 필요도 없는 일.
글자를 처음 배우면 이름부터 쓴다. 우리는 나를 증명ㅡ표현ㅡ하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허나 매번 좋은ㅡ훌륭한, 감각적인, 멋진, 또는 티 나지 않게 위트있는ㅡ글을 쓸 순 없다. 나의 모습이 늘 근사할 순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 이 순간조차 나는 나를 표현하고 있다. 잠옷바람에 세수도 안 하고, 눈곱이 얼굴 어딘가에 붙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젯밤 연달아 본 영화들의 잔상이 다 날아가기 전 꾸역꾸역 단어를 골라가면서. 심지어 주제넘게 조언하면서.
이를테면. 북클럽의 책후기에 너무 큰 무게를 싣지 마시라는 당부를 하는 입장 표명?
예. 이것은 읍소입니다...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한 명의 독자는 꼭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살아있지 않아도 되고, 실존 인물이 아니어도 좋다. 보니것은 일찍 세상을 떠난 누이를 위해 글을 썼다. 작업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작가에서 독자에게로 뻗어나가는 선은 단 하나다. 작가는 홀로 글을 쓰고, 독자는 고독 속에서 읽는다. 82)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검열관 양반은 입장 불가라 선언하시고 써 내려가주세요. 보이지 않을 땐 읽어주세요. 커피를 쏟을지언정 한 손으론 책을 놓지 않는 담대함을, 지하철 안에서 고고하게 책을 펼쳐 든 우아함을, 넷플릭스의 유혹을 거절하고 기꺼이 책을 펼친 고결함을 대견해하시길. 한 침대를 쓰는 그 누군가가 이불을 휙 낚아채고 돌아누워도 스탠드를 켜고 안경을 집어 들고 인덱스를 더듬거리는 꿋꿋함에 찬사를 퍼부으시길!
당신의 직업은 당신만의 전기를 쓰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성실한 독서가입니다.
계속 써주세요.
● 도서
자기만의 방,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 영화
<The Wife> 비욘 룬게#더와이프
<Nocturnal Animals > 톰포드 #녹터널애니멀스
<추락의 해부 > 쥐스틴 트리에#추락의해부
<The hours> 스티븐 달드리#디아워스
Cinema Reading Enjoy Artistic
Moment 2024년 1월 크림북클럽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전히 빈 종이의 광활함 앞에 막막ㅋ...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