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린 Aug 12. 2024

천둥번개가 치던 밤에

용감한 고양이

어릴 때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그때는 비 좀 맞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로는 비 오는 날 막걸리 마시는 걸 좋아했다. 내가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지금 집의 베란다 천장 누수 때문이다(3년째다 보니 반쯤 포기 상태).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워진 나이이지만 난 한 번도 천둥번개를 무서워했던 기억은 없다.


얼마 전 한밤중에 천둥번개로 인해 잠에서 깬 적이 있다. 순금이는 보통 침대에서 같이 자거나, 침대 옆 2층 스크래처에서 잠들곤 한다. 하지만 그날에는 순금이가 보이질 않았다. 침대에 앉아 순금이를 찾는 사이 또 한 번의 천둥이 치고 여러 번의 번개에 세상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잠결인데도 순금이가 무서워서 어디 숨어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집은 방이 두 개인데, 침실과 다른 방(거실 같은 방) 사이에는 부엌이 있다. 최근 순금이가 싱크대나 냉장고 위에 자주 올라가기 때문에 거기부터 살폈다.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방에 가자마자 순금이가 보였다. 순금이는 베란다와 이어지는 샷시(?)에 부착해 놓은 창문 캣타워에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애기! 괜찮아? 무서웠어?”


돌아보지 않기에 더 다가갔더니... 순금이는 쿨쿨 자고 있었다. 내가 바로 앞에 도착하니 깬 순금이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또 번개가 쳐서 방이 밝아졌지만 순금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은 보통 11시간에서 그 이상이다. 거의 매일 하루의 반을 혼자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순금이는 어쩌면 회사에서 모니터나 교정지만 바라보는 나보다 더 많은 비와 천둥번개를 목격했을 거다. 어디 그뿐인가, 화제경보도 몇 번 울렸다고 아파트 단톡방에서 본 적이 있다. 가끔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들기는 잡상인들도 있다(지금은 초인종 배터를 뽑아 버렸다).


내가 없는 사이 순금이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경험을 쌓고 있었다. 천둥번개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순금이의 모습에 괜히 뿌듯한 밤이었다.

“난 무서운 게 없다옹.“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공통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