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딸이자 순금이의 엄마
대학원생이던 이십 대 중반부터 나는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그러다 코로나 때 사정이 생겨, 7년 만에 부모님 댁에서 1년 정도 살게 되었다. 7년 만에 같이 살게 된 부모님은 내가 알던 분들이 아니었다. 혹자의 ‘엄마 없이는 못 살지만, 엄마랑은 못 산다’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온 가족이 힘든 시기를 보냈고, 나는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이란 걸 깨닫고 형편에 맞는 집을 찾아 다시 독립하게 되었다.
모든 집안일을 해 주는 엄마와 함께 살 때와는 달리, 그 일을 홀로 해야 했기에 당연하게도 불편함은 있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과 소음이 없는 삶이 그 불편함을 다 감수할 만큼 좋았다. 이런 점 때문에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하기까지 1년 넘는 시간을 고민했던 것 같다.
순금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사실 ‘불편해 봤자 얼마나 불편하겠어?’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고양이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사서 읽었고, 수의사와 집사 들의 유튜브 또한 하루에 몇 시간씩 시청했기에 자신도 있었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라는 건 순금이를 데려온 첫날 깨달았다.
고양이는 낯가림이 심해 처음 며칠은 다가오지도 않는다는 말과 달리 순금이는 집에 온 첫날 밤,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어뜯었고 온 집 안을 뛰어다녔다. 말도 어찌나 많은지 옆집에서 민원이 들어올까 봐 두려움에 떨게 했다(이건 지금도 그렇다). 분리 수면을 시도했을 때는 새벽 1시부터 밤새 울어 대서 결국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당연하게도 순금이와 나의 생활 패턴은 많이 다르다. 난 저녁 11시쯤 자서 새벽 5시에 일어나려 하는데, 순금이는 이 시간엔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아마 내가 출근해 집에 없는 시간 내내 자기 때문일 거다. 어떤 날엔 11시에 자서 순금이 울음소리에 새벽 1시에 깨서 못 잘 때도 있다. 2시, 3시일 때도 있지만 보통 4시일 때가 많으며, 아주 운 좋으면 5시 알람이 울릴 때까지 통잠을 자기도 한다. 피곤하다는 내 하소연을 듣고 언니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순금이 데려오기 전으로 돌아가면 안 데려올 거야?”
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새벽 운동 다닌다고 5시부터 온 집 안 불 다 켜고, 빨래 잔뜩 내놓고, 집안일 하나 하지 않으면서 잔소리만 하던 딸, 다시 나가 살면서 연락도 안 하는 딸. 이런 나를 견디며, 통화를 하거나 톡을 주고받을 때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하는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데려와야지. 순금이 없이 어떻게 살아. 그냥 내가 덜 자면 돼.”
결국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결론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순금이를 내 딸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딸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잊을 수도 외면할 수 없다. 몇 살이 되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