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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Jul 29. 2021

아버지는 아버지라서고마운 거다

올해 88세가 되신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다행히 심한 상태는 아니라서 곧 퇴원을 하실 것 같지만 그래도 연세가 많으시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이후의 세월을 다 포함해도 아버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이 내겐 별로 없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늦게 들어오셨고, 주말에도 집에 계신 적이 거의 없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는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집에 찾아갔으니, 아버지 얼굴 뵐 시간이 그야말로 별로 없었다.


그나마, 아버지와 작은 추억이 있다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야간 자습을 하고 있는 나를 데리러 가끔 학교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집에 돌아갈 때가 종종 있었다는 정도? 그때도 사실 살갑게 나누는 대화라고는 없었다.  


내게 아버지는 아주 무섭거나 엄한 존재는 아니었어도 그렇다고 가깝게 다가가 일상적인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권위적인 분도 아니었고, 우리를 혼내거나 하는 분이 아니었음에도, 아버지가 어려웠던 건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 하나 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닌데도, 사진으로라도 본 것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보다 네 살 어린 여동생을 낳으며 난산으로 고생하신 엄마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었다. 아버지는 갓난 동생을 안고 3일간을 출근도 안 하고 울기만 하셨단다. 다행히 나는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다. 엄마가 3개월을 넘기고 15년 더 사셨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다섯 살이었던 나는 그때의 아빠 모습이 기억날 리 없다. 하지만, 엄마에게 전해 들은 얘기임에도, 어린 피붙이를 안고 엄마 없이 자라게 될 아이가 가여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실제 내가 본 것 마냥 가끔 떠오르곤 한다.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존재의 무게를 느끼게 된 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혹시 아버지까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졌다. 그때 처음 부모가 안 계신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나의 기반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금방 나아지셨지만 그때 처음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무게감이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내가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건 회사에 들어와 직장생활을 하면서였다. 입사 초기에 새로운 프로젝트팀에 합류하여 일하게 되었는데,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바쁜 프로젝트 스케줄 탓에 윗사람들도 그런 내 상황을 감안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듯했다. 부장에게 혼나고 화장실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돈벌이가 결코 쉽지 않구나'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던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는 어땠을까. 회사 생활하면서 힘든 일이 없으셨을까. 힘들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버티셨을까. 딸린 식구가 없는 나는, '이놈의 회사 때려치우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둔 아버지는 그런 생각만의 호기라도 부릴 수 없으셨을 텐데. 게다가 언니와 오빠, 내가 한꺼번에 대학을 다니던 때도 있었다. 몇 년 전에야 큰언니에게 들은 바로는, 그때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드셔서 '보험을 들어놓고 내가 죽으면 애들 가르칠 돈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까지 하셨다고.    


아들이 유치원 때쯤, 아들에게 가끔 물었다. 

"엄마가 너를 왜 사랑하는지 알아?"

그럼 아들은, "내가 착해서? 잘생겨서?"라고 대답한다.

"아니, 엄마 아들이기 때문이야" 


아버지가 고마운 것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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