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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Jul 26. 2021

우리는 왜 회사일이 하기 싫은 걸까?

십여 년 전 일이다.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시어머니 병문안을 갔을 때 시어머니 옆 침대에 계신 아주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30년간 회사를 다니시다가 얼마 전에 일을 그만두셨는데, 그만두기 전에는 하루빨리 은퇴해서 자유롭게 사는 삶을 늘 꿈꾸셨단다. 그러나, 막상 은퇴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그게 생각만큼 좋지 않더란다. 그러다, 약 없이는 잠도 못 자게 되어 신경쇠약으로 입원까지 하게 되셨다고. 지금은 뭐라도 다시 일을 하는 게 로망이라고 하셨다.


그 아주머니의 얘기는 내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때쯤 나는 회사일이 너무 하기 싫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며, 퇴사 후에 거실 창문 앞에 놓인 널찍한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머릿속으로 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을 때였으니 말이다. 내가 꿈꾸는 삶을 막상 실현하신 분이 신경쇠약으로 입원까지 하시다니..


내가 꼭 챙겨보는 EBS의 [건축 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곳에서는 전원에 집을 집고 성실하게 정원이나 집을 가꾸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매일 같이 땀 흘려 일하지만 너무나 행복하다고 얘기한다. 그들에게 돈을 주면서 다른 집 정원을 가꾸라고 얘기하면 그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일이 재미있으려면 어떤 요소를 갖추어야 할까? 

첫째는 본인이 몰두할 수 있는 난이도의 일이어야 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아래 그래프로 업무의 난이도와 실력 간의 상관관계가 높아야 몰입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본인 실력에 맞지 않게 너무 단순한 일은 지루해지고, 너무 난도가 높은 일은 좌절하게 된다. 

둘째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서 하는 일이 재미있다. 

셋째는 일의 성과가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어야 한다. 돈이든 상이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든, 아니면 정원 가꾸기처럼 눈에 보이는 변화이든 말이다.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회사일이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걸까?

첫째 몰두할 수 있는 일에 관련해서는 너무 난이도가 낮은 일로 지루할 때는 일을 바꿔야 한다. 회사 내에 난도가 높은 일을 찾아가던 그것이 안되면 회사를 바꾸어야 한다. 반대로 본인의 능력에 비해 너무 난도가 높은 일일 경우에는 우선은 본인의 실력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회사일은 본인이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하는 과정에서 나의 재량이 많이 발휘되고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일할 수 있을 때 일이 재미있다. 주로 리더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경험에 의해도 회사일은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할 때 더 재미있었다. 

 

셋째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도 그 성과가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듯할 때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좌절하는 순간일 것 같다. 조직이 너무 커서 내가 일한 성과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열심히 일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보상이 차이가 없어도 열심히 일할 의욕이 사라진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인정을 받고 잘 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마지막으로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상사와 일하거나, 상사가 인정해주지 않을 때 일할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과 일하느냐에 따라 일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상사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아주 오래전 바로 위의 상사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하는 말에 반박을 많이 하며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다.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정면 돌파해보기로 했다. 상사를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변해보기로 했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자원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자,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고 연말에는 수고했다며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보내주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났지만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이 이후 내 회사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글은 사실 나를 위해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 생활 중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이 많았다. 그때마다 '도저히 안 되겠다. 그만 때려치워야겠다.'가 아니라, '이제는 그만두어도 되겠다.' 싶은 마음으로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참았다. 태풍을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잘 익어서 수확이 되는 사과처럼 회사 일을 마무리하는 게 지금도 내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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