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3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반도체 연구소 소장님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이름을 대면 웬만한 사람은 알 만한 분이었다. 간담회 장소인 강당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안에 소장님이 계셨다. 가볍게 인사를 드렸고,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커다란 강당을 가득 채운 긴장감 속에서 소장님의 훈시가 끝났고, 곧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복지나 제도에 관한 현실적인 질문들이었다. 몇 개의 질문이 오간 뒤 더 이상 손이 올라오지 않자, 소장님이 갑자기 나를 지목하셨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여사원! 질문 하나 해봐요!”
예상치 못한 지명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백 명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마이크를 잡으니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였다. 준비된 질문도 없던 나는, 당황한 채 입을 열었다.
“소장님은 누구나 선망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셨는데, 지금 행복하신가요? 그리고 곁에 계신 사모님도 행복하신지 궁금합니다.”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소장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사모님이 음악을 전공했다는 이야기,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는지를 들려주셨다. 질문의 내용과는 조금 비껴간 대답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질문에 대한 답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은 늘 있는 법이다.
왜 하필 그 질문이었을까?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돌이켜보면 평소 내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의문점인 것은 맞았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분명했지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높은 자리에 올라 일에 몰두하는 삶이 과연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그 인과관계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소장님의 대답을 끝내 듣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내게 누군가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워킹맘으로 살며 후회는 없었나요? 끝까지 버티길 잘했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묻는다면 말이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단 몇 달만이라도 아이 손을 잡고 등굣길을 함께 걷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1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육아 휴직이라도 마음 편히 썼을 텐데. 아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부루마불 판을 더 자주 펼쳐주지 못한 것도 미안함으로 남는다.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며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내게 직장과 육아는 어떤 면에서는 갈등 관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너지에 가까웠다.
아들을 낳고 강하게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아야겠다.’ 결혼 이후에도 분명한 방향성이 없이 어딘가 표류하는 듯했던 내 삶은 비로소 아들이라는 닻을 만나 방향을 잡았다. 아이에게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역설적으로 나를 일터에서 더 성실하게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오래전 회사 게시판에서 55세 정년을 마치고 퇴직하시는 여자 선배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성장하며 오히려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흔들리던 내게 작은 빛처럼 다가왔다. 나 역시 아들에게 결핍의 기억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다.
다행히 아들은 나의 든든한 조력자로 자라주었다. 초등학생 이후, 내가 지쳐 퇴사를 고민할 때면 오히려 절대 그만두지 말라며 나를 다그치던 존재가 바로 아들이었다. 그 다그침은 내게 '엄마의 부재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엄마의 커리어에 대한 존중'으로 읽혔기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곤 했다.
무엇보다 나는 직장을 ‘때려치운’ 것이 아니라 비로소 ‘그만둘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고비마다 감정이나 울분에 휩싸여 도망치듯 문을 나서고 싶은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과일이 덜 익은 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잘 익어 수확되듯 나 또한 그러하기를 바랐다. 비겁한 회피나 막다른 골목에서의 도망이 아닌, 나의 의지와 차분한 판단에 의해 마침표를 찍고 싶었던 그 기다림의 시간을 무사히 건너온 것이 다행스럽다.
결국,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것이다. 후회는 없다. 일과 육아는 서로를 갉아먹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기꺼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