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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Nov 21. 2021

라디오와 함께 하는 추억 여행

어느 날 아침, 회사 안의 커피숍에 들어서니 부드러운 팝송이 흘러나온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듣고 있자니 아련하게 라디오에 얽힌 옛날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릴 적 엄마 옆에서 보내던 방학들. 엄마는 아침 설거지와 청소를 끝내고 방에 들어오신 후 라디오를 켜놓고 뜨개질을 하곤 하셨다. 그때 엄마가 즐겨 들으시던 방송은 '안녕하세요. 황인용, 강부자입니다'였다. 강부자 씨가 읽는 사연에 맞춰 울고 웃으시던 엄마 옆에는 늘 수건이 놓여 있곤 했다. 가슴 아픈 사연이 나올 때면 읽던 강부자 씨는 눈물 때문에 말이 끊기고, 듣고 있던 엄마는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황인용 씨가 대신 난처한 듯 말을 이어가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 대낮에 가끔 시내버스에 타서 라디오에서 사연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때 엄마 곁에서 뒹굴거리며 보내던 방학들이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프로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들으며 무슨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라디오를 듣는 게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부득불 우기곤 했다. 특히 토요일 밤 공개방송이 있는 날에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모두 마무리짓고, 언니, 동생과 같이 모여 턱을 괴고 라디오 앞에 모여있곤 했다. 이문세의 말발에 신나게 웃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가녀린 듯 강단 있던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그녀의 초대손님으로 자주 나왔던 정성일 평론가. 입에 가득 침이 고인 듯한 목소리, 좀처럼 쉼표를 허용하지 않은 채 숨 막힐 듯 이어지던 그의 영화 이야기에 빠져 잠을 잊곤 했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안타까운 소식에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잃은 듯한 마음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녀는 렉스턴 승용차를 몰고 가다 흑석동 중앙대학교 부근에서 사고를 당했다. 얼마 전에는 팟빵에서 그녀의 프로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아주 가끔씩 찾아 듣곤 한다. 어김없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곤 한다.


요즘은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도 어쩌다 쉬는 날 집에 있게 되거나 운전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이현우의 음악 앨범'을 틀어 놓곤 한다. 자주 들을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나는 가끔 찾아가도 그는 변치 않고 아주 긴 세월 동안 그 시간을 지켜주고 있어 든든하다. 쉬는 날 나 혼자 있는 집안의 썰렁한 공기를 그의 목소리가 채워주곤 한다.


그리고, 저녁 시간 운전할 때에 한정되긴 하지만 이금희 씨의 '사랑하기 좋은 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의 차분하면서 인간적인 목소리.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들,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듯한 음악들에 취해 가끔은 목적지에 다다라서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동안 방송을 이어 듣고는 한다.


TV에서 들리는 얘기들은 현실을 지나치게 과장한 듯한 드라마 속 사람 얘기, 우리와 조금은 다른 삶을 사는 듯한 연예인들이 사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그러나, 라디오 속에서는 내 옆집, 내 친구, 내 옛날 얘기 같은 소소하지만 더 현실감 있는 얘기들이 들려서 좋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듣는 것도 좋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음악들이 내 옛 시절을 떠올리게도 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음악들이 내게 새로운 기쁨을 주기도 하고, 내 주의를 끌지 못했던 음악들이 가끔 신선하게 내 가슴에 와닿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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