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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Nov 15. 2021

자유의 무게_30년 직장인의 홀로서기 연습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누구나 그랬겠지만 고3 생활은 너무나 갑갑했다. 하루빨리 벗어나고픈 마음밖에 없었다. 갇혀있고 통제받고 있다는 느낌, 내 겨드랑이에서 꾸물거리는 날개를 애써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에 절대 재수라는 건 허용하지 않겠다 했다. 그렇게 나는 지겨웠던 고3을 마치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시골 고등학교에서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오게 된 나는 갑자기 달라진 생활환경만큼이나 내게 주어진 많은 자유의 무게가 버겁기만 했다. 고등학교 때까진 짜인 시간표대로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들이 오시기만 기다리면 되었지만, 대학생이 되자 무슨 과목을 들을지, 어느 선생님을 선택할지, 언제 들을지 결정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비해 자유 시간이 많아졌지만 뭘 하며 보내야 할지 난감했다. 자유를 얻었다기보다 내팽개쳐진 느낌이었다. 


그 자유의 무게를 견뎌내며 나라는 주체로 독립했어야 했지만, 나는 친구들이라는 무리에 종속되는 것을 택했다. 수강 신청부터 과제 해결까지 모든 것을 친구들이라는 무리에 속해 해결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그렇게 무리 본능에 휩쓸려 결정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몇 개월의 공백기가 있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했다. 오랫동안 '어느 학교 누구입니다'로 익숙했던 삶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태가 나를 불안하게 하고 주눅 들게 하고 위축시킨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나는 어느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는 완벽한 자유의 상태였지만, 가장 불안정한 상태를 경험했다.

 

그런 불안은 대기업에 입사하자마자 빠르게 잊혔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회사인 덕분에 회사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렇게 나는 30년 가까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 누구입니다'로 살고 있다. 회사에서 꼬박꼬박 제공하는 월급을 받는 대신, 내 대부분의 시간을 저당 잡힌 채, 내게 가장 중요하고 급박한 일은 회사일이라고 믿으며,  회사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많은 일들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며 자동인형처럼 살아왔다.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사회의 굴레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감정적/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립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 개인이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완전히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나는 학교와 회사에 몸담았던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남들이 내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일들을 하며 살았고 그 대가로 제공되는 보호막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 보호막을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내가 나라는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회사의 보호 아래 사회의 파도를 이겨내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이 사실은 그곳을 떠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취약한 구조라는 걸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답게, 내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개인으로서의 적극적인 자유를 획득하는 것인가. 


나는 그동안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남들이 시키는 일을 주로 하며 살아왔다. 나 개인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로 채워가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어디에 소속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이 갖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는 것들을 소유하거나 얻기 위해 쏟아왔던 에너지들에서 자유로와져야 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내가 즐거워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도 사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환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 진정한 꿈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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