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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Nov 27. 2021

뒷방 늙은이로 남을까, 다시 한번 달려볼까

뒷방 늙은이란 공식적으로는 은퇴한 노인을 뜻하는 말이지만, 사적으로는 실권이 많던 사람이 조직에서 가지고 있던 실권을 잃어버릴 때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거에는 뭔가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나 조직이나 물건이 쓸모가 없어질 때도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고 칭하기도 한다.


비록 임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작년까지 나는 30~40명 정도의 조직을 이끄는 리더였다. 그러나, 올해 초에 인사팀에서 리더들의 연령을 낮추라는 지침이 내려왔고, 나는 리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처음엔 오히려 좋았다. 많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는 상황이 반가웠다. 어차피 임원을 기대할 상황도 아닌 바에야 굳이 리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이 별다른 장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조금 지나다 보니 일에 대한 애정이 급감하는 나를 발견했다. 전에는 내 살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일에 대한 주인 의식도 전보다 떨어지고 업무에 대한 집중도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크고 작은 결정할 것들이 많아 힘들었지만, 막상 그런 것들이 사라지니 회사 생활이 김 빠진 사이다 같다고나 할까.


나의 이런 고민에 한 후배는 이렇게 얘기한다.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요? 오히려 편하게 회사 생활하면서, 은퇴 후에 할 수 있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도 좋을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자꾸만 내가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것 같은 씁쓸함, 뭔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결핍감이 자꾸만 나를 잡아당기는 게 문제다.


언젠가 한창때 주연으로 이름을 날리던 여배우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연 자리를 잡기는 어려워지고 조연은 맡고 싶지 않은, 달라진 자신의 위치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의 내가 그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리더 자리에 익숙해 있었지만, 이제는 리더가 아닌 위치에서도 팀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보다 어린 리더의 지시에도 거부감 없이 기꺼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 변화된 상황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사실 생각으로는 충분히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아직 마음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에 회사 동기인 A가 해외 발령을 받아 미국으로 떠난다고 해서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임원 진급이 좌절되자 다른 회사로 옮겼다가 이제 다시 그 회사의 해외 지사로 옮겨가는 것이다. 50을 넘긴 나이에 남편과 떨어져 살며 낯선 환경과 업무에 적응해야 할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 그녀의 열정이 부러웠다. 그에 비하면 나는 새로운 도전 없이 너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얼마 전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B 부장님을 사무실에서 뵙게 되었다. 오랜만이어서 반갑게 인사하며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여쭈었다. 만 57세가 넘어 임금피크제에 들어갔고 이제 3년만 버티면 된다고 하셨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서 다음날부터 우리 부서분이 아닌데도 B 부장님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부서 내 복도를 천천히 지나다니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하, 그런 거구나. 일이 있어서 우리 부서엘 오신 게 아니었고, 그냥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였다. 이럴 수가. 그때 내 마음속을 스쳐 지나가던 복잡한 심정들을 무슨 말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한편 옆 부서 C 부장님에 대한 얘기를 D 후배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오십 대 중반의 나이인데 열 살쯤 어린 D 후배 밑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런데 D 후배는 C 부장님이 자기의 롤모델이라고 얘기했다. 자기는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그분처럼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여전히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시고, 게다가 업무 경험이 많다 보니 부서 내 일처리에서 그분의 존재가 너무나 절실하다고 얘기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뒷방 늙은이로 그대로 남아 있을지, 나이에 맞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 도전할지 여부는 본인이 정하는 법이다. A처럼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있고, B 부장처럼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를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시는 분도 있고, C 부장처럼 거대한 모험은 아니라도 있는 자리에서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분도 계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A처럼 살만한 용기는 없고, B 부장처럼 살기는 싫은데 말이다.



청춘(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미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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