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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Jul 22. 2021

젖은 낙엽 같은 부장님

밥벌이 가장의 짠한 뒷모습

팀 내에 50대 중반의 부장님이 계신다. 임원급을 제외하고는 팀 내 최고령자일 게다. SKY대를 나왔고, 박사 학위도 갖고 계신 분이다. 하지만 그분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짠함이 느껴진다.


아침이면 6시 반쯤 가장 먼저 출근하고 보통 20시쯤 퇴근하시니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시는 것 같다. 주말 근무도 자주 하시다 보니 주 52시간을 매번 꽉꽉 채우고 있다. 그분이 딴짓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업무 외의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넘나드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나이가 많지만 절대 권위적인 면도 없다. 한 번도 그분이 큰소리를 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심하게 대하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에 비해 업무 성과가 좋지 않다. 일이 정리가 잘 안되고 기억력이 별로 좋지 못하시다. 젊은 사람들은 그분을 답답하게 생각한다. 그분이 큰소리로 환하게 웃는 걸 본 적이 없다. 시시껄렁한 농담 한마디도 없고 주변 사람들과 별로 대화도 없다.


회사에서의 그의 삶이 참 재미없어 보이지만, 그는 젖은 낙엽처럼 쓸려도 쓸리지 않도록 회사에 달라붙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는 아직 학생 신분인 두 자녀를 키우는 외벌이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그분을 보면서 그 모습이 어느 날의 내 모습일 수도 있고, 혹은 남편의 모습, 우리 아버지의 모습, 이 시대의 많은 가장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풀 죽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안쓰러운 모습 말이다.


입사 초기, 일의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다 당시 부장님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던 대리님이 '입사한 지 얼마 안돼 뭐가 뭔지도 모르는데 혼나서 힘들겠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순간, 울컥한 마음에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됐다. 아버지도 이런 순간을 감내하며 우리 다섯을 키우셨을까? 새삼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려 드리고 싶어 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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