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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Jul 23. 2021

다음 금융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꼭봐야 할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 리뷰

"2008년 세계경제 위기로 수천만 명이 저축, 직업, 집을 잃었다. 그 엄청난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영화라기보단 다큐멘터리인데, 웬만한 영화 못지않게 흥미롭다. 실화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소파에 누워서 보다가 벌떡 일어서기도 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자산 거품이 심해져 금융 위기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곤 하는데, 2008년의 금융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보게 되었다.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인구 32만의 아이슬란드는 안정적 민주국가로 사회 인프라, 의료 및 교육 시설들이 잘 갖추어지고 범죄율도 낮아 가족들이 살기 좋은 나라였다. 2000년 정부가 경제 규제 완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말이다. 정부는 세 곳의 은행을 민영화했는데, 해외사업을 해본 적도 없던 이 회사들이 5년간 아이슬란드 GDP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대출해 서로 나눠먹기 식으로 부당 이익을 취하며 버블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가는 폭등하고 집값은 두배가 올랐다. 이 와중에 백만장자로 알려진 존 요하네스라는 사람은 런던에서 명품 장사를 하고 전용기, 요트, 맨해튼의 펜트하우스 등을 구입했다. 신문에는 그가 유럽 여러 나라의 사업체를 사들였다는 기사가 자주 실리곤 했는데, 기사에서 밝히지 않았던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은행돈이었다는 거다.


은행들은 투자펀드 상품을 만들고 일반 예금고객에게 펀드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서 사기를 쳐 돈을 모았다. 그럼에도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은 아이슬란드 은행, 투자회사를 감사한 결과 최고 등급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역시 그 보고서에도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은행, 투자회사로부터 상당한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2008년 말 은행들은 망했고, 6개월 만에 실업률은 세배가 올랐으며 많은 사람들이 저금한 돈을 인출할 수 없었다. 금융 감독원 사람들이 뒷수습을 위해 은행을 찾았을 때, 은행에는 대비를 철저하게 한 변호사들이 있었으며 원하면 은행에 일자리를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감독원 직원의 1/3이 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일은 2008년 뉴욕에서 발생한 일과 많이 닮았다.


미국은 1929년 대공황을 겪은 후 엄격한 금융규제 속에서 한동안 금융 위기 없이 잘 유지되고 있었으나,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금융 완화가 시작되고 금융업의 팽창으로 월스트리트는 부자가 되어갔고, 막대한 돈을 무기로 로비를 통해 정치권을 장악해 나갔다. 그들은 멍청하게 민주당이나 공화당 한 곳 만을 장악하지 않았다. 90년대 금융계는 점차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98년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의 합병으로 시티그룹이란 대규모 금융회사가 탄생했다. 대공황 이후 만든 글라스 스티컬 법에 위배되는 합병이었지만 그린스펀의 침묵과 연준의 묵인하에 회사 합병은 문제 될 게 없었다.


한편, 냉전 시대가 종식되며 무기를 개발하던 물리학자, 수학자들이 무기 만드는 데 쓰던 기술을 금융 시장에 활용하여 새로운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게 되었으니, 그 이름은 파생상품이었다. 금융 규제 완화와 기술 발전으로 금융 파생상품은 폭발적으로 만들어졌고, 시장은 더욱 불안해졌다. 은행들은 불안한 시장인걸 알면서도 너도나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 파생상품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클린턴은 1998년 스탠퍼드 로스쿨 수석 졸업자인 브룩슬리 본을 상품선물거래 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히며 파생상품을 감독하도록 했다. 파생상품 규제를 제안했던 본은 어느 날 당시 재무부 장관인 래리 서머스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그는 은행장 13명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 아주 위협적인 어조로 본에게 규제를 멈추라고 얘기한다. 그린스펀, 루빈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의 주도하에 파생상품 거래는 전문가 분야인만큼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콘센서스를 이루어 금융규제에서 제외된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 위기를 경고했다. IMF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라구람 라잔은 2005년 전 세계 은행장들과 밴 버냉키를 포함한 정부 리더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금융 발전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고, 그의 결론은 '그렇다'였다. 특히 은행권의 인센티브 구조를 지적했다. 리스크가 큰 상품일수록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여 더 높은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데, 손실이 발생했을 때는 책임지지 않는 구조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래리 서머스는 라구람 라잔을 기계화를 반대하는 수공업자 같다며 일갈했다. 


브레이크 없는 차를 타고 월가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으며,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월가 사람들은 스트립쇼에 가고 매춘, 마약 등을 했으며 그 돈은 컴퓨터 수리비 등의 항목으로 경비 처리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월가의 손길이 많은 경제학자들에게도 닿아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유명 경제학자들이 월가의 돈을 받고 파생 상품 같은 금융 상품이 오히려 자본을 적절하게 분배하여 금융 안정성을 높인다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대학들은 이런 행위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과 학과장인 존 캠벨과의 인터뷰 장면을 소개한다. 

감독: 교수들에게 기업체의 연구서 써 주고 돈을 받게 되면 보고하라고 합니까?

존 캠벨: 아니오.

감독: 문제가 아닐까요?

존 캠벨: 왜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감독: 한 의사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어떤 병을 치료하려면 특정 약을 처방하라고요. 그런데, 그 약 수익의 80%를 그 의사가 받는다면, 이상하다고 생각 안 드나요?

존 캠벨: 그런 걸 미리 말하는 건 중요하지만.. 음.. 글쎄.. 그건 우리와 다른 경우고.. 음. 거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음.. 음..


2008년 오바마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책임자들의 탐욕과 규제 정책 실패로 돌리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금융 산업의 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2010년 미비한 수준의 개혁 법안이 통과되었고, 개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 자문관들이 문제의 금융 구조를 만든 장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더 웃긴 사실이 하나 있다. 21년 3월에 "위기의 징조들"이라는 책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금융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라고 경고하며 2008년 금융 위기를 되짚어 보면서 다가올 다음 금융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얘기한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 책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책의 저자들이 바로 밴 버냉키, 티머시 가이트너, 헨리 폴슨 등 2008년 금융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 뒤로도 제대로 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찰스 퍼거슨인데 버클리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MIT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사람으로 인터넷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기도 했었다. 현재는 영화사 대표로 No end in sight(2007, 미국의 이라크 점령 관련), Inside Job(2010), Time to choose(2015), Watergate(2018) 등의 주로 다큐멘터리 관련 영화를 제작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는 2011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했는데, 다행히 월가의 돈이 영화계까지 닿진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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