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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푸치노 Dec 13. 2021

떠나는 임원의 뒷모습을 보며

가야야 할 때를 알지 못하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안쓰럽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회사는 새로운 임원을 승진시키고, 기존 임원들을 더 높은 자리로 승진시키거나 일부 임원은 정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올해 내 상사였던 임원이 정리대상이 되었다.


그 전화를 받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내년도 할 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오전에 진행하기로 했던 내년 업무 미팅을 오후로 미룬 스텝을 혼내기도 했고, 메일로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숙제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다, 오후가 되어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갑자기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모든 회의를 취소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처럼 일찍 퇴근하지 않던 분이 17시가 조금 넘자 퇴근하셨다. 다음날에도 그는 아무 말이 없이 주변 정리를 계속했다. 평상시처럼 점심은 두 명의 스텝들과 함께 했지만 한마디의 대화도 오고 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15시쯤 그는 한 통의 메일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졌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회사를 위해 일해왔던 사람이 어느 날 전화 한 통화로 그간 하던 일을 중단당하고, 몇 년간 같이 일해왔던 사람들에게 악수도 없이 메일 한 통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떠나야 했던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니 안타까울 뿐이다.


기술 임원이었던 그는 올해 임원 재심사 대상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재심사 대상자들 중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물론, 그는 그의 점수를 알지 못했다. 심사를 관리하는 담당자들을 통해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당사자인 그의 귀에 닿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 스스로는 회사 내 누구보다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동안 우리 팀의 체질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가 바라보는 그와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 사이의 큰 간극 말이다.


사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임원이 된 게 아니었다. 몇 년 전 임원 승진 명단에 그가 포함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물론, 그 뒤에는 그를 밀어주던 고위직이 있었다. 왜 그 고위직 임원이 그를 밀어주는지가 미스터리였다. 그가 고위직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드라마 같은 설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깨닫는 능력을 말한다. 메타인지 능력이 높은 사람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파악한다. 그러나, 메타인지 능력이 낮은 사람은 그게 잘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파악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실제보다 자신의 능력을 낮게 책정하기도 한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메타인지 오류가 심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전혀 임원이 될 가능성이 없고, 심지어 임원 심사 대상자에 오르지 못했는데도 임원 통보 전화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고, 떠나간 내 상사처럼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본인은 당연히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도 있다.


자연은 언제 싹을 틔워야 하는지, 언제 낡은 잎들을 털어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실행하지만, 사람들은 한 치 앞의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고 산다. 떠나가는 임원의 뒷모습을 보며 혹시 내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뒷모습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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