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푸치노 Jan 23. 2022

몸은 마음보다 빨리 늙는다

갱년기에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

작년 1월,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잠들기가 어려웠다. 밤이 되어도 머릿속에 환한 불이 켜진 듯한 느낌이었다. 어렵게 잠이 들어도 다시 깨기를 여러 번. 갑자기 중병에 걸린 건 아닌가 싶어 두려움이 확 밀려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감이 올라와 땀을 닦아내야 했다. 여름에도 웬만하면 땀을 흘리지 않는 체질이었는데 말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여자들만의 마법도 뚝 끊겼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세가 아닌가 싶었다.


동네 한의원엘 찾아갔다. 젊고 잘생긴 한의사는 자기 장모님도 드시고 계신 약이라며 한약을 처방해줬다. 그러나, 한 달을 먹어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 여자에게 좋다는 석류즙을 먹기 시작했다. 1주일쯤 먹었을 때 거짓말처럼 모든 증상들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끊겼던 생리도 다시 시작되었다. 나보다 몇 달 후 동일한 증상을 겪던 친구도 석류 효과를 보았다고 했다. 그렇게 석류만 있으면 나는 갱년기 증상에서 해방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올해 초 잠들기 어려운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꾸준히 석류를 먹고 있는 와중에 찾아온 증상이라서 더 당황스러웠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렵게 산부인과를 찾아가 여성 호르몬제를 처방받았지만, 체중 증가, 메스꺼움,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듯한 느낌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선뜻 내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약보다는 식품으로 해결해보기로 했다. 석류 양을 늘리고, 콩과 우유가 좋다는 말이 많아 콩 영양제와 우유를 꾸준히 챙겨 먹고 있다. 다행히 잠들기 어려운 증상은 많이 완화되었고 자다가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깨는 증세는 아직 남아있다. 며칠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과정들을 거치며 새삼 마음보다 빨리 늙어가고 있는 내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나는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갱년기 증상을 겪으며 이제 내가 더는 젊지 않구나, 갈수록 여기저기 아픈 곳이 더 생길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우울해졌다. 몸의 변화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불협화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언제까지나 어린애일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여자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었다. 흰머리가 하나둘씩 생겨날 때도, 핸드폰과 나와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할 때도, 처음으로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랬다. 몸은 제 시간표에 맞추어 꼬박꼬박 정해진 길을 가고 있지만 내 마음은 몸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몸은 제 길을 척척 가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 몸에 끌려 다니는 느낌이랄까. 마음은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별도의 해결책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기반하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하루라도 빨리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늙어간다는 사실에 몰두할수록 마음은 우울해지고 그 우울감으로 증상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변화를 빨리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갑자기 오래전에 들은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생각난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작가의 이전글 삶을 정리하시는 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