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에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
작년 1월,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잠들기가 어려웠다. 밤이 되어도 머릿속에 환한 불이 켜진 듯한 느낌이었다. 어렵게 잠이 들어도 다시 깨기를 여러 번. 갑자기 중병에 걸린 건 아닌가 싶어 두려움이 확 밀려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감이 올라와 땀을 닦아내야 했다. 여름에도 웬만하면 땀을 흘리지 않는 체질이었는데 말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여자들만의 마법도 뚝 끊겼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세가 아닌가 싶었다.
동네 한의원엘 찾아갔다. 젊고 잘생긴 한의사는 자기 장모님도 드시고 계신 약이라며 한약을 처방해줬다. 그러나, 한 달을 먹어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 여자에게 좋다는 석류즙을 먹기 시작했다. 1주일쯤 먹었을 때 거짓말처럼 모든 증상들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끊겼던 생리도 다시 시작되었다. 나보다 몇 달 후 동일한 증상을 겪던 친구도 석류 효과를 보았다고 했다. 그렇게 석류만 있으면 나는 갱년기 증상에서 해방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올해 초 잠들기 어려운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꾸준히 석류를 먹고 있는 와중에 찾아온 증상이라서 더 당황스러웠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렵게 산부인과를 찾아가 여성 호르몬제를 처방받았지만, 체중 증가, 메스꺼움,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듯한 느낌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선뜻 내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약보다는 식품으로 해결해보기로 했다. 석류 양을 늘리고, 콩과 우유가 좋다는 말이 많아 콩 영양제와 우유를 꾸준히 챙겨 먹고 있다. 다행히 잠들기 어려운 증상은 많이 완화되었고 자다가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깨는 증세는 아직 남아있다. 며칠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과정들을 거치며 새삼 마음보다 빨리 늙어가고 있는 내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나는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갱년기 증상을 겪으며 이제 내가 더는 젊지 않구나, 갈수록 여기저기 아픈 곳이 더 생길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우울해졌다. 몸의 변화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불협화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언제까지나 어린애일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여자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었다. 흰머리가 하나둘씩 생겨날 때도, 핸드폰과 나와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할 때도, 처음으로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랬다. 몸은 제 시간표에 맞추어 꼬박꼬박 정해진 길을 가고 있지만 내 마음은 몸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몸은 제 길을 척척 가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 몸에 끌려 다니는 느낌이랄까. 마음은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별도의 해결책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기반하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하루라도 빨리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늙어간다는 사실에 몰두할수록 마음은 우울해지고 그 우울감으로 증상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변화를 빨리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갑자기 오래전에 들은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생각난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