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서 'MBTI P와 J'의 차이를 검색하니 아래와 같은 표가 나타난다.
P로 태어나다
나는 전형적인 P였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늘 힘들었고 지각을 자주 했다. 약속 시간에도 늦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남편을 처음 만나는 날에도 40분이나 늦었을까. 두 번째 만나는 날에도 30분 정도 늦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꼭 세 번 이상은 만나보라는 지침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도 없었을게다.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꾸물대다가 늦었다.
내 방은 늘 지저분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뭔가 항상 수북했고, 서랍들은 대부분의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그냥 처박혀 있었다. 아들을 낳을 때 예정일보다 일찍 진통이 찾아오는 바람에 회사에서 직접 병원으로 직행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언니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해야 했는데, 집이 난장판이었던 탓에 언니에게 너무 창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 다닐 때는 늘 시험공부도 벼락치기였고, 과제도 늘 마감 시간에 맞춰 뛰어서 제출하곤 했다. 헐떡이는 심장으로 과제를 제출하고 돌아서며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 다음에는 꼭 미리미리 해야겠다 다짐해도 다음에도 여전히 뛰고 있는 나를 마주해야 했다.
삶에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뭔가 목표를 정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별로 없다.
J로 변하다
이러던 내가 언제부터 J로 변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40대 이후부터 서서히 J로 변화되기 시작했고 50대인 지금은 분명하게 J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집은 잘 정돈되어 있는 편이다. 갑자기 손님이 찾아온다 해도 당황스럽지 않다. 서랍 속 물건들도 잘 정리되어 있다. 1년에 한두 번 정리를 새로 하는데, 정리를 새로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퇴근 후에는 아들이 늘어놓은 물건들을 재빨리 정돈하고, 식사 후에 설거지 거리를 쌓아놓는 일도 없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아한다. 여행을 가기 전에 미리 일정을 짜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 즐겁다. 그래서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유 여행을 선호한다. 요즘은 하루 하루 할 일을 계획하고 점검하는 PDS(Plan Do See) 다이어리도 쓰고 있다.
아침에도 과거에 비하면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주말에도 주중과 기상 시간이 다르지 않고 어딜 가더라도 항상 일찍 출발한다. 쇼핑을 가더라도 쇼핑몰 문 여는 시간 전에 도착하고, 주말에 어딜 가더라도 차가 막히기 전인 7시 전에 출발한다. 약속 시간에도 거의 늦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뭔가를 해야 할 일이 생길 때면 바로바로 하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뜸 들여봐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게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어쩌다 J가 되었을까
J로 살아보니 P로 사는 것보다 J로 사는 게 훨씬 편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J가 된 걸까?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원인도 있을게다. 특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대단히 J스러운 것을 강요한다. 입사초기에 선배에게 듣기로는 행사를 준비할 때면, 강사가 자리에서 연단에 올라가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시간 계획을 세운다고 들었었다. 그런 회사를 30년 가까이 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도 J로 바뀌게 된 것 같다. 아니면 J 성향의 엄마의 유전자가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켜진 건지도 모른다. J에 가까운 남편을 만난 것도 한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
J는 P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P로 살아갈 때 내 곁에는 나를 비난하는 J들이 있었다. 엄마는 늘 내게 꾸물거린다고, 미리미리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너무 태평하다고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학교 다닐 때 동생과 같이 다니곤 했는데, 동생은 일찍 일어나서 미리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곤 했다. 그리곤 늦게 일어나 허겁지겁 준비하는 나를 향해 자주 짜증을 부렸다. 신혼 초에 주말이면 10시 넘어 느긋하게 일어나는 나를 향해 남편은 온몸으로 못마땅하다는 냄새를 풍기곤 했다.
J인 지금, 다소 P 성향인 아들을 보며 자주 잔소리를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방정리를 제대로 안 하고 물건들을 아무 데나 늘어놓는 아들을 인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아들에게 대단히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타고난 J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P들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려다가도 어차피 잔소리해 봐야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잔소리를 줄이고 그냥 받아들이려고 한다.
P는 J가 숨 막힌다
회사에 슈퍼 울트라 J 성향의 후배가 있다. 여행 갈 때면 엑셀로 30분 단위로 여행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슈퍼 울트라 J에 맞게 언제나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낸다. 문제는 그 J밑에서 일하는 P성향의 후배다. 가끔 J가 P에게 잔소리하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그냥 지나쳐도 될 일 같은데, 꼼꼼하게 잔소리하는 것 같다. P에게 너무 힘들지는 않은지 물은 적이 있다. 다행히 MBTI덕에 P는 J를 이해하며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MBTI 검사의 순기능은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지금은 J지만 P였던 과거를 생각하면 P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