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푸치노 Aug 08. 2023

입사 28주년

28년 동안 퇴사에 성공하지 못했다

28년 전 여름, 삼풍백화점 사고로 나라안이 온통 어수선하던 때,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한 달간의 합숙 교육을 위해 버스에 올라타는 것으로 내 회사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나 오래 회사에 남아있게 될 줄은 말이다. 신입사원 합숙교육에서 20명이 한 팀이었는데 이제 다들 떠났고 나만 남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모두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대략 5년쯤만 일하고 그만둬야겠다 생각했다. 대기업의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나사못 하나의 역할을 해내며 몇십 년씩 사는 것은, 20대의 내가 바라던 삶은 결코 아니었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회사를 강제로 떠나야 할 시기가 다가올수록 회사일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아이러니에 스스로 놀라고 있을 뿐이다. 막상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동안,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무수히 많았다.

입사 3년쯤에는 겨드랑이에서 자꾸만 날개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방학도 개학도 없고, 더 이상 입학도 졸업도 없는 삶,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매듭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생활의 연속. 출구 없는 공간에 갇힌 듯 갑갑하고 답답했다. 회사를 벗어나 여행도 다니고 싶었고, 해외 생활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냥 이 회사만 아니면 좋겠다 싶었던 적도 많았다. 실제로 다른 회사에 합격이 된 적도 있었으나 어쩌다 끝내 옮기지 못했고, 다른 삶을 꿈꾸며 몇 달간 딴 공부를 해보기도 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입사 10년쯤부터는 리더 역할을 하게 됐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이러다 행여 암에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두려워서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었다. 아파서 지금까지 총 세 번의 병가를 냈었고, 그때마다 회사 그만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봤으나, 결국은 회사로 다시 돌아왔다.

내게 용기가 부족했는지 모른다. 과감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었지만 번번이 여러 가지 이유에 막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니면, 월급이라는 마약에 너무 깊게 중독돼 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28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따박따박, 매달 21일이면 통장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월급과의 이별이 쉽지 않았다.   

내가 그때 그만뒀더라면 어땠을까, 나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작가의 이전글 P로 태어났지만 J로 살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