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의 글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중 가장 좋은 일은 새로운 극본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제안의 들어오고 계약을 하기까지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나에게 맡겨도 될지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다행이다. 열심히 해야지 싶으면서도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내가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바로,
한국 드라마 재미없어서 보지 않고, (주로 미드나 일드를 봄)
한국 드라마를 제작하려 하지만 요즘에도 드라마를 보지 않는 기획 PD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
나는 감히 이런 기획 PD는 조심하라는 말을.. 나와 비슷한 상황인, 작가 지망생 분들에게 하고 싶다.
아니, 솔직히 가능하다면.. 멀리하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저렇게 말하면서도 기획 PD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작가와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만나지 못했다.
왜? 한국드라마를 재미없어서 안 본다고 말하는가?
본인이 한국드라마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주로 저런 말을 하는데
드라마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견고하게 다져졌다.
재미없다는 말로 결론을 내어 버리면, 안 본다는 변명거리가 되니까.
재미없어도 한국에서 드라마를 만들려는 사람이라면, 봐야 하는 게 맞다.
인기를 끈 드라마는 왜 잘됐는지
잘 안 된 드라마에서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국에선 시청률이 안 나왔지만 해외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는 왜 인지
OTT를 통해서 계속 시청을 하고 회자되는 드라마는 왜 그런지.. 등등...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작가들도 그런 고민들을 하고 노력을 하는데 왜 기획 PD는 안 하는 걸까?
"한국 드라마 재미없어요.. 저는 미드처럼.. 일드처럼 이렇게 하고 싶어요"
"그게 뭔데요?"
"아.. 그건.."
"그런 자료 같은 거.. 준비된 예시가 있나요?"
"없어요"
대부분 느낌적인 느낌만 있어서 정말 위험하단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작가 입장에서 어? 너무 좋다!!! 이런 생각을!!!!
대본에 도움이 되는 어떤 신박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국 드라마에서 다 했던 공식들이나 이야기들이다. 그걸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이 모르고 있었다는 자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답답한지..
그런데 신념은 확고해서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글만 집중해서 쓰는데도 부족할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쓰게 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한 무시..
아니 나에 대한 무시와 배려 없음을 견뎌야만 했다.
입봉 한 작가 혹은 유명 작가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는데 다음과 같다.
1) 회의에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고, 주인공 캐릭터를 먼저 세우자는 나의 말에
캐릭터 이야기를 하는 건 허황되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답답하다.
2) 12부 드라마 전체. 각화를 자신이 생각하는 3막 구조에 맞게, 본인과 함께 써야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공식으로 하면 대본이 분명 잘 나올 것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개발할 때도 이런 공식을 적용해서 써왔다. 이게 맞다. (일방적으로 우기고 있는 지점)
자잘한 것들이 많았지만 크게 저 두 가지였다.
이걸 어디까지 참고 버텨야 하는 것일까 혼돈이 많이 생겼다.
공동작업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는 것인데,
서로 의견을 나누고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런 기획 PD는 자신의 방식 만을 고수하면서 2달 동안 이어진 회의 내내 도리뱅뱅 하듯이
본인이 말하는 대로, 본인이 하는 방식으로만 하는 걸 요구했다.
그 방식에서 좋은 점은 배우고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방식에 대한 자료나 준비된 것들이 전무했다. 그냥 말로 설명해서 날 설득시키겠다고 한다.
그런데 12부 대본을 왜 내가 기획 PD가 하라는 대로 써야 하지?
저 증명되지 않은 방식을 가지고?
결론은 하나였다.
대본은 작가인 내가 쓰는 것이고
나중에 대본이 재밌으면 다행이지만 재미없다고 욕을 먹을 지언 정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누구의 방식도 아닌, 내 방식으로 써야만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것.
내가 재밌다고 생각해야 글도 재밌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를 믿고 하자!!!
일련의 이런 별의별 과정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대본으로만 생각할 텐데, 그 평가의 몫은 온전히 작가가 갖는 것이다.
그러니 맘을 더 독하게(?) 먹어야만 한다.
나처럼 피해야 할 저런 기획 PD와 작업을 하는 작가 지망생 분들이 있다면..
싸워야 한다고. 기꺼이 그래야만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그래야만 하는 나의 다짐의 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