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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아놀자 Nov 27. 2024

<1장>  고난이도 아이템은 대표님 아이디어다.

1장의 세 번재 이야기 : 마치 구전처럼 전해져 오는 아이템


제작사 대표님의 아이디어를 발전 시키는 게 최고 난이도 작업인 것 같다. 

그 짧고 강렬했던 경험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학교에서 친해진 언니의 소개로 기획PD 님을 소개 받았다. 

그 분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따로 만난 적은 없는 분이었다. 

PD님은 코로나 시국에 회사를 이직했고, 적극적으로 드라마 제작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으나 나와 연이 닿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 

그러던 와 중, 먼저 그 PD님과 작업을 하던 언니가 작가를 찾는다기에 나를 소개해 준 것이었다. 


감사했다. 

곧장 카페에서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대본을 쓰는 것 까지는 아니고 '기획작가'를 찾는다고 했다. 


- OTT 용, 시즌1-2 를 만들 수 있는 전체  시놉시스 작성. 

-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하여 볼만한 드라마 기획안을 만들어내기.


기획안은 제작사에서 PD님들이 만들 예정이라 전체 이야기를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한달 반 정도 되는 짧은 기간. 하겠다고 곧장 말을 하긴 했는데... 


어라? 

이게 꽤 제작사에서 꽤 중요하면서도 어렵고 난관이 가득한 개발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제작사 대표님이  던진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재밌으면 대표님의 공이고 재미없어도 대표님이 그만하라고 할때까지 그만 둘수 없는 그런 아이템!!)

(미리 한번 더 언급하고 싶은데, 참.. 어려운 아이템이다... ㅠㅠ ) 




코로나로 인해 OTT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흐름 속에 기회를 잡아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대표님은 어떤 영화를 보다 이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고 한다.

곧장 직원들에게 기획개발을 진행시켰다.   


컨셉은 근미래, 황폐해진 대한민국, 서울. (디스토피아) 

혼돈의 시기에 권력자들이 누리며 살고 있고, 시민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시민 중 누군가 이 모든 걸 깨부시고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싸운다.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을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길...)  


짧은 몇 문장으로 쓰고 보니 흔하디 흔한 소재 같지만 좀 더 세부 내용과 컨셉을 들으면

잘 만들면 스타일리쉬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갠적으로) 

판타지 액션 스릴러? 쯤 되려나? 

어쨌든 프로젝트를 빠르게 진행하고 싶었던 대표님과 PD 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시안을 뽑고 기획안도 만들었지만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게다가 회의 때 마다 막 내용이 바뀐다고 했다. 


당연하다. 중심 이야기가 없고 주인공도 명확하지 않고, 독특한 컨셉만 있으니까. 


결국, 작가와 함께 중심 이야기를 쓰자는 결론에 닿았고 

기획안을 위한 한달-두달의 짧은 기간동안 빠르게 시놉을 쓸 "기획작가"를 모집하기로 해서 

내가 PD님과 만나게 된 것이다. 


난 무조건 할 생각이었다. 

자료를 보니 흥미로웠고, 대표님이 뭘 원하는지 직접 듣고 잘 개발해서 대표님 눈에 띄어 

가능하다면 대본작업까지 하게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참.. 짧은 시간에 큰 꿈을 꿨다... N 아니랄까봐. 


근데 꿈이 파삭- 깨지는 건 금방이었다. 생각지 못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1. 기획작가는 나 혼자가 아니다. (그래.. 나와 같은 작가 지망생을 믿을 순 없었겠지..)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작가를 한데 모아서 개발한다. competition 컴피티션이네? 

    

2. 모두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건 아니고, 

    3-4명씩 조를 이뤄, 담당 PD가 조마다 있다. 그럼 그 PD랑 만나서 작업한다.

    그럼 각 담당 PD님들은 매주 모여서 각각의 팀에서 나온 의견들을 

    취합해서 회의를 하고 정리를 한다. 그 결과를 듣고 다음 작업을 진행한다. 

    어? 그럼 작가뿐만 아니라 PD님들의 경쟁이기도 하네? 

    + 우리가 직접 이야기를 어필하거나 대표님을 만날 일은 없다. 절대. 네버. 


3. 작가 권리? 없음. 크레딧 없음.


4. 대본을 쓸 가능성? 없다고 보는게 맞음 


5. 계약금....... 100만원 


아.. 네 그렇군요. (기간도 짧은데 돈도 적게 주시는 군요) 

그래도 한다고 했다. 

PD 님과 작업 잘해서 인맥을 이어갈 수도 있고 노는 것 보다 

나의 부족한 경력에 1줄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난 아이템이 좀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이야기도 보면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자료를 받고 꼼꼼하게 보고 또 보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주인공 캐릭터 뿐 아니라 주변인물들.. 그리고 세계관.. 공간에 대한 생각들.. 

시즌2를 위한 시즌1의 엔딩 아이디어 까지 열심히 작업했다. 


그런데, PD님과 회의를 하고 와서 수정 작업을 하면 할 수록 모르겠고 길을 잃는 기분이었다. 

PD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내용들을 전달 받으면.. 응? 다른데? 싶었다. 

시간도 부족해서 빨리 써야 하는데.. 싶은 조급함도 있었다. 


답답한 맘에 그때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대표님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 
대표님이 원하는 주제.. 
그게 뭐냔 말이야!!!!!!!! 


쓰고 나서 불연듯 깨달은 게 있었다. 

대표님의 생각. 나는 절대 100%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직접 대화라도 해보면 나을 것 같은데, 나 같은 작가 지망생에겐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표님께서 바쁘시기도 하고.... 

그런데 대표님의 생각을 담당 PD도 100% 알 수가 있었을까? 없었을 거다. 


결국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듣는 대표님의 생각은 방향을 잃거나 달라질 밖에 없는데.. 

하나의 아이템으로 작가 여럿이 이야기를 매주 쏟아낸다? 

그럼 누구 하나 맡아서 정리를 해줘야만 한다. 

책임지고 이끌고 가줘야 하는데 그런 사람도 없었다. 

그걸 해 줄 사람은 PD님들 중 한 명이어야 하는데, 그 분들도 프로젝트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 

바쁘고 정신 없어 보였다. 중간에 빠진 분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초반 시작할 때와 달리 힘이 빠지고 있는 느낌이었고 

PD님들도 그냥 계약한 기간만 끝내고.. 적당한 시놉시스만 제출해야지.. 하는 느낌이었다. 

(내 개인적인 느낌!!!) 


마치 아이가 놓친 형광색 풍선이  어디로 갈지 모르고 하늘을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나도 부족했다. 

그래도 경험으로 배운게 있었다. 


- 대표님의 아이디어로 이미 회사 차원에서 많이 진행된 프로젝트는 섣불리 참여하지 말자.. 어렵다.. 

  많이 어렵다. 

- 만약 참여하게 된다면, 아무리 대표님의 아이디어라고 해도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난 대표님 생각이니까.. 하고 주눅이 많이 들었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생각을 주장하고 밀고 나가도 된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도 되고.. 

  내 생각이 먼저 잡혀야 기간 내에 이야기를 어떻게든 완성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옮겨 적는 건 재미도 없고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 한달짜리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어렵다. 한달만에 기깔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는 천재적인 작가는 

   애초에 이런 프로젝트를 할 이유가 없을텐데 말이다. 


어찌되었든, 

줄거리를 써서 PD님께 전달하고 프로젝트를 잘 마감했다. 

그나마 스스로 칭찬해주기로 한 건, 시즌1의 엔딩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괜찮다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괜찮은 엔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PD님과도 잘 마무리해서 이후에도 안부인사를  나누는 사이였고, PD님은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다른 회사에서 같이 한 프로젝트는 없었다. (그땐 내가 다른 회사랑 계약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긴 하다. 

누군가 대본을 쓰긴 했을까? 

드라마로 나온 건 없는 거 같은데.... 

만약에 잘되어서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면 응원하고 싶다. 



덧, 

혹시라도 누군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작가 지망생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대표님과 직접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인 그분의 생각을 들어보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이야기를 뽑아내기 어렵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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