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원작 작가 미팅을 하고 싶었던 이유 (2)

1장의 여섯 번째 이야기 :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by 기린아놀자

[1장의 다섯 번째 이야기 : 어딘가 모른 게 찜찜한 느낌] 에 이어지는 글.

원작 작가님을 만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원작 작가님과의 미팅은 원래 제작사 대표님과 신입 기획피디님이 함께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당일, 대표님은 같이 하지 못했고,

지인에게 소개받고 미팅했던 담당 피디님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팅은 조촐하게 3명. 원작작가님, 나, 신입 기획피디님. 이렇게 진행되었다.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후에 돌이켜보니 이게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단 생각이 든다.


내가 원작 작가님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은 세 가지였다.


1. 주인공이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혹은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죽음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누군가의 죽음이 꼭 필요한 것인가? 다른 선택은 없는가?


2. 현재까지 그려진 원작은 드라마 1부 정도의 내용 밖에 안되는데,

12부 혹은 16부로 만들어진다면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데, 뒷부분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완성해 두신 건지.


3. 완성한 뒷부분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수정할 의향이 있으신지.

완성한 이야기가 없다면 극본을 쓰는 과정에서 아예 새로 창작하고자 하시는 건지.

그렇게 함께 쓴 이야기를 다시 웹툰으로 그리실 건지.


이 외에 궁금한 질문들을 정리해서 갔는데,

대화가 오고 가던 중에 이 모든 질문의 답보다 중요한 문제가 발등에 떨어져 버렸다.

바로 "극본" 타이틀에 대한 지점이었다.

응? 이건 생각도 못한 건데??


내가 미팅에서 제작사를 통해 전해 들은 것은 원작 작가님이 '극본'을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구성하는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주기로 하신다는 것이었다.

원작 작가님들이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 나에게 괜찮냐 물었고 동의했다.

그런데 막상 원작 작가님을 만나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원작 작가님은 직접 극본을 쓰고 싶었는데 시나리오나 극본을 한 번도 쓴 적이 없고 배운 적도 없어서

제작사에서 난감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협의 끝에 나온 대안이 우선 작가를 구해서 같이 회의를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드라마로 만들어질 가능성을 높여 놓은 후 (기획안과 대본 4부까지 쓰는 것)

뒤를 논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난 물었다.

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원작 작가님께서 극본.. 제가 생각하는 그 드라마 대본을 쓰길 원하시는 거죠?"

"그렇죠."

"아.. 네 저는 미팅 때 듣지 못했던 내용이라서요."

"그리고 제작사에서 반대해서 내가 대본을 직접 못 쓰더라도 극본 타이틀에 이름을 올려야죠."

"네? 극본 타이틀에 무조건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대본을 안 쓰시더라도?""

"당연하죠. 제 이야기입니다."


원작 작가님의 강한 의지와 눈빛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건 내부 사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미팅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개발 회의에 원작 작가님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와

원작 작가님과 공동으로 극본을 쓰는 프로젝트는 전혀 다른 거 아닌가?

게다가 나 혼자 극본을 쓰더라도, 극본 타이틀은 공동으로 올라가야 한다?


참.. 별일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나와의 계약도 100% 확신의 극본 계약도 아니고

우선 해보고 괜찮아서 나중에 계약을 하게 되면 그때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이해해 보려 했지만, 그럼에도 결론은 이건 아니다였다.

처음부터 나에게 원작 작가님과 함께 극본을 쓰는 프로젝트라고 했어야 했다.

제작사에서 끝까지 원작 작가님이 극본 쓰는 걸 막으려 했다 하더라도

분명 원작 작가님은 극본 타이틀만은 올려야 한다고 하실 기세라 그건 막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같이 있던 신입 기획 피디도 중간에서 난감해하고 있었고 대표님에게 들은 적 없는 내용이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극본 타이틀에 이름이 올라가려면 대본을 쓰셔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자 원작 작가님은 살짝 화가 나신 듯, 대표님에게 말하겠다고 왜 오늘 안 왔냐고 언성이 살짝 높아졌고

내 생각을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공동 극본으로 이름이 올라가는 건 상관없다. 그런 드라마들 요즘 많고 공동작업의 장점도 많다.

하지만 그걸 원하시면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제대로 된 극본을 원작 작가님도 쓰셔야 하고

지금 시작하는 기획 개발에서도 단순히 회의만 참여하시는 게 아니라

기획안부터 직접 쓰는 작업을 하셔야 할 거 같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원작 작가님은 알겠다. 그런데 단편 시나리오도 써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다만, 웹툰을 그리기 전에 장소를 나눠서 스토리를 써놓는데 그게 대본상 씬이랑 같고

드라마 대본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여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기획안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에게 얼마나 잘 쓰는 작가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를 드라마로 하는데

내가 우선이어야 하고, 극본을 써 본 적이 없으니 나한테 극본 쓰는 걸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나이는 많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우라면 배우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네에?

(원작 작가님의 정확한 나이는 듣지 못했지만, 대화를 통해 10살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건 확실했다)



원작 작가님을 뵙자고 하길 잘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계약했다가 오히려 난감해질 뻔했다.

난 이 모든 상황을 안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게 나을까? 아닐까? 살짝 고민을 했다. 소개해준 사람도 신경 쓰였다.


그러나 더 시간을 끌면 안 좋다고 생각해 이 계약은 진행하지 않겠다고 연락을 했다.

나와 처음 미팅을 했던 기획피디는 처음에 화를 냈다.

격양된 목소리로 우리 회사에 갖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이거하고 다른 것도 시켜줄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못한다고 하면 어쩌냐고.

기가 막혔다. 차분히 왜 안 하기로 했는지 이유를 얘기했다.

그러자 화가 가라앉으신 듯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왔다.

회의에 참석한 신입 피디가 조율을 잘 못해서 이렇게 된 거 같다고

그 친구 대신해서 사과한다고 했다.

응? 좀 당황스러웠다. 왜 그 신입 피디님이 잘못이지?

나는 아니라고 그 피디님은 대표님만 아는 세부적인 내용을 알지도 못하셨는데 최선을 다하셨다고 말했다.

그러자 극본을 쓰는데 원작 작가님이 간섭하지 않게 해 줄 테니

극본을 혼자 맡아서 다 쓰고 나중에 이름만 같이 올리는 거 어떠냐고 나에게 물었다.

네?

이 얘기까지 듣고는 좀 욕이 나왔다.

소리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진짜 너무 열받았다.

진짜 여러 면에서 작업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 원작이 있는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에서

보다 정확하게 모든 걸 협의하고 얘기한 후 계약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꼼꼼하게 확인한다 해도 놓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솔직하게 궁금한 것들..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을

다 말하고 조율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나중을 위해서도 낫다.


아! 그리고

대부분 믿고 작업을 맡겨주시는 원작 작가님이 더 많다.

나 같은 경우엔 특이한 상황이었던 거 같다.



덧,

원작 작가님과의 만남에서 극본 타이틀 내용을 제외한 줄거리와 관련되어 정리한 내용이 별거 없지만

정리해서 신입 기획 피디님에게 보내드렸다. 나중에 혹시나 활용하시라고.

그게 좋게 작용했던 걸까? 그 신입 기획 피디님이 회사를 옮기고 나서 나에게 연락을 줬다.

예상치 못해서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작은 인연이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장> 원작 작가 미팅을 하고 싶었던 이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