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 방식을 바꾸니 관계가 달라졌어요
남편이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남편의 표정과 기분을 살핀다. 웃으며 들어오길 기대하며 남편의 얼굴을 바라본다. 웃으며 들어올 땐 안심이 되지만 표정이 좋지 않으면 괜스레 미안해진다. 감정은 각자 자신의 것인데, 나에게 남편의 기분과 감정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남편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시간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의 피아노 레슨 일정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더 늦지 않게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아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기도 전에 전화를 했다.
"여보, 이번 주에 아이들 피아노 레슨 일요일 2시 어때?"
"아침 일찍 가는 게 좋은데."
"그래? 여유있게 가려면 2시가 좋을 것 같은데"
"2시는 애매한데..."
"그럼 토요일 저녁에 어떤지 선생님한테 물어볼까?"
"대회 몇 시에 끝나는데?"
"글쎄. 오후에 끝날 것 같은데 정확하게 잘 모르겠네"
"대회 끝나고 집에 오면 몇 시인데? 서울에 결혼식장 갔다가 엄마 다시 모셔다 드리고 또 어떻게 대회장까지 가?"
"나는 결혼식 끝나고 대회장으로 올 줄 알았지..."
"네가 알아서 해"
매주 토요일이면 아이들이 개인레슨을 받고 있는 선생님 댁으로 간다. 그런데 이번 주는 첫째 아이의 일정으로 인해 일요일로 옮겨야 했다. 아이의 댄스대회 일정과 남편 사촌의 결혼식 일정이 겹쳐 남편은 대회가 열리는 곳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의 피아노 레슨 시간을 정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가 아니어서인지 짜증이 나는 듯했다. 주말에도 평일에 이어 밖으로 나가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니 자신만의 시간이 없어지는 것 같아 화가 난 걸까?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웃지도 않고 바로 옷만 갈아입고 누워버렸다.
남편과 상의해 보았지만 요일이 결정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내가 결정해야 했다. 운전해서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것이 남편의 몫이었기에 남편의 생각이 중요했다. 함께 결정한 일이지만 때로는 남편에게 힘든 일정이 되는 것 같아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차를 운전할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버스를 타면 두 시간이 걸려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일정이 틀어질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도 하는데 - 긴 시간 버스를 타는 것이 아이들도 힘들지만 세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나도 쉬운 일은 아니다 - 남편 입장에서는 주말까지도 아이들 스케줄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고 힘든 것 같았다. 남편과 상의하여 결정한 일이기에 매주 빠지지 않고 선생님 댁으로 가지만 오가는 것이 남편에게 때로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서, 그렇게 보일 때마다 내가 할 일을 남편에게 미루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수고하는 남편에게 칭찬의 말을 하며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고, 누군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아이들에 대한 일들이 나만의 일이고 나만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들에 대한 일이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 생각하는 나는, 아이들에 대한 일을 '부탁'해야 할 때, 왜 부탁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같이 결정하면 좋겠는데, 도움을 요청하고 부탁해야 하는 것으로 느껴질 때는 마음 한편으로 나만의 아이들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남편에게 직장일을 하는 것이 남편이 해야 할 일이기에 아이들에 대한 일이나 결정권이 나에게 넘어온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부부가 함께 상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남편이 고생하고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아이들에 관한 일이 자신의 일이기도 하니, 자신의 기분보다 상황을 먼저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말이나 태도에서 느껴지는 남편의 마음이 때마다 달라서, 남편의 마음이 바뀌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맴돈다.
다시 돌아와 내가 남편의 기분을 살피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계획한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남편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의 기분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서로의 기분이 상해 아이들마저도 그 기분에 영향을 받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내 마음 안에 있었다. 상의하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고 어영부영 넘어가질 때 남편이 화를 낼 가능성이 있어 언제든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가 있는데, 그 우유부단함이 남편에게 화를 일으키는 요인이었다. 내가 걸정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의견에 남편이 동의하지 않고 화를 낼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화를 내는 이유를 알지 못할 때는 화를 내는 것 자체로 남편이 미웠다. 그 이유를 알고나서부터는 남편에게 상의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미리 생각을 해두기도 한다. 어느 정도 결정을 한 후에 정확하게 또렷한 말투로 이야기하니, 남편이 동의하는 확률이 높아졌다. 미리 결정해 놓은 후 이야기 하니 통보하는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나와 생각이 다르면, 바로 결정하지 못해 얼버무리게 되었다. 내용을 정리한 후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 남편이 안심하는 듯했다. 바로 결정하지 않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왔다 갔다 하면 남편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정확하게 말하고 표현을 구체적으로 하는 등 말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니 소통이 원활해져 관계의 질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부부 사이에 서로 부딪히는 이유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아는 데 있어 MBTI분석이 도움이 되었다. 나의 NFP성향과 남편의 STJ 성향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게 되면서 남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NFP 유형인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폭으로 차지해, 계획이나 결정이 즉흥적으로 변경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유연성이나 융통성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줏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야무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신속하면서도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STJ 유형의 남편이 보기에 우유부단하다고 느낀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렇게 하라는 거야, 저렇게 하라는 거야, 란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당장 결정이 나지 않아도 상황에 따라 기간이 있는 경우 계획을 바꾸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는 남편은 확실하지 않거나 빨리 결정이 나지 않으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내향형인 것만 제외하면 -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 서로 다른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먼저 성격 유형에 대해 공부한 나는 공부한 것으로 남편을 이해시키고자 해 보았지만, 가르치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내가 먼저 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MBTI를 공부하며 지도해 주신 선생님은 - 우리 부부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 서로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성향을 놓고 분석해서 말씀해 주셨다.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의 성향을 놓고 각자의 대화방식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질문하셨다. STJ성향의 도반님은 팩트 위주로 구체적으로 말을 하셨고, 그것을 예로 들면서 남편도 그런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해 주길 원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알려주셨다.
앞의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여보, 토요일에는 큰애 일정도 있고, 결혼식도 있으니 피아노 레슨을 일요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해지니까, 일요일에 여유 있는 시간으로 잡아보는 것이 어때? 아이도 긴장하고 있다가 풀어지면 피곤할 거야. 한숨 돌리고 일요일 오후에 레슨을 받으면 좋겠어."
공부를 하고 있을 당시에는 각 성격유형의 차이가 확 와닿지 않았다. 이론 상으로는 흥미가 가고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남편과 나에게 직접 적용해 보는 것은 어색했다. 내면에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성공적인 대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새롭게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았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데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부부의 상황과 대화를 글로 옮겨 적으면서 남편과 나 사이의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내 생각을 분명히 말하게 되면서 남편과의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서로의 욕구를 인정하고 충족할 수 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감정적인 것과는 별개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만 따르려고 했던 때와 다르게 말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단단해졌다.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우물쭈물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내 의견과 생각을 말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과제였고, 부부갈등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대화를 잘 이어갈수록 화나는 감정이 섞이지 않게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친밀해지고 부드러워졌다. 남편은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빠르게 결정하지 못할 때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사건이나 이유를 알게 되면 남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부부갈등으로 힘들거나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면, 서로의 의사소통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일상 속 좋은 에너지를 드리기 위해 고민하는 봄날의 달팽이 작가 이경진입니다. 한 주의 첫 시작인 월요일이네요. 연재를 월, 수 하고 있는데요. 특히 월요일은 주말을 지나고 맞는 첫 요일인 만큼 다른 날들 보다도 조금 더 힘차고 밝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몸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고 믿어요.
정승환의 눈사람이란 곡에서, 한참이 걸려도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란 가사가 떠오르네요. 행복한 감정은 가끔 눈물이 나게 합니다. 우리의 생이 끝이 있기 때문인 걸까요? 얼굴도 모르고 통성명도 할 수 없는 우리지만, 스쳐가며 이 글을 볼지라도, 잠깐이나마 생각에 빠져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글을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우리 모두 바쁘다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요! 모두 행복하세요!!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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