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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변화를 실감한 순간

이 세상에 사랑을 심으리

살짝 덥지만 편안한 오후였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당겼다. 차에서 남편이 쉬고 있는 동안 셋째와 함께 근처 카페로 가 시원한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했다. 셋째는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빵 먹고 싶다고 나를 끌고 옆 건물에 있는 빵집에 들어갔다. 고소한 빵냄새에 이끌려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올 때마다 꼭 들리는 빵집이었다. 아이는 늘 먹던 쪽파크림치즈 베이글을 골랐다. 어디 보자, 또 어떤 게 맛있을까, 남편과 함께 나눠먹을 상상을 하며 빵이 올려진 테이블을 기웃댔다. NEW가 붙은 빵은 어떨까? 산딸기 크림 바게트?! 바삭한 바케트와 달콤한 크림이 만나면? 상상만 해도 침이 고인다.


한 손에는 헤이즐넛 아메리카노 두 개를 담은 캐리어를, 또 한 손에는 빵이 든 봉투를 들고 남편이 있는 차로 갔다. 평소 차에서 빵이나 과자를 먹으면 부스러기 흘린다고 신경 쓰던 남편은 커피와 빵을 보자 반가운 듯 받아 들었다. 빵 한입 먹고 커피 한 모금 마시고, 피곤함이 싹 달아날 것만 같다. 빵과 커피는 절대 실패 없는 조합임에 틀림없다. 남편은 달콤하고 고소한 빵과 시원한 커피를 들이켜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미소가 지어진다. 고생하는 남편에게 이 순간이 보상이 되기를 바랐다. 주말마다 피아노 레슨을 받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올 때마다 자신을 운전수라 말하던 남편에게 힘이 되었으면 했다. 남편 표정을 보니 대성공인 듯? 포만감 때문인지 편안해 보였다.


빵을 다 먹은 셋째는 놀이터에 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운전석에 앉아있던 남편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 안 흘렸어" 나는 의자를 보며 말했다.

"아니 짐을 바리바리 가져가냐고" 남편은 가방을 보며 말했다.

"앉아서 책 읽으려고 책 가져왔어" 휴. 남편이 부스러기 흘렸다고 잔소리하는 줄 알고 멈칫했다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먼저 레슨을 받고 나온 둘째는 셋째와 함께 엄마 놀이를 하며 함께 놀았다. 그 사이 나는 책을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드니 차에서 쉬고 있던 남편이 걸어오고 있다. 내 옆에 앉아마자 남편이 말했다.

"좋네.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남편은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이 싫지 않은 듯했다.

"책도 읽어야지." 남편의 말에 반응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는 놀이터 풍경과 어우러지며 편안하게 했다. 밝은 햇빛이 우리를 감싸듯 따뜻한 기운이 우리를 둘러쌌다. 아이들과 남편, 마치 내 인생이 완성된 것처럼 느껴질 만큼, 행복의 정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연스럽고 따뜻한 이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가만히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남편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 내가 햇빛이 되어 남편을 비춰주고, 남편은 의식하지 못한 채 사랑을 흡수하고 있었다. 마음은 통하게 되어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편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부 사이가 개선될수록 자녀들과 부모 사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말이 가깝게 다가왔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내가 직접 느끼고 경험하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새로운 기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켜 주고 완전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은 부족한 환경일지라도 그것마저도 감사했다. 서로가 있어 위로가 되고 안정이 되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의도적으로 신경 써야만 했다. 일방적인 노력이었던 것일까? 남편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보다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노력에 대한 결과를 기대하며 실망하기를 반복하기도 했지만 변함없이 남편 옆을 지키는 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애착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사랑으로 서로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부부 사이의 친밀함은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서로의 사랑을 믿는 단단함을 새기게 했다.


농사를 지을 때 땅을 고르고 비료를 뿌리는 등 비옥하게 만들어 풍성한 작물이 열매 맺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도 서로의 헌신과 수용으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마음속 불평불만이 사랑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느끼는 날들이다. 그 이전에는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상의해야 한다거나 함께 해야 할 때, 부탁해야 하는 것으로 느껴져 말하기를 부담스러워했다면, 지금은 남편이 거절하지 않음을 알고 당당히 말한다. 남편과의 관계가 더욱더 친밀해질수록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자녀들을 보며 같이 기뻐하고 행복하게 된 것에 감사하다. 그 사랑이 변치 않도록 공고히 쌓아나갈 것이다.


우리는 예전보다 서로를 더 많이 바라본다. 미간에 주름이 가있지 않은 남편의 얼굴이 보기 좋다. 부드럽게 서로를 응시한다. 부부의 사랑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안한 마음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자기 돌봄의 글쓰기는 어느새 남편과의 사랑이야기로 변하고 있다. 어쩐지 그 변화가 반갑다. 변화를 알아차리고 남편에 대해 고마워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의 노력을 사랑으로 되돌려 주는 남편을 사랑하고, 사랑한다.




주말 동안 여러 일정으로 바쁘게 보내서인지 첫째 아이는 밤새 열이 났다. 자다 깨다 반복하며 힘들어했다. 해열제를 먹였지만 그 효과가 미미했고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병원에 다녀와 아이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글을 쓰다 잠시 들여다보니 곤히 자고 있다. 셋째 아이가 아기였을 때, 낮잠을 자고 있는 사이 글을 썼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다 보니, 아기 돌보며 글을 썼던 치열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출간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남편과 나 사이에는 비뿐만 아니라 천둥 번개가 치고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날들 속에서 차츰차츰 날이 개더니 환한 봄이 오고 햇빛이 쨍하게 비추는 여름이 왔다. 우리는 서로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분위기로 느끼고 있다. 나는 우리의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며 글로 기록하는 중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이야기를 할 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고유한 나만의 이야기는 나와 세상을 비추며 나 자신을 온전하게 한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노력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계신가요?




저의 첫 책입니다. 사랑과 관심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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