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

관계에 대하여

"동서, 잡채 가져갈래요? 치킨 가져갈래요?"


시할머니의 생신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 후 쉬고 있는 동서에게 물었다. 나는 위생봉투에 잡채를 담고 치킨상자를 넣은 봉투에 올려두었다. 사 온 빵을 함께 넣었다. 내가 직접 만든 음식도 아니고 사 온 음식도 아닌데 마치 집주인인 것 마냥 동서에게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었다. 형님노릇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여졌다. 형님이라는 자리가 챙겨야 하는 위치로 생각되었던 걸까?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관계이지만 이렇게 라도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마음의 벽을 뚫을 수 있는 건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비슷한 동서와 나는 가족이 된 지 10년이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어쩐지 어렵게 느껴졌었다. 나보다 듬직해 보이고 시어머니에게 살가운 동서에게 샘이 나기도 했다. 멀고도 가까운 느낌이었다. 가족이지만 가족은 아닌 애매한 관계로 다가왔다. 어떤 이는 동서관계가 직장동료와도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동서를 품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잊히지 않고 늘 생각이 났다.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친형제와도 같이 편안해지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기를 바라왔다.


아이들도 비슷한 나이이고, 모두가 딸이어서 서로 공감하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조언을 듣게 되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게 되는 때가 많았다. 주로 경청하는 자리에 있었다. 마음으로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직도 마음에 벽이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든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질문할 것 같다.


'왜 그렇게 동서관계에 신경을 써요? 형식적인 것만 챙기면 됐지, 왜 이렇게 가족이 되려고 애쓰나요?'


동서를 볼 때마다 마음이 쓰였다. 겉으로는 듬직하고 강해 보이지만 그 안에 여린 마음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 형제도 서방님 단 한 명이고, 같은 시부모님을 모시는 형제지간으로서 마음을 함께 하고 싶었다. 나이가 같은 서방님과도 결혼생활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보지 못했기에 시댁에서 만나거나 다른 곳에서 만날 때마다 나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동서뿐이었다. 나를 보며 인사를 하거나 제대로 형수님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서방님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남편과 내가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애써 그 마음을 숨겨야만 했다.


사랑하는 남편의 가족이기에 형제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사랑은 순애보일 뿐인 걸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두꺼운 벽이 이제는 그만 기대하고, 바라는 쪽이 마음을 접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동서와 서방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부모님 아래 단 두 형제뿐이라 마음을 하나로 모아 서로 돕고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 생각하니 동서를 더 많이 생각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동서를 어떻게 하면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이런 물음이 올라왔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누구나 마음 안에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끔씩 우리 아이들에게 줄 옷을 하나씩 사 오거나 내 생일 때 선물을 챙겨주는 모습을 볼 때 동서에게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비친다. 그와 반대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 안에서 함께 있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하지만,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하면서 장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써왔을지, 그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여러 가족안에서의 사연들을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약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누군가에게 조언하고 충고하는 자리에 있어야만 했을 것 같다.


주로 식당이나 가게에서 매니저 일을 해왔던 동서는 지금까지 팀원으로서가 아닌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 동서가 결혼을 하고 자신이 아랫사람으로 있게 되니 얼마나 마음에 고충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형님의 자리에서 동서를 챙겼다면 얼마나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을까. 그러니 어쩌면 동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내 쪽에서 연락을 해야 하고 답을 기다려야 하지만, 동서의 상황과 마음씨를 알고 있기 때문에, 미운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오히려 나 자신의 마음을 드려다 보기 위해 노력한다.


직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함께 해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끼던 아이들 옷도 셋째에게 물려주거나 첫째 둘째에게 아이들 옷을 같이 샀다며 하나씩 건넬 때, 그것이 나를 생각해 주는 하나의 방식이라 생각하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 더 성숙한 형님이 되어서 동서를 감싸주고 안아주고 싶다. 나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동서를 챙기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야 말로 가족관계를 단단히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정가족에게 늘 받기만 하는 나는 철없는 둘째 딸이었다. 어떻게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몰랐다. 결혼을 할 때도 양가 부모님이 다 지원을 해주셨으니 얼마나 독립심이 없었던 걸까, 남편은 장남으로서 받기만 하는 내가 어리게만 보였을 듯하다. 살림살이 하나 내 돈으로 직접 마련하지 못했으니 몸만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 자신도 어떻게 이렇게 커왔을까,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왜 형님으로서 역할을 다하려고 하는지 그 마음을 이해하려면, 지난날의 나를 꺼낼 수밖에 없다. 부디 이해해 주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금의 모습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지금의 그 사람을 만든 어린 시절의 가족환경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 단단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것을 누군가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 스스로 깨달아가고 있었다.


남편과의 갈등도 수그러들고 아이들도 무탈하게 성장해 가면서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현명하고 성숙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조금 더 나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질 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친정부모님에게 더 이상 내 마음을 의지하지 않게 되면서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솔직한 마음을 언제나 누군가에게 다 내보이지는 않지만 글쓰기로 내 마음을 정리하고 넘어가면서 답답함을 해소하고 마음에 여유를 둘 수 있게 되었다.


관계는 나에게 늘 숙제였다. 내 마음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행복을 느끼고 싶었지만, 내가 걸고 있는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자꾸만 한 발씩 뒤로 물러났다. 내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도 온전히 그 관계를 책임지지 못했다.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또한 나만의 생각이자 오산일지도 모르겠지만, 나 외에는 아무도 그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마다 허탈하고 허무했다. 나에게도 그럴 의무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피해버렸다. 필요치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포기해버리고 만 것이다. 마치 어렵고 힘든 공부를 하다가 더 이상 못할 것 같아 손을 놔버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이 관계에서도 드러났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의 관계를 돌아보았을 때 무수하게도 시절인연이 많았다.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어느샌가 연락이 뜸해지고 만나게 되지 않았다. 취업준비로 만난 스터디 모임의 사람들부터 결혼 후 만난 엄마들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소원해졌다.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 줄 알면서도 그 자체로 편안함을 느꼈다. 문제의식이 없었다. 나를 둘러싼 관계가 가족밖에 없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오래 지속되는 관계들이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알아왔던 친한 동생과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고, 4년 전 만났던 자격증 협회의 사람들과도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스터디 모임을 갖고 있다. 그 수가 추려져 6명이라는 단출한 숫자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로 그 관계가 두터워졌다. 매해 새로운 스터디 주제와 목표를 두고 공부하고 있다. 2026년에는 릴레이 강연을 목표로 하반기에 준비를 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함께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서로가 키워주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내가 원했던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 관계를 내 주변에서 엄마들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나만이 갖고 있는 높은 기대가 서로의 관계를 어긋나게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어떤 기대를 걸기보다는 이웃처럼 편안한 관계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지나가며 만나더라도 가볍게 인사하고, 때로는 안부를 물으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가 생기고, 마음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가족에게도 터놓을 수 없어 답답함을 느낄 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우리는 관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작가님들께 ⸜❤︎⸝‍


글을 마치며 드는 느낌은 오로지 '감사' 뿐입니다.

나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어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작가님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보석처럼 귀한 무엇이 있나요?


저에게는 '관계'입니다.

작가님들과의 관계가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질문을 던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작가님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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