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엄마를 사랑해 주세요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골목이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상되는 정감 있는 장소다. 명절마다 가는 그 골목에 숙모의 집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사셨던 곳이기도 하다. 2층짜리 주택이었던 그곳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계단이 있었다. 한 집을 지나 또 계단을 오르면 또 한 집이 있었다. 아래층은 숙모와 외삼촌이, 그 위집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내시고 계셨다. 맨 꼭대기층엔 옥상이 있어 화분과 장독대가 늘어져있었다. 지금은 그곳이 어디였는지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나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이 있었던 것일까. 잊히지 않고 내 머릿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로 사촌들을 만나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또 언제 만나게 될까, 어른들은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 그 말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각자 먹고사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사정상 만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또 왜 만나야 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 골목 그 집에서 명절 때마다 만나던 사촌들이 방 하나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이모들과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숙모와 외삼촌 댁에 모였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바리바리 싸주었던 음식들이 큰 하얀 봉지에 담겨 손에 들리곤 했다.
주택 맞은편에 숙모가 운영하던 비디오테이프 가게가 있었다. 비디오를 빌려 집에 있는 전용 플레이어에 넣고 보던 시절에 단골손님이 꽤 있었을 만큼 장사가 잘 되었던 곳이다. 시간이 흘러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 때때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자식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을 참아내셨던 그런 곳이기도 하다. 대장암이라는 사실을 그 어느 자식도 알지 못했고 같이 사는 자식들 마저도 돌아가신 후에야 알았으니 후에 밀려온 어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곳에서 섭섭함이 아닌 후련함이 느껴졌다. 어른들 사이에서 재산분배를 놓고 이야기가 오갔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셨던 외삼촌과 숙모에게 대부분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저마다 아쉬움은 있었겠지만 부모를 모신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고, 형제의 난을 만들지 않기 위한 나름의 현명한 대처였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사촌들의 자녀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이들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감에 경조사 때마다 어른들은 놀라곤 하셨다. 사촌들과 만나지 못하는 횟수도 한해 한해 늘어만 간다.
나의 외가가 있었던 서울의 한 동네 그 골목 어귀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어린 나와 사촌들은 모래바닥 위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며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씩 비디오가게에 들어가 진열장에 빼곡히 차있는 비디오테이프가 든 플라스틱 커버를 구경하고 손님들이 놓고 가는 동전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때 그 시절의 풍경들은 나에게 옛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저물어가는 저녁노을 같다. 곳곳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지금은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려지는 장면이 되었다.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아직도 내 머리와 가슴에 남아있는 이유는 외할머니의 죽음과 마지막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공무원이라 좀 가난해도 평생직장이라 이모부들보다 제일 낫다고 말했다던 외할머니가 눈을 감으신 곳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어 숙모와 외삼촌이 신도시의 어느 아파트로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떠나며 다시 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애증의 감정이 어린 나에게 남아있었는지 무언가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른이라는 것이 어른이 된 나에게도 그리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뿔뿔이 흩어져 살며 다시 보지 않게 되었다. 어떤 죽음이 있어야 다시 보게 될는지 또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안부를 묻는다. 그때의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할머니는 늘 누워계셨다. 명절 때마다 뵙는 할머니는 늘 같은 자리에 한결같이 누워 우리를 맞이하셨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어딘가 아픈 모습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목소리는 쌩쌩했고 얼굴은 유난히도 반지르르했다. 깡마른 몸매에 하얀 눈이 뒤덮인 머리를 한 외할아버지는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곤 하셨다. 큰 덩치의 할머니와 빼빼 마른 할아버지의 모습이 부부라는 사실을 말해주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묘하게도 눈빛이 닮아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젊었을 때의 할머니는 엄마를 낳고 제대로 젖 한번 물려주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악착같던 할머니는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신도시의 아파트를 살 만큼의 돈을 남겨주고 떠나셨다. 4남매 중 유일하게 아들이었던 삼촌만 대학을 가고 엄마에게는 공부도 무용도 시켜주지 않았던 외할머니에게 엄마는 어떤 감정을 느꼈던 걸까. 이상하리 만치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슬픔 한조각도 내보이지 않았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부모님이 안 계신 엄마가 되어 엄마의 마음은 어떤지 묻고 싶었는데 집에 돌아온 엄마는 평상시와도 같은 모습이어서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낳고 길러준 부모에 대한 고마움보다 해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서운함이 엄마의 오장육부에 스며들어 좀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온전히 사랑해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최근 엄마는 건강검진을 받다 위와 장에서 용종 여러 개를 떼어 내셨다. 며칠 후에나 알게 된 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보험금을 받기 위해 그 방법을 물으려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그제야 자초지종을 이야기 한 엄마가 미웠다. 언니에게는 바로 다 얘기하셨을 텐데 둘째인 나에게는 왜 시간이 지나서야 말씀하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녀에게 짐이 될까 아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보다 말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부모자신이 자녀로서 책임질 부모가 있다면, 첫째 자녀는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모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부모님을 바라봤다. 둘째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구였어도 똑같이 하셨을 테니까.
엄마의 대장에 용종이 여러 개 있었다는 말을 들으며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건강을 위해 식단관리와 운동을 일상생활에 우선으로 생각하며 해오셨는데도 건강검진 성적표가 이리 나쁜 걸 보면 유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당뇨예방을 위해 잡곡밥을 드시고 고기보다 채소위주로 식단을 짜셨는데도 어떻게 대장에 용종이 네 개나 발견되었을까, 조직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걱정이 되면서도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궁금해졌다. 나쁜 결과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는 외할머니의 대장암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이었을지 문득 알고 싶어 졌다.
비록 엄마의 소식을 늦게나마 듣게 되었지만 어쩌면 엄마는 보험금 청구 방법을 묻는다는 핑계로 나에게 말씀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에게는 바로 말씀하시지 않는 건지. 아빠조차도 왜 나에게 전화 한 통을 안 하시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아빠의 마음이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내가 미워서일까. 안부전화 먼저 하지 않는 나를 탓하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나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먼저일까,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가 먼저일까 생각하며 괜한 저울질을 한다.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도 알고 있지만 자라오며 느꼈던 두 자녀에 대한 비교가 계속해서 내 마음을 엇나가게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며 나는 절대 내 부모의 양육방식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녀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고 똑같이 가르치겠다고 결심했지만 첫째와 둘째를 키우며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심리학에서 첫째 자녀는 부모의 트로피라고 하는데, 그 말이 부모님에게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릎을 쳤다. 나는 아이들 각자의 재능에 맞게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의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에 대한 사랑의 소원함이 느껴져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을 꼭 안아준다. 둘째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날에는 하교 후 집으로 들어오는 둘째 아이를 반기며 힘주어 안아주었다.
외할머니가 자녀들을 키웠던 방식이 엄마에게로 전해졌고 그대로 대물림되어 나에게 왔다. 나는 그것을 끊어내고 싶었다. 내 눈으로 보이는 자녀들을 대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분석하고 이해하며 마치 제삼자가 보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 바라보았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다.
그리움의 향수를 자극했던 그 골목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이따금씩 생각나는 그 골목에서 애증을 느끼는 이유는 할머니의 사랑과 죽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어른들의 마음에 부모를 떠나보내는 슬픔만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애틋한 장소이기도 하다.
엄마는 할머니가 자신을 대했던 방식을 떠올리며 좋지 않은 기억으로 말씀하시곤 했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어린아이가 엄마 마음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대가 지나고 또 지나도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는 변화가 없는 듯하다. 엄마에게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 외할머니가 미우면서도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그곳에 계셨기에 결코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그동안 나는 그 공간이 옛 기억과 추억을 상기시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잊히지 않는 이유를 찾아가다 보니 그 속에 얽힌 사랑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그 장소를 떠나보내려 한다. 오직 할머니가 엄마를 순수하게 사랑했던 순간만을 기억하고 싶다.
"할머니, 엄마를 사랑해 주세요"
작가님들께 ⸜❤︎⸝
그동안 저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의 그릇이 작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듣기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관계가 틀어지는 계기가 생기는 것을 보고 그동안 내 마음만을 위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내 마음대로 나와 상대를 비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면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데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내 자신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나의 부족한 면을 바라보며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향수를 자극하는 한 골목을 떠올렸고
그 곳에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마음속으로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를 사랑해달라고요.
이제는 엄마가 더 많이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할머니가 하늘에서 엄마를 지켜보며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많은 사랑을 쏟아주길 바랐습니다.
엄마가 하고 싶었던 무용을 배우며 건강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글을 마치며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작가님들에게는 엄마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제 새해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감사합니다❤︎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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