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사치가 되어버렸다.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이리도 사치였던가. 어느새 싸늘히 변해버린 그의 언어가 오늘따라 매섭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의 마음은 언제부터 다쳤던 걸까.


그를 이해하지 않으려 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말이 총이 되어 나의 가슴을 쏜 나날들이 계속되면서 그만 살고 싶었다. 나를 탓하는 것인지 나를 싫어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나의 행동을 지적하며 고쳐지길 바란 걸 텐데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저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우리가 잠시 따로 지내다 다시 함께 산지 3년이 되어간다. 그의 말투와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말에 크게 반응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은 나만하면 되는 건데 아이들에게까지도 그 결심을 물려주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고 기억될까 걱정된다. 이유도 모른 채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을 탓하진 않을까 사라지려 하지 않을까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두렵다. 고개를 숙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처럼 아이의 고개가 강제로 꺾여질까 마음이 조마조마한다.


왜 난 비난과 명령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왜 남편은 자신이 무서워야 한다 생각하는 걸까. 이유를 알지만 일일이 늘어놓고 싶지 않다. 징징대는 아이의 욕구를 짓밟고 꺾어내려는 그가 밉다. 아이가 원하는 것에 왜 일일이 태클을 거는 걸까. 나는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고 그의 성질에 스트레스가 쌓여 아이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나만 있었다면 떼가 심해지기 전에 가능하다면 맞춰 주거나 떼를 써도 좀 기다려볼 텐데. 회사에서 자고 올 줄 알았던 남편이 갑작스레 화와 함께 등장했다. 자신이 퇴근하고 올 때까지도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로 인해 화가 난 남편은 둘째의 떼에 온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언제나 그의 분노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다. 어쩌면 익숙할지도. 이미 나는 커버려 그의 성질에 피해버리지만 어린 딸들은 마음에 상처 하나를 또 심는다. 나도 아이들에게 가끔 화를 내기도 하지만 욕을 하거나 때리지는 않는다. 오은영 박사가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때리는 행위는 아이에게 공포로 다가온다고 했다. 전혀 부모가 화가 난 부분을 알지 못한다 했다.


언젠가 그도 알게 될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걸. 아이의 부정적 마음을 없애기 위해선 긍정적인 경험을 몇 배로 시켜주어야 한다는데 우린 얼마나 더 많은 사랑과 긍정의 표현을 해야 할까. 과연 덮을 수 있을까.


아이에게 죄를 짓고 있다 생각할 만큼 미안한데, 당연히 그렇다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그의 언행에 분노하지 못해서 한심스럽다. 나조차도 부모로서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밤, 내 마음도 무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