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정원

남편이 애지중지 키우는 반려식물들

참 다행이다. 남편만의 공간이 있어서.


언제부턴가 남편은 식물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세 아이들의 이름을 달아 화분 세 개를 사 지금껏 열심히 키우고 있는 중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에, 남편은 아이스커피를 들고 베란다로 갔다.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화분 앞에 목욕탕 의자를 놓고 앉았다. 한 손엔 커피를, 다른 한 손엔 핸드폰을. 비는 세차게 내렸고, 그 속에 있는 남편의 모습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이 순간을 꼭 기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이 공간을 남편의 정원이라 붙여 주었다.


비가 와 어둑어둑해진 오후, 베란다 조명을 켜고 식물들 사진을 찍으니 싱싱한 기운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생생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남편의 끈끈한 보살핌으로 쑥쑥 자라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다. 때마다 영양제를 주고 비료도 넣어주면서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났다. 남편만의 공간인 이 정원에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식물들은 보란 듯 날개를 펼치고 고맙다 인사를 하는 듯하다.


비 속에 앉아 있던 남편은 안정적으로 보였다. 잔소리도 많고 화도 많이 내는 남편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니 놀라우면서도 다행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티브이를 보거나 영화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지금의 이 모습이 참 잘 어울렸다.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걸 제외하고 이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멍 때리면서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았을 텐데 핸드폰 속 영상을 놓지 못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평소에도 가만히 쉬지를 못하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쉴 새 없이 영상을 보던 남편이었다. 손목에 무리는 안 갔을 런지. 상대적으로 핸드폰을 적게 보는 나와는 정반대인 모습이다. 평소 나는 아이들을 보느라 핸드폰을 오래 쥐고 있을 순 없지만, 잠시 쉴 수 있을 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요샌 필사를 시작해 글 읽는 맛이 나 행복하게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같은 내향형이지만 각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달랐다. 몇 달 전만 해도 남편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여러 권 사 읽더니 지루해졌나 보다.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며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날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날들이 지나가고 나니 다시 이불 위에 누워 핸드폰 속 영상을 드려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식물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식물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아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몇 개 안 되는 화분들이지만 집안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적절한 시간에 물을 주고 가꾸면서 온 마음을 다 주는 것 같다. 아내와 자식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식물들은 가꾸면 가꿀수록 제 색을 발하고 싱싱해져 남편을 기쁘게 한다. 핸드폰만 쳐다보는 것과 나와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식물을 가꾸는 남편은 마음에 든다. 그 어떤 비싼 취미 생활보다 더 남편에게 잘 어울렸고 건강한 취미인 것 같아서 기쁘다.

덕분에 아름답고 건강한 식물들을 보며 좋은 기운을 얻어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울적하게 느껴질 법도 한 집안의 공기가 식물들로 인해 생기 있게 변한다. 어디에도 말할 곳이 없어 끙끙 거리며 참아내야 할 때마다 그 시간을 지날 수 있게 해주는 마음속 에너지들처럼 식물들도 그렇게 우리에게 지나갈 용기를 준다. 더 이상 답답해하지 말라고, 우리가 이 집안을 좋은 분위기로 만들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오후, 식물들은 선명한 하늘색을 배경으로 더욱더 건강해 보인다. 그 모습은 내게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


똑같은 그곳 그 자리에 있는 식물들을 밤이 아닌 한낮에 만나니 또 다른 느낌이다.


오늘도 용기를 내어 글을 쓰고, 포기하지 않았음에 감사한 하루다. 남편이 온 마음을 다해 식물들을 키워 냈듯이 남편도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