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순간을 기록하는 지금, 기억을 써내려 간다.
by 이경진 봄날의 달팽이 Jul 19. 2022
선선한 바람이 불던 밤이 지나가고 뜨거워진 여름 한낮의 시간이 왔다. 며칠 만에 책상 의자에 앉은 것인지. 글을 쓰며 늘어났던 근육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가슴 한편에 지녔던 아쉬움들을 일상의 관찰을 통해 잊어내려 했다. 얼마나 글을 사랑했던 것인지 컴퓨터 화면 속 글씨들이 애틋하고 아련하게 다가온다. 한창 더운 7월, 더운 바람을 밀어내려 많은 사람들이 휴가지로 떠난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없었다. 시동생 가족과 함께 캠핑을 즐기고 왔다. 즐겼다 라는 말이 퍽 와닿지는 않는다. 시간을 흘려보내고 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와닿는 표현일 거다. 그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유익했는지 따지기엔 가족들 틈 사이에서 어색함을 극도로 숨기려 했던 나의 애씀이 너무나도 컸다.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척, 반가운 척을 했던 건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은 신나서 물놀이를 하고 춤을 추며 놀았다. 캠핑장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린 날의 추억 한 페이지를 작성했을까. 애써 만들어 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추억은 아이들의 깊은 마음속 어딘가에 남았다면 그걸로 족했다. 아이들의 감정마저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레 느껴지는 감정들을 어른들로 인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함께 보낸 1박 2일의 시간 동안 내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내 집, 내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두드리는 손가락이 빨라지기를, 쉬지 않고 써 내려가기를 바랐다. 타닥타닥 두들기는 손가락의 감각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랐다. 역시 난 글쟁이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핸드폰 속에 저장해 두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들이 저절로 깨어나지기를,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이야기를 이곳에 꺼낼 순간을, 오로지 모니터 속에만 담아 둘 그 순간을 기다려왔다. 지금,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글을 쓰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줄곧 말하고 싶었던 글을 쓰는 나를,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은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관심이 없었다. 나는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럼 내가 쓴 글을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물어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다음 질문은 야속히도 이어지지 않았다. 워낙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사는 그들이었기에. 예상은 했었다. 그다음 질문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다시 한번 깨달은 나를 발견했다.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말을 하건 안하건 크게 관심 갖지 않을 이야기였는데 괜히 나만 기대했었나.
시간이 갈수록 더 잘 쓰고 싶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충분히 기록이 되길 바랐다. 멈추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랐다. 내 글을 몇 명이나 읽던지 상관없이 쓰고 싶은 만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쓰면 쓸수록 내 생각의 깊이는 계속해서 땅을 파고 들어갈 만큼 깊어지기를 바랐다. 온전히 내 마음의 노력이 글 속에 무사히 담기기를 기원했다.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그땐 내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내 글이 담긴 이 공간에서 언제든 쉴 수 있기를, 글을 통해 내 마음이 깊고 넓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