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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게 '나'를 사랑하라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와 직면하는 것이다

변화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희생을 요구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대릴 샤프, 융, 중년을 말하다 중에서


나는 늘 변화를 꿈꾼다. 내일은 더 나은 '나'가 되어 있기를 소망한다.

비록 남편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언젠간 나의 노력으로 나를 변화시켜

우리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를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며 지금을 버티다


한때 나는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다. 계속된 남편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남편은 퇴근 후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왔을 때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보이면 바로 지적을 했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변했고, 딴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그의 기분을 종잡을 수 없었다.


남편이 집안의 상태에 대해 지적을 하게 되면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변명을 했고 이에 남편은 말대꾸를 한다며 더 세게 말했다. 알았어, 라는 한마디만 하면 됐는데 나는 한마디가 아닌 두 마디 세 마디를 해서 그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들었다.


나를 쓸모없는 나로 생각해야만 지금을 견딜 수 있었다. 그의 비난과 명령조의 말들을 나는 인정할 수도 견딜 수도 없어 내가 못난 사람이라고 미안하다고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나를 한없이 낮춰서라도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나를 살림에 관심이 없는 자기 욕심만 많은 이기적인 나로 여길 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나'였다.



나를 위해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하다


나를 사랑해라,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라 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보통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잘 아는 것이다. 나를 잘 안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감정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나의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다. 특히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충분히 느껴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청난 시련은 없었지만 가장 괴로운 순간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남편에게서 나를 비난하는 말들을 듣는 그 순간이 굉장히 괴롭다. 나를 칼로 찔러서라도 나의 존재를 없애버리고 싶다. 남편과 말다툼이 심해질 때면 견디기가 어렵다. 칼을 들어 나를 찌르려고도 해봤다. 그런데 칼은 들었지만 나를 찌를 수가 없었다.


"너는 네가 하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 있지 집안일에는 관심도 없어. 너는 이기적이야"

나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남편의 말이다.


나에게는 욕처럼 들린다. 이기적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아서 자꾸만 부정하게 된다. 워낙 꼼꼼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어서 내가 살림하는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분명 아이들의 엄마로서 도리를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집안의 모습만 보고 이기적이라 말한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욕심만 차릴 텐데 내가 보는 나는 전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기준에서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나름 열심히 집안을 치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의 눈에는 거슬리는 것들이 많다.

오늘도 남편은 장 안에 쌓여있는 짐들을 갖다 버렸다. 나는 잘 입지 않는 옷이어도 언젠간 입을 것 같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들이 있어서 잘 버리지를 못한다. 결혼 전 엄마가 사주었던 정장도 버리지 못하고 옷장 속에 걸려있다. 옷이 오래되어서 색이 바랬는데도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반면에 남편은 걸려있는 내 옷조차도 보지를 못한다. 갖다 버리라며 언성을 높인다. 쓸모가 없거나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두고 있으면 남편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남편은 내가 물건이나 옷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집안일에 관심이 없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였다


못난 애가 아니었다. 변화를 꿈꾸는 나였다.

한때는 나를 못난 나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애라고 생각해서라도 지금의 상황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나를 탓하는 말들을 인정할 수 없어서 괴로웠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한 결혼인데 자꾸만 괴로운 상황들이 생기니 자꾸만 좌절감이 들었다.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틔어 나오기도 했지만 내 힘으론 도저히 홀로 설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 곁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도대체 남편이 왜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더 힘들었다. 벗어날 수도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게 됐고 지금을 버티기 위해선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잊으려고 애쓴 건 아니었다. 그냥 잊어버리고 싶었고 혼자 있을 때라도 즐겁고 싶었다.


자꾸만 감정에 무뎌지는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면 공허해졌다. 마음이 허해서 뭐라도 먹어야 했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의미 없이 먹고 의미 없이 돌아다녔다. TV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고 재미있는 것 같은데 먹고 나면 다시 공허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나였다.


글로 내 마음을 기록하다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됐다. 남편과의 이야기에서부터 부모님 이야기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갔다. 누가 볼까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나의 감정대로 써 내려간 소중한 글들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숨기고 싶지 않았다. 드러내도 괜찮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등이 있을 것이고 그걸 건강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운 마음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미운 마음이 쌓이면 오히려 언젠가 폭발할 수 있고 우리의 관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다 써 내려갔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다 드러냈지만 우리의 관계는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마치 리듬을 타듯이 어느 날은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것 같다가도 또 어느 날은 폭풍우가 쳤다.


남편은 내 글의 구독자다


남편의 기분이 심상치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나의 글을 읽었을 때이다. 우연히 남편은 인터넷 주소를 입력하는 곳에 기록된 브런치 주소를 타고 들어와 읽게 된 것이다. 남편은 나의 글을 보고 매우 화가 났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도 알게 되어 배신감을 많이 느낀 것 같다. 남편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동안 남편이 내 글을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꽁꽁 숨기기 위해 애썼는데 기록이 남아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의 이야기에 잘못된 이야기라며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알았지만 나의 글 속에 기록된 사실들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남편은 아직도 자신의 화난 감정의 원인을 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만 그럼에도 나의 생각을 남편이 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수면 위로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싸움이 커지지는 않는다.


순간순간 남편의 말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남편이 하는 말들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다 보니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글로서 내 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자연스레 부정적인 감정들도 드러내게 됐고 충분히 나 자신을 알아주게 되었다. 글의 끝을 항상 성찰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내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된 이야기만 써 내려갔다면 아무도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다 보니 남편과의 관계가 힘들었던 이유들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알아차림은 힘들었던 마음들을 가볍게 해 주었다. 너무 솔직해서 창피한 건가?라는 생각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곧 콘텐츠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부부처럼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공감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직면함으로써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게 되면서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내게 필요한 부분들을 찾고 채워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용기와 자신감이 자연스레 찾아왔고 나를 나로서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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