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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있을까?

나를 위해 쓴 글이, 상대를 위한 글이 된다.

나는 아이 셋을 키우는 육아맘이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 가족 외에는 직접적으로 맺는 관계가 거의 없다. 엄마들과의 모임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경우는 학교 주변을 지나갈 때뿐이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거나 데리고 오면서 마주치게 되는 아이들의 친구와 친구의 엄마들이다. 이들과도 지나가면서 인사만 나눌 뿐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온라인상에 글을 올리면서도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일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나의 일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쓰려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변함이 거의 없는 일상생활에서 새로움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글을 쓰는데 어려움이 있다. 삶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책뿐이다. 그리고 글을 씀으로써 생각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한다. 늘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더 나은 나와 미래를 꿈꾸려면 그만큼 의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TV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도 좋지만 어느샌가 아무 변화도 없이 제자리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현타가 온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 지식과 관계를 배우는데, 엄마인 나는 늘 똑같은 사람과 공간 속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이 현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건 책과 글쓰기이다. 나의 성장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의 발전과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도구이다. 변화되어 가는 사회와 환경 속에서 함께 자라나 갈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가 돕지 않으면 아이들은 부모와 점점 더 멀어질 것이고 소통 또한 부재할 것이라 염려가 된다.


요즘 글을 쓰면서 글 속에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글쓰기로 성찰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무엇을 성찰해야만 하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나'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단순히 나로 즐겁게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외부와의 관계없이 지내는 것도 아무 문제 없이 느껴지지만, 마음 한편으론 이렇게 지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을 보면 오로지 '나'만이 '나'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가만히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니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요함을 느낀다. 이것 또한 단순한 재미를 위한 만남이 아니다. 반면교사란 말이 있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돼줌으로써 성숙한 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가끔 길을 걷거나 혹은 가만히 있을 때 혹은 tv를 볼 때 현실이 아닌 곳에서 붕 떠 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지금의 현실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로 또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 생각이 다른 곳에 가게 된다. 자꾸만 어딘가로 가고 싶고 떠나고 싶은 마음과도 같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각성하지 않으면 시간은 그저 흘러가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이다. 글쓰기는 각성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내가 쓴 글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식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곧 현실이기 때문에 지금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곳에 와 있는지 내가 있는 이곳을 깊게 바라봐야 한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면 어떤 역할을 갖고 있는지 나열해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나라는 한 사람을 보아야 한다. 어떤 옷차림과 어떤 외모인지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생각과 지금의 느낌을 관찰해 보아야 한다. 공간과 물건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나다. 그 움직임을 미세하게 관찰하다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런 후에 미래의 꿈과 목표가 들어온다.


현실 속에 있는 나와 독자를 위해 글을 써야 한다. 사람에겐 현실 다음으로 다가 올 내일, 즉 미래가 있다. 내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 또 다른 오늘이지만 우리는 내일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시간은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가 없다. 오전이 지나면 오후가 찾아오고 해가 지는 밤이 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도 같이 움직여야 한다. 비폭력 대화 워크북을 보면 '깊은 슬픔을 제외하면 40초 이상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느낌은 없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사람의 감정은 오래 머물지 않고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과 생각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으면 그때의 상황과 느낌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순간순간의 깨달음을 기록하지 않으면 현실 속 나를 놓칠게 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의지와 신념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교훈이 담긴 속담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려고 한다. 글도 그런 마음으로 쓴다.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없어 글도 원하는 시간에 쓸 수 없지만,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변화이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환경,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나 스스로 주관할 수 있는 것은 습관이다. 그리고 마음가짐이다.


성공을 위해 그럴듯한 꾸며진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 보이는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책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썼다면 계속해서 글을 써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책이라는 목표를 이루게 되면 글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책이 아닌 성찰을 목표로 하게 된다면 글쓰기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더 많이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옛 성인들 혹은 학자들이 자신의 수양과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공부를 했듯이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려한다. 나를 다스리고 올바른 가치관과 주관을 가져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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