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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Apr 14. 2023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기르는 법

어려움을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극복할 방법을 찾자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은 채 이미 학교에 가버린 언니를 목놓아 부르며 울부짖던 둘째를 어떻게 할 수 없어 학교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울다 빨개진 눈으로 교실에 들어가게 할 수 없어 집 앞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사주었다. 교문 앞까지만 데려다주려 했지만 혼자 들어가지 않겠다 버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해 교실이 있는 층까지 같이 갔다. 그래도 아이는 가고 싶지 않다고 시무룩해한다. 


나는 아이에게 "교실에 친구들 다 와있는데 혼자 들어가기 창피해서 그래?"라고 물었다. 아이는 "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1교시가 끝난 후 쉬는 시간이 되어 교실 창문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나의 시선을 느끼셨는지 창문 쪽을 바라보시더니 교실 문을 열고 나와주셨다. 나는 "00 엄마예요. 아이가 늦어서 교실에 혼자 들어가기 뻘쭘해하네요. 창피한가 봐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냥 들어와도 돼요. 아니면 밖에 있는 사물함에 가방 넣고 화장실 갔다 온 것처럼 들어와 앉으면 돼요. 친구들이 안 쳐다봐서 괜찮아요."


그냥 들어와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안도가 되었다. 지각했다는 사실에 걱정이 됐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선생님이 받아주셔서 다행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아이에게 달려갔다. 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가방 사물함에 넣고 화장실에 갔다 온 것처럼 들어가면 된대. 어때? 괜찮아?"하고 물었다. 아이는 수긍을 하고 같이 교실 앞으로 갔다. 가방에서 필통과 물통을 빼고 가방을 사물함에 넣었다. 교실 뒷문을 살짝 열고 아이는 조심히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창문으로 빼꼼히 아이를 바라보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앉아 선생님 이야기를 듣는 아이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아이가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아이를 안아주면서 "엄마가 화내서 정말 미안해. 끝나고 맛있는 것 사 먹자. 잘 갔다 와"하고 인사를 했다.




아이는 늘 함께 등교하던 언니가 자신을 놔두고 혼자 가버린 것에 대한 좌절감을 느꼈고, 그동안 언니에게 많이 의지를 했었기 때문에 혼자 가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언니를 찾으며 울부짖고 소리를 질러댈 정도로  화가 났다.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아이 스스로 진정할 수 없었다. 어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교실 앞까지 동행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부모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이는 더 큰 좌절을 느껴 마음에 상처로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다시 돌이켜 보니 아이가 얼마나 좌절스러웠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처음엔 우는 아이와 기싸움을 하며 혼자 가라고 밀어냈고, 나로 인해 등교시간이 늦어졌지만 다행히도 안정을 찾고 교실에 들어갔다. 나는 이 날을 통해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각을 하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만을 안고 있었다면 선생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아이를 힘들게 하는 혼내는 엄마로 각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학교에 출입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나였는데 둘째 아이로 인해서 한 번씩 학교를 드나들게 됐다. 자꾸 학교에 드나들게 되면 아이를 믿지 못해서 과잉보호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날 그런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교실 앞까지 가서 용기를 내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지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셨고 그냥 앉으면 된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편안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아이가 부끄럽고 창피해하지 않고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셨다. 그동안의 교사로서 쌓인 내공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을 알게 되니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별거 아닌 방법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곧바로 달려가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아이는 마음이 안정이 되었는지 바로 교실 앞으로 가 가방을 교실 밖에 있는 사물함에 넣었다. 하교 후 아이에게 가방은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2교시가 끝난 후 선생님이 가방을 꺼내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즐거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2교시는 마술을 관람하는 시간이었고, 하교 후엔 좋아하는 친구, 그리고 언니와 함께 학원 가는 길에 떡볶이를 사 먹었으니 즐겁지 아니할 수 없었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던 큰아이의 말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떡볶이 집에 데려갔다. 아이들은 떡볶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같이 게임을 했고, 유튜브를 보면서 떡볶이를 먹었다. 나는 아이들의 기분을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유튜브를 보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학원을 가야 했기에 길게 볼 수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학원이 끝날 때까지 장을 보고 집 앞 공원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둘째 아이가 즐거운 표정으로 뛰어왔다. 나는 안도했고 감사했다. 비록 아침을 울음과 절규로 시작했지만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서 아이에게 정말 고마웠다.




초등학생이 혼자 학교에 가는 일이 어른에겐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에겐 언니와 같이 등교를 하다 혼자가게 되는 일이 아주 큰 고난이었다. 의지했던 언니가 자신을 놔두고 가버렸다는 배신감과 자신을 거절했다는 서러움이 겹쳐져 아이는 마치 이겨낼 수 없는 큰 고통을 짊어진 것처럼 보였다. 만약 나(엄마) 마저 아이를 밀어냈더라면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은 엉망이 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 가서도 교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아이를 보니, 자신만 늦게 들어가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게 될 것 같아 부끄럽고 창피해할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부끄럼 많은 내성적인 아이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마냥 부끄럼 많고 내성적인 아이로 키울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면 마냥 아이를 혼내기만 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아이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과 현명하게 처리하는 법을 배웠다.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큰일을 큰일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아이의 좌절을 없애주셨다. 가방을 교실 밖에 있는 사물함에 넣고 들어오라고 했던 것이 정말 현명한 방법이었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교실 뒷문으로 화장실을 다녀온 것처럼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선생님도 늦은 것에 대한 꾸중도 물음도 하지 않으셨다. 오늘의 이 상황을 통해 방법을 알면 어려움을 겪어나가는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하려면, 어려움이나 고난을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이겨낼 방법을 찾으면 된다. 방법을 찾게 되면,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갖게 된다. 이 힘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부모의 힘으로 생기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도 혼을 내고, 어려움에 '괜찮아'하며 감정을 무시한다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남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된다. 자신의 힘든 감정도 알아채지 못한다. 


간혹 아이들이 넘어져서 울 때 어른들이 "괜찮아, 괜찮아. 툭툭 털고 일어나면 돼"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이의 감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나는 아픈데 왜 괜찮다는 거지?' 하며 의문을 가지게 되다가도 계속 이런 일이 반복이 되면 '나는 아파도 아프다 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다 큰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아프면 그 아픈 마음을 알아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괜찮아 괜찮아하며 아이를 다독이는 걸까. 아이에겐 슬프고 힘든 일이 부모에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져져서인 걸까.


고난이나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태도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좌절로 다가오고 누군가에겐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어려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낸 경험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된다.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자신이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힘은 나에게 있다. 


아무리 평탄하게 사는 사람일지라도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도 아이들만이 느끼는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그 크기는 어른이 판단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알아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분명 아이는, 스스로 의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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