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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INFP에겐, 현실도 미래다

가족들을 통해 현재와 미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나의 미래와 지금을 대하는 마음은 첫째와 둘째 아이를 대하는 것과 같다. 첫째 아이는 주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길 좋아하고, 둘째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지금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채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렸을 적 나는 꿈이 많고 대중 앞에 서길 원했지만 부족한 노력과 긴장감으로 인해 미래의 꿈은 그저 상상 속에 있을 뿐이었다. 힘든 현실을 잊게 해 주는 것도 상상이고 공상이었다. 그런 내가 현실과 미래 모두를 중요시하게 여기게 된 것은 두 딸 덕분이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첫째 아이는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 위해 매일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피아노를 친다. 멋진 사람으로 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임한다. 반면 둘째는 친구랑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공간 속에 여러 장난감과 피규어로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 논다. 자신이 아끼는 것들을 보관하는 보물창고가 집안 곳곳에 있다.


내게 첫째 아이는 미래이고 둘째 아이는 현실이다. 미래의 꿈을 위해 현실 속에서 노력을 하고, 동시에 내가 지금 처한 상황과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애쓴다. 큰 아이에겐 미래를 위해선 현재 상황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 말해주고 둘째 아이에겐 지금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면서 아이가 지금 해야 할 것을 알려준다.


둘째 아이는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상해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등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당장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땐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면서 일정이 끝난 후 꼭 원하는 것을 하자고 약속을 한다.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못한 채 다음일정에 임하게 되면 반드시 아이에게 보상을 해준다. 학원일정이 끝난 후에 큰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라고 쿠폰을 핸드폰으로 보내주는 등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준다. 그럼 아이는 또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미래를 꿈꾸는 첫째와 현실을 중요시 여기는 둘째는, 서로에게 꼭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존재다. 큰아이는 둘째를 보며 지금 현실을 바라보고 둘째는 언니를 보며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성향도 외향 내향으로 정말 다르다. 얌전하고 조용한 둘째는 활발한 언니를 따라 춤을 추고 피아노를 치면서 외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아이도 싫지 않은 듯 언니와 노는 것을 즐거워한다. 더불어 자매애도 돈독해진다.




나는 미래를 꿈꾸고 남편은 현실의 편안함을 찾는다. 나는 결혼생활 10년 만에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남편에게 어렸을 적부터 우정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 있고, 모임이 있는 것을 보고 외향적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알고 보니 남편은 자신만의 공간이 중요한 내향형의 사람이었다. 깨끗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쉼을 중요시하는 것을 몰랐던 나는 남편이 가부장적이어서 청소와 청결을 강요하는 것이라 오해를 했다.


늘 자기만의 공만을 만들고 싶어 했던 남편을 위해 아이들 장난감 방을 정리해 남편 방을 만들었다. 방에 있던 가구들을 남편이 손수 옮길 정도로 자신의 방을 만드는 데에 진심이었다. 남편은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자신만의 방에서 TV를 보고,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원하던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떠들썩한 곳보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길 바라는 남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늘 미래를 꿈꾸는 나였기에, 남편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을 해주어서 무척 반가웠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느라 돈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남편이었는데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기뻤고 다행이었다. 부디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을 찾길 바랐다.




나의 MBTI는 INFP로 N이 강하다. N은 직관형이라 해서 미래지향적인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나는 어려서부터 주로 "나는 OO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 한 달 전 나는 또 이런 식의 말을 내뱉었다. 노트북이 고장 나 노트북을 사주겠다던 남편에게 신이 나서 "나는 노트북으로 글쓰기만 할 수 있으면 돼. 글쓰기는 돈 안 들이고 실력을 키울 수 있어. 출판사들이 브런치 속 글들을 눈여겨보고 있어서 열심히 하면 책도 낼 수 있어." 남편은 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나는 "왜? 웃겨? 나 구독자 수도 많이 늘었어. 봤어?"라고 말했다. 이에 남편은 "이제 안 봐"라고 관심 없는 척 말했다.


일주일 전 새 노트북이 생겼다. 노트북을 사주겠다던 남편의 말이 현실이 되었다. 남편이 정말 사줄까? 의문이 들었는데 이런 나의 의심을 깨고 남편이 정말 노트북을 사주었다. 덕분에 나는 희망이 생겼고 용기를 얻었다. 글실력에 좌절하지 않고 다양하고 깊게 글을 써보자 다짐하게 됐다.


남편은 나에게 새 노트북을 주며 이렇게 물었다. "3년 반만 기다리면 돼?"

남편은 1년 반 전에 5년만 주면 자신이 일을 그만둬도 될 정도로 돈을 벌어올 수 있냐고 물었다. 장난식으로 들렸지만 그 속에 단단한 뼈 같은 진심이 들어있었다. 얼마를 벌어와도 괜찮으니 자신이 알아서 육아와 살림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남편이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던 것을 잊지 않고 다시 물었다.


글쓰기와 강의로 돈을 벌겠다 꿈을 꾸고 있던 나였다. 그저 글 쓰는 것이 좋아 시작했는데 남편은 정말 내가 그렇게 되길 바랐던 것이다. 자신의 편안한 삶을 위한 것이었다. 사람과 일에 치이는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은 남편의 욕구이자 바람이었다. 100%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는데 동기부여가 된 건 사실이다.




꿈이 중요하고 꿈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인 나에게 현실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나에게 현실은 삶의 과제이자 목표가 되었다. 현실은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노력이다.


'노력해라.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하지만 살림도 육아도 놓을 정도로 글쓰기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말아라. 현실이 너에게 글감이 되어줄 테니. 현실의 주어진 상황을 놓지 말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너의 글 실력도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 세상이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나의 미래에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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