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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엄마에 대한 사랑을 재정립하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우리 집은 가난했다. 셋방살이를 했고 주인집 눈치를 봐야 했다. 엄마는 나를 업고 한 손으로 언니를 잡고 시장에 가 떨어진 배춧잎을 주워올 정도였다. 엄마는 스물세 살에 언니를 낳았고 스물일곱 살에 나를 낳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감당하기 힘든 가난과 두 아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밤마다 비틀대며 돌아오시는 아버지까지...


우리 가족은 셋방살이를 하다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내가 두세 살 쯤 되던 때였다. 그때 나는 참 많이 울었다. 맨 앞쪽이었던 우리 집에서 내가 울면 복도 맨 끝집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찾아올 정도로 나는 목청껏 울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난감해했고, 서른도 안된 엄마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에 우는 나까지 더해져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엄마에게도 고된 시집살이가 있었을까. 그건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고전적인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딸만 둘 뿐인 엄마에게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댁은 우리에게 무관심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는 것에 참 많이 서운했다. 환영받지 못한 출생 스토리에 부모님 원망을 참 많이 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컸던 나였는데 들쭉날쭉하게 다가온 부모님의 사랑은 나를 아프게 했고 힘들게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엄마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여기 나와 비슷한 사연의 여자가 있다. 어릴 적 자신을 향해 온갖 짜증을 부리고 악을 썼던 엄마가 아직도 원망스러워, 아이를 낳고도 심리적 불안을 안고 산다. 마음속 불안과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고, 심리학 강연을 찾아가 듣고 공부도 해보았지만 아직도 엄마에 대한 미움과 분노, 원망은 가시질 않았다.


가족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여러 사연들 중 내 귀에 딱 꽂힌 사연이 있었다. 태어나서 2년간 많이 울었다는 사연자의 이야기다. 여기에 스님의 말씀까지. 사연자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고, 스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얻었다.


"엄마가 뭐 때문에 미운지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느낀 대로."

"태어나서 제가 2년 동안 울기만 했대요. 엄마도 힘드셨겠죠. 애가 울기만 하고 잠도 못 자고. 그런데 그때부터 원인을 모르겠어요. 평생 아버지와 싸우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저한테 모든 짜증과 화를 내셨어요. 저도 제 자식을 낳으면서 이게 대물림되는구나. 어려움들이 화랑 짜증으로 바뀌어서 나오는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나도 그냥 살았는데 애를 낳으면서 대물림을 끊고 싶어서 심리 상담을 받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도 너무 어려워요."

"엄마가 자기 어릴 때 화를 많이 내고 짜증을 많이 냈다 이거 아니야.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준 건 사실이야. 그런데 엄마가 나를 일부러 나쁘게 하려고 짜증을 냈을까.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닌데 자기도 살기 힘들어서 짜증을 냈을까.

"상황은 이해돼요. 아들을 못 낳아서 시댁에서 앉아서 밥을..."


-법률스님의 즉문즉설 중


나 역시도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우리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을 드려다 보면 볼수록 그때의 상황에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부모님을 바라보며 미움이나 원망이 더 커졌다. 지금까지도 부모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의심했다. 하지만 차 안에서 들었던 법륜스님의 말씀으로 부모님에 대한, 특히 엄마에 대한 사랑을 재정립하게 됐다.




"아들을 못 낳아서 그랬든 남편이 상처를 내서 그랬든... 엄마는 굉장히 위대한 사람 같지만은 지금 내가 엄마 나이 되어 보니까 나도 아직 좀 찔찔 짜고 살잖아 그지? 자기도 어른인데 찔찔 짜고 사는 것 보면 엄마도 내 어릴 때 찔찔 짜고 살았을까 안 살았을까. 자기도 살기 힘든데 애까지 자꾸 우니까 신경질 날까 안 날까. 엄마도 불쌍한 사람이야. 같은 여자로서 생각해 보면. 시집와서 남편에게 제대로 사랑 못 받고 시어머니한테 구박받고 아들 못 낳았다고 구박받고 나이가 오십육십도 아니고 스물몇 살에, 애는 계속 울어 쌌지 그 여자도 괴로워서 몸부림을 막 친 거야. 남편을 때릴 수도 없고 시어머니를 때릴 수도 악쓸 수도 없고. 악 쓸게 누구밖에 없다? 그렇다고 벽 보고 악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옆에 있는 갓난아기 보고 악쓸 수도 없고 조금 큰 거 보고 악쓸 수밖에 없잖아. 어머니가 잘한 거는 아니야. 엄마가 잘못했는데 어머니 수준(상황)에서는 그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거야."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중


어렸을 적 나의 엄마도 나에게 욕을 하면서 화를 냈다. 물론 엄마는 우리를 키우면서 최선을 다하셨고 일부러 먼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시지는 않았다. 내가 언니와 싸우거나 엄마에게 대들면 엄마는 나의 등을 때리시거나 방문을 걷어차고 욕을 하시고.... 나도 사연자와 마찬가지로 분명 엄마에게 받은 것들이 많은데도 왜 밉고 원망스러운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나도 알지 못하는 엄마의 힘듦과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엄마를 화나게 하는 나의 모습들이 더해졌고, 엄마의 상황에서는 나에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엄마들처럼 아이들을 위해 심리학 강의를 듣거나 육아에 대한 책을 접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어떻게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키워야 하는지 궁금하지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엄마에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한계가 있었다. 그걸 알고 나니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씩 옅어져 간다.



엄마가 내 나이보다 진짜 어렸을 때인데 얼마나 살기 어려웠어요. 나를 못 버려서 그 집에서 그래도 눈물을 머금고 짜증을 내가면서도 살아서 키워줘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절을 해봐. 그냥 부모니까 존경해야 돼 이런 것 가지고는 안돼. 엄마를 원망하는 게 안 고쳐져도 사는데 지장 없어. 영어 할 줄 몰라도 수영할 줄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듯이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도 사는데 지장 없어. 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가 미워하려고 한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미워하게 된 거잖아. 안고 살아도 되는데 벗어나려면 엄마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키웠는지를 알면 저절로 치유가 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야. 무지. 자기에게 헌신한 것도 그냥 한 게 아니라 그 압박과 설움 속에서 살았다는 그 뒷면까지 보게 되면, 컸으니까 그 뒷면까지 봐야지. 계속 어린애 같은 생각만 하는 거야. 아직도 7살 10살 중고등학교 다닐 때, 뭐 안 해주면 뭐 안 해줬던 것만 붙잡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의 사랑이 지금 필요한 거야. 자기는 다 컸으니까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엄마한테 감사를 표하고 그렇게 하면 자기 치유가 되지.


-법률스님의 즉문즉설 중


엄마 나이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어렵게 셋방 살이를 하며 언니와 나를 낳고 아빠를 내조하면서 엄마는 참 많이도 힘들었겠다. 거기에 무관심한 시댁까지. 나는 어렸을 적 뒤돌아 울고 있는 엄마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 다 알 순 없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를 버리거나 놓지 않고 엄마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키워주셨다.


엄마를 미워하며 살아도 사는데 지장은 없다고 하지만 나도 사연자처럼 나도 모르게 억울한 마음들이 솟아올라 불편했다. 그런 마음들이 환경의 어려움과 합해져 짜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이젠 나도 어른이니까 사랑받지 못한 어린아이를,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나도 부모이니까.


부모의 힘들었던 뒷면을 이해하고, 엄마가 언니와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나니 내 마음도 가라앉는 느낌이다. 나도 무지했다. 엄마의 뒷면을 보지 못했다.




부모를 모시고 안 모시는 것은 자유야. 그런데 부모가 자기를 어떻게 키웠든 원망할 건 아니야. 원망한다는 건 무지하다는 거야. 섭섭할 수는 있지만 손해를 끼쳐서 그런 건 아니야. 부모를 원망하지는 말고.. 공경하라고는 안 하잖아 스님이.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원망하지 않는데 내가 덕 본 사람한테 원망하니, 내가 달라는 만큼 안 줬다 이거지. 그러나 원망할 대상은 아니라는 거야. 기대했는데 기대한 대로 안된 거야... 부모를 원망은 하지 말아라. 원망할 일은 아니야.


-법률스님의 즉문즉설 중


부족하게 느껴졌던 부모님의 사랑이 서운할 수는 있어도 부모를 원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먼저 다가와 안아주고 위로해 주길 바랐던 나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부모님이 미웠지만, 자식에게 정서적인 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부모님을 이제는 이해한다. 부모님도 그런 사랑을 못 받아 보셨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배울 것도 먹을 것도 넘쳐나니.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고, 노력만 한다면 내 자녀들에게는 더 질 좋은 사랑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였다는 말을 듣기보다, "나에게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우연하게 들었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다. 차 안에서 듣고 마음에 와닿아 남편에게 유튜브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이 사연과 법륜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타이핑을 했다. 애매하게 들리는 부분을 계속 다시 들어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덕분에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서 오래된 삶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지혜를 들을 기분이었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나의 짧은 경험으론 심리학 이론으로 나를 들여다봤을 때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사랑받지 못한 어린아이를, 7살 10살 된 아이를 계속해서 마음에 품고 있을 수만은 없다. 원망한다는 것은 무지한 것이라는 그 말씀이 크게 와닿았다. 섭섭할 수는 있어도 나에게 손해를 끼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나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그때의 상황과, 그때 느꼈을 부모님의 노고를 알면 치유된다고 하는 그 말씀이, 마치 내게만 말씀해주시는 듯했다. 내가 사연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의 상황과 그때의 부모님의 한계를 알고 나니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고 미워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싹 사라졌다. 이젠 내가 알아서 잘 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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