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뒤에 성장이 있기를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있습니다.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인 자기 동기력내 삶과 환경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믿음인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스스로 동기를 불러일으켜야만 하는 이유는 변화하기 위해서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그리고 그동안 바라왔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주도적인 삶을 위해서 힘들어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내가 변화를 바라는 이유는 첫 번째, 엄마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결혼 후 쭉 가정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가족 외에는 외부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오셨다. 그래서 엄마는 늘 언니에게 의지하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언니는 엄마에게 모든 것이다.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어준 대리만족의 대상이었다. 거기에 모든 것을 상의하고 의지할 수 있는 부모역할까지 해주고 있다.


엄마는 언니가 자신의 노년을 책임져 줄거라 믿고 있는 걸까. 매주 3시간 이상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언니집에 가는 엄마를 보면, 조카를 돌보는 것은 핑계처럼 보인다.(주말이면 집에 오고 월요일이 되면 언니집에 가신다.)온전히 엄마 곁에 붙어 함께 하고픈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노년은 딸들 집을 전전하는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자녀들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 변화해야만 한다. 남편에게도 기대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두 번째, '나'라는 사람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입증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딸이 되고 싶어서이다. 나라는 사람도 할 줄 아는 것이 있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어렸을 적부터 언니를 편애한 엄마에 대한 일종의 보복심리라 해야 할까?


하지만 엄마에게 유일하게 고마운 것이 있다. 바로 '이작가'라는 별칭을 만들어 준 것이다.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언니를 '이박사'라고 불렀고, 언니는 정말 박사가 되었다. 그 당시엔 질투심에 내게도 특별한 별칭을 불러달라 했지만, 이젠 정말 '이작가'가 되고 싶다.


세 번째,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추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가족 외에 아무런 관계 맺음 없이 한정된 공간에만 머물기엔 나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 엄마로서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사명을 가진 나가 되고 싶다.



내가 변화하기 위해 글을 쓰는 이유를 떠올려 보니 그 속엔 온통 '엄마'가 가득했다. 내게 엄마는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보는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고 아이들을 길러내는 엄마의 모습과 세상물정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이 겹쳐져 있는 것 같다.


엄마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꿈꾸는 여성의 이미지와 부모로서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언니만을 사랑하고 나를 밀어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인생에 롤모델이 되어주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실망했던 것 같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늘 아빠를 내조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빠를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셨다. 엄마 세대에선 여자가 가정주부로 사는 것이 당연한 거라 여겼지만, 지금은 엄마가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이나 능력이 되지 않아 평생 주부로 살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한없이 아빠에게 맞추며 살아온 것 같다.


나의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평생 집안일과 농사일로 힘겹게 살아오신 엄마와 할머니를 보며 자라 여자란 응당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다. 남자는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 여자가 온전히 살림과 청소를 떠맡은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남편도 그런 모습을 내게 기대했었다.


시부모님께 잘하고 살림과 청소도 능숙한 모습을 기대했지만 전혀 반대되는 나를 보며 게으르고 지저분하다 말했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고 배우며 자라지 않았고, 남편처럼 똑같이 의무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어떻게 여자라고 살림과 청소를 잘하겠는가.


그런데 경제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나는 살림과 청소를 잘해야만 했다.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해야 했다. 내가 바라는 여성으로서의 모습과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여자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남편에게도 세상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무수히도 나는 나라는 독립된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변화를 꿈꾼다. 허황된 생각은 버리고 지금의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주도적으로 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온종일 글을 생각한다. 유모차에 노트북을 싣고 다닐 정도다. 글쓰기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분신처럼 노트북을 품에 지니고 다닌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면 근처 카페로 가 바로 노트북을 꺼낸다. 커피 한 잔은 공간을 대여한 값이 된다.


완성하지 못한 글을 채운다. 노트북을 유모차에 싣고 걸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노트북을 켜자마자 나만의 생각을 검열 없이 쏟아낸다. 그리곤 찬찬히 글을 되짚어 본다. 내 삶의 변화를 위해 글을 쓰지만, 온전히 내 생각을 쏟아붓고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



'엄마'라는 페르소나는 단지 역할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다. 생명을 뱃속에 품고 출산을 하는 것은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정말 위대한 경험을 한 것이다. 정말 어려운 걸 해낸 느낌이다. 어마어마한 신체적 고통을 넘어섰으니 무엇이든 다 해낼 것만 같다. 그런데 엄마가 되는 순간 떠맡게 된 육아와 살림은 버겁게만 느껴진다. 때론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가 됨으로써 견뎌내야 할 삶의 무게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막연하게 글을 잘 쓰고만 싶었고 내용은 늘 겉 핥기 식이었다. 엄마가 된 지 10년 차가 되어 비로소 쓸 내용이 생겼고 깊어졌다.


엄마가 된 여자로서, 인간으로서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게 됐다. 성숙한 사람이자 어른이 되길 소망했다.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나'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글을 쓰면서 힘듦을 참아냈고 견뎌내었다.


버티는 삶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주체적인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멋있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 같다. 예쁘고 멋있어 보여서 입어보았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타고난 성향을 강점으로 만들어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 내기로 했다. 꾸준함과 성실함이 주 무기다.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는 정말 고마운 도구이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물론 관계도 중요하고 보이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행복하지만은 않다면 지금이 자신을 돌아볼 때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돌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성을 쌓는 사람이 발전하고 성장한다. 스스로 하는 일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일에서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일에 몰입할 수 있다.

세상이 나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일을 열정적으로 해낼 수 있는 '동기'가 생긴다. 세상을 변화시킴으로써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한다.

- 김주환, 내면소통 중에서




*맨 윗 문단의 굵은 글씨는 책 내면소통(저 김주환)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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