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장 지지받고 응원을 받아야 할 가족으로부터 진심으로 잘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나누는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조차도 들어보질 못했다. 쓴소리든 좋은 소리든 함께 나누는 것이 가족인데 서로 상처받지 않는 진솔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좋은 하루 보내"란 말은 그저 인사치레라 생각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대화의 마무리 단계에서 하는 인사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좋은 하루가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하는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토요일에 방송된 '전지적 참견 시점'이란 프로그램에서 배우 김재화가 등교하는 아들에게 "좋은 하루가 될 거야"라며 배웅을 했다. 그녀의 눈빛에서 진심으로 아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 또한 배우를 하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복을 알기 때문일까?
일상과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 여기고 시간 때우기에 바빴던 날들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저 오늘 하루도 보냈구나 했다. 젊디 젊은 스물세 살엔 영원히 스물세 살일 것 만 같았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지금의 나도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영원하지 않은 삶은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게 한다.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끝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이란 시간은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시간은 시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듯 하다.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화가 되지만 계속해서 희망을 바라는 것을 보면 마음만은 늘 그대로인 듯하다. 끝이 있는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지금은 언제나 시작점이다. 지나간 과거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늘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된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맞이했을 땐 그 아픔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기쁘고 좋은 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슝 하고 지나가 버린다.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마주했던 작디작았던 아이는 어느새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온종일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하루 종일 "엄마 엄마"를 외치며 집안을 활보한다. 셋째 아이를 낳고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그 때로부터 1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다. 소중하고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어느새 지나가 버렸다.
끝이란 시간이 몸과 마음에 절실히 와닿지 않는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을 보며 나도 저런 모습이 될 거라는 걸 알지만,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 뿐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다
삶은 때론 심각하고 때론 단순하다. 아무 일 없는 평탄한 하루를 보내길 바라지만 평탄한 하루가 평범한 하루가 되고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은 변화가 없는 성공하지 못한 삶인 것 같아서 슬퍼지기도 한다.
글을 쓰다 보니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글 속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야 하고, 그 이야기들이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면 직접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고 방법이 없나 골똘히 생각해 보니 역시 정답은 책이라는 결론이 났다.
단순히 tv를 보거나 주어진 일을 할 땐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루가 하루일 뿐이다. 밖은 환하고 밝아 빨래 널기에 좋은 날씨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를 탁탁 털어 널며 '빨래가 잘 말랐으면 좋겠다. 가지런하고 일정하게 빨래를 널고 적절한 햇빛에 빨래가 반짝이고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정도 생각할 뿐이다.
삶은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생각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미로 속을 걷는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를 단순하고 편안하게만 보내고 싶지만 마음속은 어쩐지 불편하다. 이루지 못한 꿈들이 생각나 가슴이 답답하다.
글을 쓰다 보면 단순하게 살지 말고 복잡하게 살라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 무엇이라도 하라고 재촉한다. 그렇게 단순했던 나의 의식을 깨워준다. 빨래를 널면서 이 세상엔 밝은 대낮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둠이 있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도 있었다.
따사롭기만 했던 햇살은 구름 속에 가려져 어두컴컴해지기도 했다. 글쓰기는 지난날을 돌아보게 했고 알고 보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던 날들도 있었다. 그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갔을 뿐이다.
내 삶에 문제의식을 가지다
자라오면서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엄마는 늘 밥은 잘 차려주셨지만 언니가 공부할 때 조용히 하라고 경고를 하거나, 언니와 싸우거나 엄마에게 대들 때 등짝을 때리거나 욕을 하셨다.
되돌이켜 보면 그런 기억들은 나를 성장하지 못하게 했다. 무관심하거나 거절당했다고 느낀 날들이 많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없어서 거절당했다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 혼자 있고 싶은 날들이 많아졌다.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니 행복한 거야." 아빠가 자주 하셨던 말씀이다. 되게 행복했다 느꼈던 적도 없지만, 정말 안행복하다 느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행복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수용받으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 부부의 양육방식도 나의 어린 시절과 다를 바가 없다. 징징대며 울면 혼내기 바빴다. 화장실이건 방이건 어디에서든 떼를 쓰면 혼을 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듣기보다는 징징댄다고 화를 냈다. 부모교육을 받으면서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 배웠고, 나름 실천하려 노력을 하는데 아빠에게 혼이 나는 둘째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자꾸만 무던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잘못된 훈육방식을 보며 문제의식을 갖기 위해 애를 쓴다. 혼이 나는 상황이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면서도 가끔은 눈이 감길 듯 말 듯 졸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 눈을 부릅뜨면서 마음속으로 '이건 문제야. 반드시 아이의 감정을 살피겠어'라고 결심에 결심을 한다.
주체적인 '나'로서의 행복을 알아가다
나는 우리의 삶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당연하다 느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 행복이 온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도 행복하지만,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부당한 것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때도 행복함을 느낀다.
'자율성'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첫 번째 요소이다. 어떤 방해 없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때 행복하다. 가족이나 사회에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관계에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기도 한다. 결혼을 하면 자율성에 더 큰 타격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이 해결이 되지 않고 쌓이면 불만이 생기고 결국 갈등이 생겨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거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해 답답함이나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힘든 이유를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서 찾는다. 상대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는 거라고 단정 지으면서 관계를 끊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관계는 원한다고 끊어낼 수 없다. 끊어낸다 해도 다시 우리는 관계 속에 얽히고설킨다. 그렇다고 늘 참으면서 살아갈 수 없다.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내가 진정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스스로 존중해 주면서 돌봐야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하다. 글쓰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설렌다. 내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고 그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 내는 과정 또한 매력적이다. 마치 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는 것처럼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고, 그것이 결과물로 나왔을 때는 더없이 뿌듯함을 느낀다.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앞으로 언제든지 개선해 나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글쓰기를 지속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할 뿐이다.
욕구는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동상이몽'이란 TV프로그램에서 배우 최병모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배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목마름'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무명시절을 오랫동안 겪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절실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것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원하는 것이 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이루어 나갈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타당한 선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이해받고 수용받고자 하는 욕구들을 실현할 수 있었다.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노트북이 망가지기도 하고, 글쓰기에 집중함으로써 남편과의 갈등도 있었다.
남편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것에 지지를 해주고 있었다. 노트북이 망가질 때마다 수리를 해주었고, 더 이상 수리를 할 수 없을 때 노트북을 사주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 또한 사용이 잘 안 될 때는 살펴봐주기도 한다. 글을 통해 남편에 대한 미웠던 감정을 쏟아낼 때도 많았지만 쓰면 쓸수록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모든 것에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내가 느끼는 감정과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 오늘 힘든 일이 있었다면 잊어버리려 애쓰지 말고, 내가 힘들었던 이유를 잘 살펴보면 좋겠다. 그 속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사람은 결국 원하는 것을 해야 행복하다.
원하는 것을 할 때 행복한 하루가 됩니다.
좋은 하루가 될거라 믿으면 좋은 하루가 됩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지금,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