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고 토닥여주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일상에서 늘 함께하는 시대인만큼 자기만을 바라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지켜봐 주는 일이 적어진 것 같다. 바로 옆에 있어도 상대의 솔직한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보니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터놓을 일도 거의 없고,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 또한 찾기 힘들어져 혼자 감당해 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혼자 견뎌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폭식을 하고 스마트 폰 속 영상을 무의미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깊이 들어오면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가만히 어깨를 빌려주고 내 옆에 있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쉽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나의 이야기에 판단 없이 귀를 기울여 준다면 어떨까? 때로 나는 힘이 들 때 누군가 내 옆에 가만히 있어 준다면 어떤 힘든 일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사랑이 고파 계속해서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 그래서 그 짐이 덜어질 때까지 계속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글을 쓰지 못할 땐 마음이 공허하다. 글을 쓰는 분들이라면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살다 보면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큰 상처를 받거나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의 글 한편이 마음에 닿아 마음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이유를 되묻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를 되묻는 것과 같다
내 삶의 모양새와 형태가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찾고 있는 중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발버둥 친다. 삶은 애씀으로 더 나아지고 그 속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집안을 정돈하고 가족들을 챙긴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아침 해를 맞이한다. 이 모든 일은 나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온전하게 나를 찾는 일은 힘이 들고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다. 나에게 부정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것들을 차단하고 내 안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는 건 웬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않다면 어려운 일이다. 견뎌내고 버텨내야 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내기까지 인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내 마음도 견고하게 하기 위한 애씀이 필요하다.
글쓰기란 나에게 희망을 찾는 일이면서 무뎌지는 나를 깨워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를 통해 생각의 통로가 좁음을 확인하면서 현실을 각인한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글을 써야 한다는 임무를 주지 않았으니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글쓰기가 멈춰지거나 계속될 수 있다. 돈이나 인정이라는 외적인 보상이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스스로 써야 하는 이유를 되물어야만 한다.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되물어야 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얼마를 버는 것과는 별개로 꼿꼿한 나의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져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인생은 한번뿐이고 시간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육신을 벗게 되는 그 이후의 또 다른 삶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내야 한다. 외적인 조건만을 채우며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어쩐지 위태로운 느낌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해야 한다. 살아가는 것 또한 결코 단순할 수만은 없다. 내 마음속에 들려오는 질문들을 외면하며 살아갈 수 없다. 언젠가 스스로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할 때가 온다. 그럴 땐 살면서 고수해 왔던 자신만의 관념들을 조금씩 깨뜨려야 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어떤 질문이 떠오른다거나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던 자기중심의 생각들을 걷어내야 할 때이다.
글쓰기로 판단과 편견을 걷어내고 나에게 집중한다
삶을 견뎌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삶이 마냥 즐거울 수 만도 없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어 버티며 살아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글을 쓰면서 삶을 버텨내고 견뎌내고 있다. 슬퍼도 글을 쓰고 기뻐도 글을 쓴다. 피곤할 때조차도 글쓰기를 생각한다.
내가 진정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의 편견이나 기대에 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겉보기엔 경력 없고 능력도 없는 아이 셋 엄마일 것이고, 외모조차도 끌리지 않아 누구도 찾아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외적인 조건을 다 충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글쓰기이다.
스마트 폰을 보고 있으면 자신과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메신저 속 지인들의 사진에서부터 SNS 속 사진이나 영상들까지 누구든 얼마든지 비교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우선순위가 아니라 여겨도 어쩔 수 없는 부러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글을 쓴다. 누구보다 더 많이 갖고 관계에만 몰입해 살아가는 것이 결코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증명해 내고자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 글을 쓴다. 사람 사이에 비교하고 계산하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상대가 미워지고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 나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는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다잡아야 한다.
삶은 참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다
가끔 아빠와 통화를 하다 보면 어른들은 대체로 삶에 변화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변화'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치 내 삶이 불쌍하고 더 나아질 수 없다는 듯 말씀하신다. "참고 살아야지 어떡하냐"는 말과 "아이들 보며 살아야지" 하는 말은 전혀 나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들의 부모로서 아이들을 돌보고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고 가정을 지키는 것 또한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것인데, 가정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해당 직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크면 식당이나 백화점에 가서라도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엄마의 말에 엄마에겐 난 능력 없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씁쓸하다.
나는 엄마의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식당일도 아무나 못해. 일머리가 있어야 하고 서빙도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아무래도 부모님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학위가 있어야 능력이 있고 그런 사람만이 인정받는다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이제는 부모님의 말이나 행동에 그러려니 한다. 글을 씀으로써 내면에 집중하고, 내면이 단단해지면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적인 조건이 뛰어났다면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회적 관계에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 자발적인 나의 모습이 신기하다. 줏대 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흔들리던 내가 스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내가 믿는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니 말이다. 잠도 줄여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가 대견하면서도 놀랍기까지 하다. 당장 글쓰기로 어떤 결과를 낼 수 없음에도 1년 이상 글쓰기를 지속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돈이나 인정이라는 외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더 잘 쓰기 위해 애쓰는 나의 모습이 좋다.
글을 올리고 나서도 더 잘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과 부족한 글쓰기 실력이 드러나 느끼는 좌절감은 글쓰기를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내 안에서 나올지 궁금하다.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나의 글이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하고, 읽힐 수 있도록 정리해 내는 과정이 뿌듯함으로 돌아온다.
내면이 단단하면 그 어떤 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내면이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다. '외적인 면'뒤로 보이지 않던 '내면'을 바라보고 그에 집중할 수 있는 내가 참 좋다. 내면에 집중하면 할수록 삶에 다양한 변화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
글을 씀으로 살아간다
나의 글쓰기에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픈 염원이 담겨있다. 내 머릿속은 온통 글쓰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나의 일상은 글쓰기를 위해 존재하는 듯 모든 일들이 글쓰기의 소재가 되고 영감이 된다. 즐겨 듣는 노래나 책 한 문장 한 문장 모두가 내 생각이 확장될 수 있게 해 준다. 생각지도 못했던 표현들이 나의 마음을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