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책 한 권을 구입 후 한 시간 여를 걸어 최인아 책방에 갔다. 최인아 책방으로 가는 도중 여러 매장에 들어가 구경을 하기도 했고 지오다노에 들어가 남편 옷을 사기도 했다. 반팔티 두 벌을 사는데 실제가격보다 할인이 되어 저렴하게 구매해 가벼운 마음으로 걸었다.
신논현 역에서 강남역과 역삼역을 지나 선릉역에 있는 최인아 책방에 갔다. 한 시간 여를 걸었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건강하고 생기 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교보문고를 들렀다 또 최인아 책방에 간 이유는 책방에서 직접 고른 책들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서점의 수많은 책들과 달리 책방의 대표와 여러 카피라이터들, 그리고 그곳에서 강연을 했던 작가들이 추천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들이 고른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 궁금했고, 그중 하나를 택해 읽어 보고 싶었다. 나는 매대에 올라와 있는 책들과 책장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고 신중히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랐다. 책을 둘러보다 보니 시간이 흘러 얼른 지하철을 타고 공연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선릉역에서 전철을 타고 아차산역에서 내려 가수 정승환 팬미팅이 열리는 유니버설 아트센터로 향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일찍 많은 팬들이 와있었고, 모두가 신나고 들떠 보였다. 팬들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굿즈를 구매하면서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 내내 팬들은 하나 같이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고 떼창을 하며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나 또한 노래의 감정선을 따라 음악에 동화되었고 차분하면서도 위트 있는 그의 입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삶의 의미를 찾으며 심각하고도 무거운 생각들에 집중했던 나날들 속에서 공연은 쉼을 주었다. 삶에 때로는 마음이 가벼운 날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 일이나 일상에 치이다 어느 한날은 이렇게 무조건 재밌고 시나도 괜찮다고 누군가 말해주는 듯했다.
공연이 끝이 나고 가수의 퇴근길에 마치 소녀팬이 된 것 마냥 수많은 팬들과 함께 가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수의 얼굴을 엄청 가까이에서 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아쉬웠지만 연예인을 가까이서 보니 신기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이토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의 모습을 보며 그것 또한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로 위로와 힘을 주고 있기에, 가수가 받는 사랑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이번 해방데이의 주제는 책과 음악이었다. 책과 음악은 늘 나를 설레게 했고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꽉 채워주었다. 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음악을 들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가는 내내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닿는 문구에 필름 인덱스를 붙이고 떠오르는 생각들은 바로바로 핸드폰에 적어두었다. 책이 주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은 나를 설레게 했고, 공연장에서 들었던 밴드의 연주와 가수의 목소리는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다른 서울의 거리는 계속해서 걷게 해 주었다. 차도 옆으로 난 인도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일자로 뻗은 길은 쉽게 길을 찾게 해 주었다. 날은 더웠고 땀도 제법 났지만 가벼웠던 옷차림새와 푹신한 운동화는 걷기에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노란색 옷을 입고 걸으니 마음도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책과 음악, 그리고 걷기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고 온전히 이날을 기억하고 싶었다. 오늘의 노란색 옷과 거리의 냄새, 풍경까지 좋았던 기억으로 내 마음에 남길 바랐다.
글쓰기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내 마음과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경험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면 여러 감정이 몽글몽글하게 올라와 글쓰기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늘 관계에 둘러싸여 지내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이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시간을 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혼자서 하루를 채워보면 여러 깊이 있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 주변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그동안 느끼기 어려웠던 여러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그 감정들은 또 하나의 글과 작품으로 탄생될 것이다.
혼자가 되는 일은 내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관에 가기도 했다. 혼자 다니면 온전히 내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었고 혼자였기에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글쓰기라는 이 지루한 싸움을 견뎌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과 함께 있다 보면 의견이나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럴 때마다 좌절감을 느끼고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들에 빠지곤 하는데 혼자 하는 글쓰기는 나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았다. 나의 있는 모든 것들을 받아주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 생각과 느낌을 적어 내려갈 수 있었다.
최근 읽고 있는 임경선 작가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라는 책을 보면, 작가업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 과묵하게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고 한다. '글쓰기의 본질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글을 쓰기. 이것 하나로 모든 것이 수렴되고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글쓰기를 업으로 할 수 있다.'라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 많은 공감을 했다. 글쓰기는 혼자 과묵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온전히 혼자가 되는 과정을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게 글쓰기는 참 잘 맞는 것이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생각과 느낌들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임에 분명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와 말하기'다. 다른 사람의 말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도 있어야 한다. 소통이라 하면 뭔가 거창한 것을 떠올릴 수 있는데,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딱 이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있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고 거절당한다고 느낀 날들이 많았다. "그렇구나. 그래 그럴까?" 하고 물어봐주기만 하면 되는데, 이건 이래서 안돼서 저건 저래서 안된다는 말들이 들려오기 일쑤였다. 이런 좌절의 경험은 인간관계를 풍성히 만들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나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 때문이었는지 어려서부터 '나'를 내세운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날이 많았고 어쩌다 하는 말에 거절이 날아오면 서러워서 울며 이야기하는 날들이 많았다. 지금도 가족과 거리를 두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라는 고유성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늘 나의 감정에 대해 물어봐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인지 알려고만 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느낌인지 물어봐 주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부모님 자신도 받아보지 못했던 질문이고,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30대 후반이 돼서야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무시당하고 거절당하는 것에 구체적인 느낌을 알지 못해 이유도 모른 채 화가 나고 우는 날들이 많았다.
요즘 들어서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임에 집중한다. 이기적이다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람은 누구나 각자 욕구가 있고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집단성만 강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이 다 다를 수 있고 같은 상황이어도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 다르다. 이 부분을 간과하면 똑같은 문제로 계속해서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자기 중심성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거절당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안된다는 소리에 생떼를 쓰고 자지러지며 우는 것이다. 부모는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른 채 징징댄다 혼을 내고 아이는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사람은 개별적이면서 고유한 존재이기에 '글쓰기'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결국 공감이라는 것도 상대와 나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충분한 공감과 수용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 본다.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대한민국 최초의 강력계 여성 반장 황미옥 형사는 MC들과 범죄형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요즘은 분노범죄의 형태를 보이며 주로 지인들을 공격하기도 한다고 했다. 인정받지 못하고 늘 사랑에 굶주려왔던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 그 분노가 차곡차곡 몸과 마음에 쌓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충분히 받지 못한 인정과 수용이 영향을 준 것이라 추측해본다.
충분히 받지 못한 인정과 수용은 글쓰기를 통해 메워지기도 한다. 글쓰기는 작가라는 직업에 국한될 필요가 없음을 느낀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쏟아낼 수 있고,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공감은 살아가는 힘이 되고, 무엇이든 자신감을 갖고 임하게 한다.
혼자만의 시간은 개별적이면서도 고유한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해 주는 과정이다. 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삶에서 빠져나와 갑자기 혼자가 되면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자책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걱정과 불안은 잠시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온전한 '나'가 된다.
이번 해방데이도 나의 개별성을 존중해 주는 시간이었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받지 못해 생긴 마음의 구멍을 메꿔나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쉽고 또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려지겠지만 조금은 더 생각이나 감성이 풍부해졌으리라.
나의 해방데이는 사실 현실의 느낌보다 환상의 세계에 온듯한 느낌이 강했다. 평소 경험하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이들 없이 홀로 거리를 걷고 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것도 어쩐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가수의 노래와 밴드의 연주는 충분히 감성적이었고 충분히 환상적이었다.
공연이 끝이 나고 가수의 퇴근을 기다렸던 것도 충분히 겪지 못할 경험이었다. 엄마와 딸이 함께 공연을 보고 함께 가수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신기했다. 공연이 끝나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다 "전화 끊어, 이제 가수 나온다"라고 말하는 어떤 어머니의 모습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그 가수와 노래를 좋아하는 모습이, 그토록 기다렸던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들었던 것 다음으로 기억에 남았다. 모두가 행복해했고 들떠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승환이라는 가수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을 하는 것을 보면 현실 속에서 그런 따뜻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아닐까 생각했다.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를.
어쩌면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을 들어주고 어루만져 줄 다정함과 따뜻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늘 다치기만 했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늘 마음속으로 '괜찮아, 괜찮아'아를 외치며 나를 다잡고 참아냈지만, 늘 불안했고 외로웠던 것이다. 혼자 견뎌내고 참을 수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에겐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게 '기댈 수 있는 누군가'는 음악이었고 글쓰기였다. 나는 그렇게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면서 홀로 밤을 지내왔다. 음악과 글쓰기는 내게 다정하고도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충분히 잘하고 있고 그냥 너는 너라서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냥'.
최인아 책방
책방 속 책들이 마치 어서 오라며 환형해 주는 듯했다. 책들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위로해 주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