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

현실 세상으로 나가는 문

tv속에 온 세상이 다 들어가 있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TV 속엔 부모님이 알려주지 못한 세상이 담겨있었고 내가 죽을 때까지도 알지 못하고 경험할 수도 없는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억울했다. 난 왜 저 세상을 나가보지도 알지도 못하고 살아왔는지.


그 억울함을 풀고자 글을 쓰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세상은 어딘가에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그 세상을 다 알지도 못하고 숨 쉴 구멍도 없는 일상에 묶여 살고 있었다. 단순히 용기가 부족하고 지식이 없어서 그랬던 거였는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난 우물 안에 있었다.


그러다 반짝이는 햇살을 보게 되었고 직접 그 햇살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던 그때, 글쓰기를 만났다. 다양한 세상을 다 만나볼 수 없다면 내가 직접 나만의 다양한 생각을 글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선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로이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비난하거나 판단하지도 않았다.




늘 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었던 고무줄 끈을 풀고 곱창 머리끈으로 묶었다. 큰 변화랄 것도 없는 이 작은 것은 잠시 자유라는 현실을 맛보게 해 주었다. 앞모습으로는 어떤 머리끈인지 알 수 없는 현실이지만 바뀐 끈 모양 하나 만으로도 무언가 변화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걸으며 변화되는 풍경을 바라보면 마치 나 또한 변화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은 내가 하염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다. 거리 위 수많은 직장인들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어떤 집단 속에 속해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었고, 자신의 일을 통해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들의 얼굴에 어려있는 듯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을 테지만 걸어보지 못한 사원증 하나로 새삼 그들이 부러웠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그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막연하게 "다 잘 될 거야"란 말 보다 "네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도록 해야 한다."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원하는 것을 늘 꿈으로 남겨두고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 그 꿈을 위해 난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 어떤 결과물이 세상에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난 언제든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치열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그 현실을 탓할 수만은 없고 매일 조금씩 한 문장, 한 문단이라도 써 내려가자 마음먹었다.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언제나 열려있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올 거라 여기며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나의 목표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마치 수양하는 사람처럼 눈앞의 유혹들을 떨쳐내고 책상 앞에 앉았다. 화려해 보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쫓는 사람이 아닌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늘 나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문은 언제든 열려있었다. 다만 내가 문이 열려있는지 알지 못했을 뿐이다. 문이 열려 있으면 불안해 나 자신이 그 문을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닫은 문을 보며 답답했다. 열려 있으면 불안하고 닫혀 있으면 답답해 어디로든 날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결국 문을 여는 사람도 닫는 사람도 나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 책임을 다해야 했고 벗어날 수 없는 반복된 일상이 버겁기도 했지만 뛰쳐나올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현실이었기에 책임을 져야 했다.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할 일을 해야 했다. 그것 또한 내 삶의 과제라 여겼고 여기서 무너지면 다음 미션을 수행할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가족들의 인정이 고파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봐주지 않음에 화가 나기도 했다. 글쓰기에 지지와 응원을 바랐다.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도 자기 발전을 위해 애쓰는 나를 봐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처참히 무너녀졌다. 그 누구도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글을 쓰길 바란 적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선택이자 바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인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욕구는 스스로가 만든 사명이자 과제였다. 인정받지 못한다고 억울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보는 세상도 환경도 모두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함을 알게 되니 상대에게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고 오로지 '나'의 의지만이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실력이 나를 증명해 줄 거라는 걸, 더 이상은 응석받이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여서 할 수 있는 거라는 걸 알았다. 글은 그렇게 지금의 나에게 말은 건 것이고 지금의 내가 글쓰기에 응답한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지금의 나만이 지금이란 시간에 열정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그래서 유일하고 소중하다.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힘들 땐 잠시 휴식을 가지면 된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다. 시간을 두고 내가 나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새 문을 열고 나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 어디로든 현실이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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