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달팽이 May 05. 2023

불편함이 익숙해지려 할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안경점에서 안경다리를 조정하고 난 후, 왼쪽 다리가 닿는 귀 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하며 아픔을 참았다. 그렇게 아픔을 참기를 3주가 지나고 고민 끝에 안경점에 다시 가서 조정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정을 다시 했지만 여전히 귀 뒤는 아팠다.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아파도 안경을 계속 써야 했기에 아픔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렇게 아픔을 참는 일이 많아졌고 그 아픔이 익숙해 지기를 기다렸다. 안경을 계속 쓰고 있다 보면 귀 뒤가 아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안경을 벗을 때마다 안경다리 끝 부분이 상처

난 부분을 스치면서 찌릿한 통증을 느끼곤 한다.


내 일상생활도 그렇다. 내 줏대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가족들의 시선에 날 가두어 그 통증조차 참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를 맞추게 된다. 나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말들은 내 마음에 조금씩 스크래치를 낸다. 딱지가 앉아 없어지려 하면 다시 상처를 입어 늘 같은 자리에 상처가 남는다.


둘째 아이도 평소 다리를 긁는 습관이 있어 늘 다리에 상처가 있다. 가족들은 알레르기나 피부염 때문에 간지러운 것이 아니냐며 걱정을 하지만 일 보는 나는 아이의 상처 난 다리를 보며 마음의 상처를 생각한다. 나는 아이의 상처가 가라앉는지 지켜보면서 상처 난 곳에 연고를 발라준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하여겨져 불편함을 느껴도 웬만하면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둘째 아이도 상처로 인해 불편할 텐데 말을 잘하지 않는다. 표현을 하지 않고 긁다 보면, 그 마음을 알아차려주지 못해 어느새 딱지가 벗겨지고 자국이 남는다.




나는 불편함이나 아픔을 잘 참는 편이다. 귀가 좀 먹먹해도 안경을 조정해야 해도 한동안 잘 참는다. 귀가 좀 먹먹해 병원을 갈까 하다가도 어느샌가 그 불편함에 익숙해져 버리곤 한다. 안경의 불편함도 어느 정도 참다 너무 불편하면 그제야 안경점에 간다.


사람들과의 소통도 그렇다. 어디다 마음을 터놓아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이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내 마음 터놓자고 만날 수는 없었다. 남편과의 소통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고 말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소통을 포기해 버린다. 나는 또 그 상태에 익숙해져 버린다.


아프고 불편해도 참아진다. 참으려 한 건 아닌데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다. 상대의 말에 상처를 입어도 상처 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상대의 의도가 상처를 입히기 위함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단지 표현하는 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어차피 내 욕구에 귀를 기울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해결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에 마음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과 마음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마음은 소통을 막는 벽을 만든다. 대화의 폭이 넓어질 수도 깊어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불편함을 익숙한 상태로 놔둘 수는 없다. 발전하고 성장하는 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대화의 연습이 필요하다. 대화의 연습이라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귀를 기울이며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불편함이 익숙해지려 할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불편한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결할 방법들을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에 머물러 보는 것이 좋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결정하고 내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첫 번째다.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야 한다면 조언을 구해야겠지만 불편한 마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의 감정은 어떤지 글을 쓰며 들여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내야 한다. 나는 그렇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져,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직 두 돌도 안 된 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남편과 상의를 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아이를 보내고 데려오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기에 신중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마음에 담아두며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글쓰기를 위해 잠을 조금 줄여 지금처럼 새벽에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은 아니어도 새벽에 시간을 내보기로 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메모를 하면 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글을 쓰는 것은 아직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 시간을 잘 운영하지 못한다면 지금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도 배우고 성장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기도 한다. 아이를 집에서 돌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줄어들었다. 나의 일상은 온종일 아이와 함께이다. 어느 날은 문득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일을 하지 않으니 일적인 관계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들과의 만남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관계에 대해서도 내 마음에 말을 걸어보았다. 관계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 건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관계를 통해서 사적인 친밀감을 갖는 것도 좋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 시절부터 만나온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이야기, 육아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나에겐 진부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첫째를 낳았을 때 엄마들과의 관계를 맺어보았던 경험 때문인지 더 이상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를 좋아하기 때문에 스쳐가는 인연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꽤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이진 않지만 혼자여도 괜찮다. 글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출처 - 블로그 나디아 연대기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나의 욕구는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계속 갖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다. 익숙함이 때론 독이 된다. 자신의 마음을 꺼내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알아차린다면 우리의 인생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붙잡고 버티어 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