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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을 등록하지 않는 이유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

어디선가 흔들리고 있는 영혼을 위해서, 그 영혼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아서 나는 글을 쓴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앓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 나의 글로 곁에 있어 주고 싶다. 넌 혼자가 아니고 내가 널 혼자 두지 않겠다는, 그러므로 은은히 너의 곁에 있겠다는 마음이다.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누구나 외로운 순간이 있다. 혼자여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닌, 서로가 달라서 느끼는 외로움이다. 나는 늘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각자 모두가 다른 사람임에 집중한다. 모두가 개별적으로 각자 하나로 온전하게 존재하는 개체로서 바라봐진다. 개개인이 뿜어내는 개성적이고도 고유한 향기와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고유한 아름다운 내음은 각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개성이다. 그것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이자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배우기를 선택하기보다는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글쓰기 수업을 등록하지 않았다.


동기부여를 위해서 혹은 글 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등록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시간과 공을 들여 자신만의 글 세계를 구축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글은 자신이 혼자서 스스로 각자의 의지에 의해서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팀플레이가 아니다.


글쓰기는 스스로의 동력에 의해서 움직여야 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는 다른 사람의 글에 본을 뜰 수 조차도 없다. 감명 깊은 글을 보고 인용을 하더라도 그건 자신의 생각이나 글이 아니다.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결국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생각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평가를 바라게 된다. 그럴 때 마음에 와닿는 책을 골라 정독을 하면 된다. 속독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마음을 콕 찌르는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에만 집중해 바라보면 된다. 그럼 그 문장이 와닿은 이유가 떠오를 것이고 그 속에 숨어있던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자신만의 이야기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해 듣는 편인데 특히 와닿는 한 부분들이 있다. 그게 한 단어가 될 수도 있고 전체적인 흐름이 될 수도 있다. 일상에서도 하나의 장면이 사진을 찍듯 머리와 가슴에 남기도 한다. 그럴 땐 곧바로 핸드폰에 메모를 한다. 그럼 또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글쓰기는 장기적이고 끝이 없는 작업이다. 온전히 나의 내면과 하나 되어 순간에 몰입하지 않으면 자꾸만 주위를 살피게 된다. 인용할 만한 글을 찾거나 인의적으로 글을 채워나갈 무언가를 찾게 된다. 흐름이 흩어지고 깨어져 나가 자신도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지 알지 못한다.


글은 내면과의 대화에 몰입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잘 어루만지면 자신만의 글이 탄생한다. 쓰인 글은 찬찬히 읽어보면서 고쳐 나가면 된다. 뺄 건 빼고 붙일 것은 붙여가면서 글을 다듬어 나가면 된다. 그럼 어느새 생각지도 못했던 보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글쓰기 수업을 듣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정답을 알고 싶지 않아서이다. 글쓰기에 정답을 알게 되면 그 정답을 향해 가려 애쓰는 동안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와 색깔을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수업을 듣는 시간에 조금 더 나만의 생각에 집중하고 글을 한 번이라도 더 써보는 것이 내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수업을 듣는다고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을 쓰는 방법은 알게 되겠지만 그 방법을 적용하는 것 또한 나의 선택이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그 방법을 적용해 보느라 진짜 자신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글쓰기 수업에 대한 생각은 오로지 나만의 생각이고 걱정일 뿐이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수업도 듣고 방법도 적용해 보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쓰기로 경제적인 활동을 바란다면 글쓰기를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글쓰기에 괜한 환상을 갖고 쫓아가다 아무런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실망을 하게 될 것이고 글쓰기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어느 정도 글쓰기에 꿈이 있었고 환상도 있었지만 지금은 글쓰기로 어떤 결과를 내겠다는 기대나 목표를 내려두었다. 쓰면 쓸수록 독자에게 다가가기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들과 다양한 콘텐츠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선택될 것이고 나의 글도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읽힐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읽어준다면 나는 계속해서 써나갈 힘을 얻을 것이고 더 좋은 이야기, 힘이 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적당한 환상은 글을 계속 써나가는 데 동력이 된다고 여겨진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자신만의 느낌이 담길 것이고 그 느낌은 상상에 의해 나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꽤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자신만의 바람이나 욕구가 담겨있어 현실화하는데 무리가 있는 공상 같은 무엇이 담겨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글을 다 증명해 낼 수도 없고 출처를 다 알 수는 없다. 많은 글들과 여러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합쳐져 있어 온전히 나만의 생각이라고 말하기가 애매하기도 하다. 그러니 어느 정도 자신만의 상상과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글쓰기의 현실이다. 사실적인 것만 쫓아가다 보면 나의 글이 어떤 장르에 속해 있는지 혼돈이 올지도 모른다.


글쓰기엔 정답이 없고, 자신만의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 낼 수 있는 자유가 있기에 빠른 길을 찾기 위해 수업을 듣는 다면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수업 후 적용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야기라면 와닿지 않아 시간낭비가 될 수도 있다. 글쓰기는 멈춤이 없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공감을 얻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오로지 혼자 스스로 겪어내야 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나와 내 생각을 믿고 글을 써 나간다.




글쓰기 수업을 듣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평가나 조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의 글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선과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평가로 인해 나 자신에게 실망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나약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글쓰기에 무모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는 등 실험정신을 발휘하게 된다. 쓰고 나서 현실 자각을 하게 됨으로써 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지 지금의 실력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평가받을 자신이 없어 더 나은 글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쓰게 되는 것 같다.


솔직한 마음은 누군가에게 용기나 희망이 되기도 한다. 글에 정답이 있어 정답을 알고 써야 하는지 알고 글을 쓰는 데 머뭇거리고 백지상태가 되어버렸다가 다양한 글을 접하면서 어떤 글이든 쓸 용기가 난다. 혹 누군가 나의 무모한 글을 보고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좋겠다. 실제로 여러 책들을 보면 작가만의 다양한 문체와 표현방식을 보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더라도 글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이는 것을 보면 글을 쓰는 방법이 이것이라고 딱 규정되어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창의적이고 생각의 폭이 넓다는 것이 느껴진다.

조언이나 평가가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몰라 두려운 마음에 수업을 듣지 않고, 합평과 같은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각자마다 때와 시기가 모두 다르 듯이, 조언을 구하게 되는 때도 각자마다 다르리라고 본다. 나는 평가에 급급하기보단 나만의 다양한 생각을 밀고 나가고픈 욕구가 있다. 합평으로 얻지 못하는 부분들은 여러 책을 읽으며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글은 계속 변화되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의 생각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문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나감으로써 누구에게나 상처받지 않는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사람들이 감명을 받는 책들을 읽어보면 작가들의 용기와 희망을 주고픈 절실한 마음과 누구에게든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신념이 느껴진다.

이러한 작가들의 신념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은 퇴고의 정신이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면서 고치고 또 고친다. 잘 읽히는 글이 되기 위해서 말로 되뇌어 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는데 도움이 되는 훈련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상처받기를 원치 않고, 상처받는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려 노력한다.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세요 하는 조언보다 나는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있다고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진심은 상대의 조언을 통해서가 아닌, 상대가 실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알게 됨으로 느낄 수 있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조언이나 평가로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 작가로서 피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구하거나 받아들이는 시기는 각자만의 마음속에 다 다르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글은 다양함과 창의성을 포함하고 있으니 실험정신과 무모함이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가 보는 것은 어떨지.



온전히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글은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생각과 느낌은 고유하고 소중한 것이니 글을 읽고 어떻게 느끼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글 속에 진심이 담겨있는지 그렇지 않은 지다. 작가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실천하고, 고심하기를 반복했는지 독자들은 다 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글이 닿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작가 자신만이 알 것이다.


글을 쓰기까지 뜸을 들이는 이유도, 그 고충도 다 안다. 글은 쓰고 싶은데 막상 써지지 않는 그 마음을 나도 안다.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첫 번째는 내 마음을 아무런 판단이나 평가 없이 쓰는 것이다. 퇴고는 그다음 단계다. 그러니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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