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쓰기가 하나가 되어 글쓰기가 된다
어린 시절 처음 소설책을 접했을 때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해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 했다. 다 읽고 나서도 그 책 내용을 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흐르고 이제야 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대학생 때 누군가 손금을 봐준 적이 있는데 공부할 머리가 아니라고 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책이 좋았고 글이 좋았다. 심리학 전공 서적도 좋았다. 수학기호 같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정의 내려야 할 것만 같은 과학책보다 내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는 심리학 책이 좋았다. 원래 나의 독서습관이 규칙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권을 다 읽기까지 시간은 엉금엉금 흘러갔고, 끝까지 읽어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랬던 내가 세 아이를 낳고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누군가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더 잘 써야 하니 책을 찾아 읽어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기 같은 나의 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이야기였다. 내 글이 지극히도 사적이어서 공감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심리학 책부터 자기 계발서, 그리고 소설책까지 와닿는 대로 다 읽어 내려갔다. 오래도록 쳐다봐야 할 어려운 용어들이 가득한 책부터 스릴감 넘치는 소설책까지 모두 다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들을 누구나 읽어도 빠져들 수 있게끔 썼는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니 글을 쓰고픈 욕심이 생겼다. 나도 할 말이 생겼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삶의 의미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겉도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대화가 무르익거나 지속되지 않았다. 독서의 후유증이라 해야 하는 건지, 글쓰기의 효과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내 삶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에 자꾸만 내 생각을 집어넣게 되었다.
대화를 하다가도 자꾸만 가르치려들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졌지만 내 말을 늘어놓기엔 자격이 충분치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긴 글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쏟아내게 됐다. 글의 참 의미를 깨닫고 글쓰기의 참 재미를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의 삶에 소비는 빠질 수 없는 것이었고 계속해서 무언가 소비하고 소유하려 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양상에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사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자꾸만 먹는다. 더 좋은 물건을 갖고 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쇼핑앱에 들어가 하루 종일 물건을 고르고 또 고른다.
경제적인 한계로 필요한 것만 골라 사야 하는 나는 자연스레 책과 글쓰기에 마음을 할애하게 되었다. 지인들 혹은 모르는 사람들의 sns 속 사진들을 보며 부러울 때도 많이 있지만, 나는 소유욕을 다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신 마음의 양식을 소유하기로 했다.
당장 돈을 벌 수도 없는 상황이니 돈을 쌓는 대신 글을 하나하나 쌓기로 했다. 책장엔 책이 한 권 한 권 쌓이기 시작했고 브런치엔 나의 글이 하나하나 쌓여가고 있었다. 식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 지혜와 현명함을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냄으로 말을 하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들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외적인 모습으로 자신감을 얻지는 못하지만 글이 내 곁에 있어 글을 읽고 쓴다는 자부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부러운 마음, 시기하는 마음은 글을 읽고 씀으로 어느샌가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곤 내면의 깊은 곳으로 탐험을 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이 없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했던 나는 혼자서 놀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했다. 심심함을 해결해 주었던 TV 다음으로 음악이 좋았고, 그다음으로 책이 좋았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책 내용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글자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읽어 내려감으로써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를 좋아했거나 잘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책은 늘 곁에 있었다. 지하철을 타야 할 때마다 책을 가지고 다녔다. 가방 속에 이어폰과 책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책은 마음의 양식도 되었지만 불안정한 내 마음을 지켜주는 분신과도 같았다.
지금도 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닌다. 책을 꾸준히 읽게 되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필름 인덱스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때에도 늘 곁에 있다.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대신 필름 인덱스를 붙인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1차적으로 눈에 들어오면 필름 인덱스를 붙임으로써 2차적으로 각인이 되는 것 같다.
덕분에 글을 쓸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 문장을 직접적으로 인용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문장 혹은 단어로 인해 글을 쓸 주제가 떠오른다. 그 주제에 깃발을 꽂고 글을 써내려 가게 된다. 그럼 그 순간 나는 또 한 명의 창작자가 되어 글 하나를 완성시킨다.
이렇게 책은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 각자의 삶을 중요시하는 요즘 시대에 책은 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이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종이책을 집어든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읽는다. 책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손수 지식을 탐험하는 느낌은 AI가 절대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AI가 계속해서 진화를 해나감에도 불구하고 대형서점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 코너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찾고 있기 때문에 서점으로 향하고 책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무언가를 종교에서 혹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찾을 수도 있지만, 진짜 해답은 글 속에 있는 거라 믿는다.
모든 글은 사람의 생각에서 나왔고 작가들의 내면 속 탐험으로 나온 결과물이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나 또한 글을 씀으로, 내면은 파도 파도 끝이 나지 않았고, 계속해서 깊이 파고들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오로지 나만의 생각 만으로 깊어 지지 않는다. 책을 통해 새로운 주제와 문장을 만남으로 내면도 생각도 깊어진다.
정말 중요하다 생각되는 글 혹은 문장은 꼭꼭 씹어 삼키고 싶다. 그 글을 쓴 작가의 감각마저도 삼켜버리고 싶다. 그 작가의 글을 따라 쓰겠다는 것이 아니다. 진짜 작가로 빙의되어 신선한 감각으로 술술 써 내려가고 싶은 것이다.
하나의 글은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들어가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 간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글이 될 수 있도록 온마음을 다한다. 온 마음을 다한 글은 분명 누군가에게 가닿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복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또 다른 글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글(책)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