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이상한 꿈이 생겼다. 신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울 예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예대를 발견하고 마음 속으로 destiny! 를 외쳤다. 대중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슬금슬금, 다시 꿈을 꾸는 몽상가가 되었다.
무작정 작가가 되고 싶었다. '문예 창작과'라는, 있어 보이는 듯한 전공명에 마음이 휩쓸렸다. 사실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 보아를 보며 가수를 꿈꿨더랬다. 무대 위에서 자신감 있게 춤을 추는 모습이 마냥 멋졌다. 어린 시절이 담겼있는 앨범 속 나는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와는 다른 그녀를 보며 내 안의 환상을 키워나가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엔 무작정 가수가 되고 싶었다. 엄마에게 억지로 졸라 다녔던 실용음악 학원에서 부끄러워 수업 첫날 이후로 다시 발길을 들이지도 못했던 내가 그럼에도 날개를 달고 날고 싶었다. '잘했다',라는 칭찬 한마디 듣고 싶었다.
허공에 내뱉은 나의 노래는 그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실력도 좋지 않고 외모도 그럭저럭인 내가 수많은 오디션장 인파 속에 묻혀 있다 노래 한 소절 내뱉고 오기를 몇 차례, 현실을 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딸도 역시나 나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아이돌이 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나는 아이에게 무조건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춤을 추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 나와는 달리 외향적인 아이는 학교 안 이곳저곳에서 춤을 추고 다녔다. 교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에게는 마냥 예쁜 딸이지만 제작자 입장에선 이도 저도 아닌, 그저 평범한 10살짜리 여자아이로만 비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오늘 아이에게 지금하고 있는 피아노도 열심히 하고 춤도 열심히 추라고 했다.
무작정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네이버에 '문창과 과외'를 검색해 보았다. 한 문창과 입시 카페를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과외를 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나는 고민도 없이 연락을 했고, 남편의 동의를 얻어 과외를 받게 되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이 계신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첫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 과외를 받으며 소설 하나를 썼다. 제목은 '빛', '나는 빛을 보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 나지 않지만, 첫 문장을 쓴 계기는 정확히 기억한다.
어렸을 적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라섹 수술을 했어도 계속해서 안경을 쓰게 되었다. 나는 늘 시력이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가족들 모두 안경을 쓰지 않았기에 유전은 아닌 듯했다. 내가 찾은 답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제왕절개로 나를 낳았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 뱃속에서 나를 꺼내고, 나는 어두운 자궁 속에 있다 수술실의 밝은 빛을 보자마자 눈이 부셨고, 그 이후로 나빠진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추측을 했다.
무거운 안경을 쓰고 다니느라 외모는 망가졌고 자신감도 하락했다. 그 원망은 엄마에게로 향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실의 밝은 빛을 보았을 거라 상상을 했다. 희망만 있을 것 같던 세상에 희뿌연 현실을 보게 해 주었던 건 엄마였다고 믿었다.
언젠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첫 문장은 '나는 빛을 보았다.'로 쓸 생각이다. 과외도 그만두고 입시도 떨어진 후 내 첫 문장은 남편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놀림거리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면접관의 질문에 답도 하지 못했던 내가 샛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글을 쓰게 됐다. 세상의 모든 원망을 다 뒤집어쓴 듯 억울함을 글로 토해냈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가족 탓이었다. 원망 섞인 글을 그 누구도 봐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글을 썼다. 매일 새벽에.
아이의 수면패턴이 규칙적이지 않을 개월 수에 피곤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글을 썼다. 쓰고 나면 오탈자가 있든 말든 뿌듯함을 안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1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작가 글배우님의 조언대로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썼고 책을 읽었다.
이건 TMI... 인스타로 알게 된 작가 글배우 님이 신간을 내고, 전화로 고민 상담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글을 보고 당장 글배우 님의 신간이었던 [고민의 답]이라는 책을 사 읽었고, 이벤트를 신청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고민의 주제로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님은 많이 읽고 쓰고 사유하라고 하셨다.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 언젠가 자기보다 유명한 작가가 되어있을 거라고. 나는 진심이 담긴 응원이라 믿었고, 그 응원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렇게 주야장천 내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나는 어느 날 문득, 내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주제와 내용으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장르라 생각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최근에 정유정 작가님의 [완전한 행복]을 단숨에 읽어낸 후 황보름 작가님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있는데 나도 소설을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부분을 보면서. '서점 대표가 직접 사회 보는 북토크'란 소제목의 글을 보면, 서점주인인 영주와 일문일답을 하는 작가 아름이 나온다.
그 일문일답에 답을 하는 작가 아름이, 실제 황보름 작가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 하면 자기의 이야기가 아닌 가상의 이야기 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나도 소설을 쓰면 내가 진짜 말을 하고 있는 듯,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진짜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나는 어떤 주제와 내용으로 쓸 수 있을까.
언젠가 소설이든 에세이든 책을 내게 된다면... '작가의 말'에 지금까지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의 작가님들 이름을 나열하고 싶다. 소설 속 작가님들의 메시지는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