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잊어버림을 선택했다

잊어버림으로 자유롭게

잠든 세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몇 번의 밥을 했을까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었던 매일 중 정성을 들여 좋은 재료로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한 날도 있었고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데워 간단히 먹였던 날도 있었다.


요리나 살림이란 것도 그렇듯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이 늘 즐겁지 만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온정성을 들여 요리를 해도 그날은 그 날일 뿐이다. 열심히 해도 아이들이 잘 먹어주지 않을 때도 있다. 잘 먹든 잘 먹지 않든 다음날 눈을 뜨면 또 밥을 해야 한다.


어쩌면 열심히 요리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하루 거실과 부엌 방까지 열심히 걸레질을 해도 그날은 그날일 뿐이다. 다음날이면 또 청소기를 밀어야 하고 먼지가 쌓인 곳을 닦아내야 한다. 그 전날 열심히 했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보상을 위해 열심히 하고 공을 들이면 그만큼 보상을 받을 기대가 있기 때문에 생각한 것과 다르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으면 실망을 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일상을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점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을 받든 받지 않든,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이 있든 없든 우리는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브런치에 응원하기 기능이 생긴다는 공지를 보고 나도 응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내부에서 선정한다는데 그 기준이 뭘까 궁금했다. 만약 그 대상이 된다면 어떨까, 더 열심히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더 좋은 글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나도 그 대상이 되었으면 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때, 얼마 전엔 이런 꿈을 꿨다. 브런치 글을 보고 기고 제안이 온 것이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MBN이 아니던가. 어떤 사건을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하는 거였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했고 실제로 제안을 한 기자?를 만났다. 그리곤 적을 수 있는 종이를 받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꿈속에서 꿈을 꾼 것이다. 꿈이었는데 꿈속에서 건네받은 종이가 현실에 남아있었다. 도대체 이 꿈은 뭘까?


응원하기 기능이 생긴다는 공지를 본 이후로 나도 모르게 상상을 했다. 정말 응원을 받고, 제안도 받는 그런 꿈을. 그런 기대 없이도 글을 써왔는데, 나는 여전히도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구나, 했다. 사실 공지를 보고 탄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 리스트 속에 내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하고자 마음먹게 됐다.


되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겠지만, 사기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고 뭐, 떠나거나 그럴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무엇을 받을 거라는 그런 희망이나 기대 말고 순수하게 내 이야기를 써내려 가야지 하는 마음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고 싶다.


무언가를 잘하고 열심히 하려면 잊어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기대 없이,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처럼. 초심으로.




꿈을 꾼다는 건, 혹은 꿈을 갖는다는 건 무언가를 잊어버려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꿈의 이름을 의식적으로 기억하기보다는 잊어버리는 쪽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할까. 그렇다고 마음 편하고자 합리화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즐거워 몰두하고 있을 뿐이라고 믿어본다.


꿈을 이뤄본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 같은 그 감정을 나도 느껴보겠다는 건데, 한때는 잊어보려 해 보았지만,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을 꾸고 있었고 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잊지 못한 꿈은 잠을 자면서도 툭툭 틔어 나왔다.


마치 시험지처럼 계속해서 내게 시험을 걸어왔고, 질문을 걸어왔다. 얼마나 내게 간절한 지 물어보는 것만 같았다. 달랑 남은 종이 한 장은 그렇게 질문을 남겼다. 그 답은 나만이 알고 있으리라. 내가 어디까지 와있는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 답은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모든 답은 내 안에 있었다.


잊어버릴 만큼 즐겁고 싶었다.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 글의 주 된 키워드는 무얼까 생각해 보니, 단 하나가 아니었다. 자기 계발, 에세이, 글쓰기 등등 단 하나를 꼽기가 어려웠다. 에세이라 하기엔 일상을 잘 녹여내지 못하는 것 같았고 글쓰기나 자기 계발이라 하기엔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았다. 나를 소개하는 키워드를 다시 보니 어떤 한 분야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직업적인 면에서 주부, 작가지망생, 에세이스트를 골랐다가 그중 주부와 에세이스트를 빼버렸다. 결국 남은 건 작가지망생이었다.

키워드를 고르다 보니 문득 꿈속의 빈종이가 떠올랐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명확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객관화해서 바라보아야겠구나 싶었다. 내 글을 보면 에세이라기도 뭐 하고 그렇다고 자기 계발 분야라 하기도 뭐 한 것 같았다. 단지 내 관심사의 한 부분일 뿐 전문성이 빠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작가소개 글을 바꿔 보았다.


내가 주로 관심을 보였던 분야인 자기 계발, 에세이, 글쓰기를 조합해 보니 이렇게 정리가 됐다. '자기 계발을 위해 글쓰기를 선택한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나의 주 매거진은 '나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나로 살아가는 힘', '이작가의 글쓰기 생각'인데 이 세 매거진을 종합해 보니 에세이라기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나는 꼭 작가가 돼야 한다기보다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글쓰기도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되길 바랐다. 글쓰기를 해보니 나를 알아가게 됐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글쓰기 강사가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를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쓰기로 경험했던 일상과 삶의 변화들을 나누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쓰기 기술을 갖춘 직업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닌, 수단으로써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글을 완성했다는 자체로 뿌듯했던 것 같다. 일상자체를 주로 쓰는 글이 아닌, 발전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에세이인지 자기 계발 분야인지 모호했다.


나는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글쓰기를 잘하려고 하면 글이 너무 작의적으로 보여질 것 같고, 일상을 나열하면 너무 평범한 글이 될 것 같다. 어떤 전략도 세우고 싶지 않다. 그저 쓰는 즐거움 하나만 갖고 싶다. 의도를 자꾸 내세우려 하다 보면, 아는거 모르는 거 다 끄집어내려 애쓰게 될 테고, 결국 나의 무지만 드러내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로이 써보는 것 밖엔 답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자연스럽게 일상의 흐름 속에 변화된 나의 모습을 녹여내 볼 참이다. 잊어버림으로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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