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쏟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
새벽에 일어나니 창문이 열려있었다. 남편이 에어컨을 끄고 아이들과 내가 자고 있는 방 창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새벽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 놓는 것이 훨씬 더 났다. 부엌 옆 베란다 창문과 안방 옆에 있는 베란다 창이 마주 보고 있어 맞바람이 불면 참 시원하다.
매일 밤 남편은 그렇게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았다. 나에게도 그랬을까? 아이들에게만 마음을 쏟았다 해서 서운하지는 않았다. 고맙다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열려 있는 창문을 보니 남편의 마음씀이 문득 고마웠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 6월, 창문을 열고 잠이 들 때가 많았다. 많이 열면 혹시나 바람이 더 많이 들어와 아이들이 춥지는 않을까 싶어 약간만 열어 놓았다. 그럼 남편은 자기 전 꼭 방 창문을 닫았다. 찬바람이 드는 새벽에 아이들이 감기에 들지는 않을까 늘 염려했기 때문이다.
날이 부쩍 더워지고 에어컨 없이 잠에 들 수 없을 때는, 에어컨 꺼짐 예약을 해놓았다. 그런데 오늘 새벽엔 에어컨이 꺼져 있고 창문이 열려 있었다. 낮은 뜨겁고 밤은 시원했던 초여름, 매일 밤 자기 전 방의 창문을 꼭꼭 닫았던 남편이 미웠는데, 오늘은 유난히 창문이 열려있는 걸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늘 건강을 염려하고 걱정이 많은 남편이 미울 때가 많았다. 걱정이 많은 만큼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너무 말없고 과묵한 것도 싫지만, 잔소리가 많은 것도 퍽 괴롭다. 꼼꼼하지 못한 나와 다르게 세심한 남편은 예민하다.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것을 더 좋아하고, 늘 깨끗하고 쾌적한 상태를 원한다.
반면에 나는 조금 어수선해도 괜찮다. 조금 어지러워 보여도 나만의 질서가 있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거의 없다. 청소에 큰 뜻이 없던 나였는데 지금은, 결혼 후 남편의 뜻을 따라 맞춰가느라 청소에 조금은 눈을 떠 가고 있는 중이다.
나와는 다른 남편이었기에 창문을 닫을 때마다 속에서 불만이 솟구쳐 올라왔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것이 남편의 마음씀이었고 배려였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다. 남편에게 불만이 많을 땐 그것이 고집이고 통제하는 거라 여겼다. 남편의 사랑방식일 테지만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랬던 내 마음이 열린 창문을 보고 남편의 행동이 사랑이었다고 깨닫게 되다니 우습다.
미웠다 좋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결혼생활이었다. 내 마음을 숨기며 사는 것이 편하기도 했지만, 숨기려 할 때마다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랬던 날들이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이기 시작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인정해 가는 있는 것 같다.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 요즘이다. 다시 비상사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열린 창으로 확인 한 남편의 마음씀이 고마운 새벽이다.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는 일은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일이든 사랑이든 그 어떤 관계든 헛되지 않은 마음 쏟음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그렇게 믿는다. 마음 쏟는 일이란 결국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기본 정서이기에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다하고 그에 맞게 사랑이 자신에게 돌아올 때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 세상에 결코 나 혼자만이 존재할 수 없기에 언제든 사람들 속에 우리가 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육아와 살림에 지치다가도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한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들이 먼저이기에, 글쓰기와 독서가 머릿속을 맴돌 땐 마음이 조급해지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을 돌아보면 내가 저 아이들을 우선순위로 두지 못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싶어 마음이 헷갈리기도 한다.
파도 파도 끝이 보일 기미도 기한도 없는 글쓰기에,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이에게 사랑을 퍼부어주는 것도 다 때가 있다는 생각에, 글쓰기와 육아를 동시에 놓고 바라보면, 지금 당장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글쓰기도 아이도 모두 사랑하는데 그 둘을 다 동시에 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땐 마음 내려놓기를 해야지만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조금은 미뤄둘 수 있다. 그렇기에 새벽이란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어딘가에 인정받는 글쓰기도 수입도 되지 않는 글쓰기지만 이렇게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건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작동해 글쓰기를 하다 보면 생산성 있는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듯이 내게도 그런 미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진다.
그런 미래가 앞당겨짐을 느낄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텐데,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야 할 때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제대로 길을 찾은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마음을 쏟는 일이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면, 그만 둘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깜깜한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쏟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짚은 벽처럼 내게도 붙잡을 벽이 있으리라. 그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것이 내게 어둠 속 벽이 되어준다. 불확실한 것 같아 불안할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이다.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해나가겠다는 마음. 오늘도 그 마음을 벽삼아 붙잡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