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부러워졌다. 자신의 역사를 잘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계속해서 배워나가야만 한다. 어린 시절 무엇을 좋아했고 언제 웃고 언제 울었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분명 아기로 태어나 앉고 기고 걷고 달렸을 나였는데 하나씩 새로운 모습을 창조해 나갈 때마다 나의 부모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을지 잘한다 잘한다 하며 나의 엉덩이를 두드렸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도 나에 대해 백지상태다.
큰아이를 안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아빠를 보니 내가 어렸을 때도 저렇게 나를 안고 웃음 띤 얼굴로 예쁘다 말해주셨을까 궁금해졌다. 첫째 아이는 춤이든 피아노든 인간관계든 시원시원하게 잘도 해나가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손녀다. 셋째는 귀엽고 앙증맞은 아기라 부모님은 만나자마자 안아주고 뽀뽀해 주신다. 셋째를 얼른 안아 얼굴을 비비며 신발을 벗겨주신다. 그런데 유독 둘째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으신다. 안아주는 것도 물어보는 것도 늘 뒷 순서다. 나도 둘째 아이처럼 부모님에게 두 번째 순서였을 뿐이었을까. 사랑스럽기보다 자랑스럽기보다 챙겨주어야 하는 안쓰러운 존재일까.
언니라면 받아가지도 않을 3900원짜리 시장표 외투와 바지가 나에게 들어왔다. 부모님에게 주기보다 받는 것이 먼저인 나는 싸든 비싸든 필요한 거라면 무조건 받아온다. 떳떳하게 벌은 돈으로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휴가지 등등 원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언니와는 달리 천 원 이천 원에도 만원 이만 원에도 고민을 해야 하는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극과 극으로 비교되는 존재다. 공부도 직업도 돈도 환경도 모든 것이 비교되어 부모님이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대하는 온도가 극명히 차이 나는 것처럼 언니와 나를 대하는 부모님의 온도는 여름에서 갑자기 겨울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소설책을 좋아하고 일부러 챙겨본다. 다양한 말의 표현이 있어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고 나타낼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하다. 언어라는 것을 처음 접하는 것은 부모를 통해서이고 부모의 언어습관을 그대로 흡수하게 되는데, 어쩌면 내가 다양한 말의 표현을 어려워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풍성하지 못했던 부모와의 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려니 막막해지고 백지화가 되어버리는 것이 이 때문일까. 그런 이유로 소설책은 나에게 글의 교과서가 되어 주고 새로운 언어의 세상을 맛보게 해 준다.
모르는 게 많아 배움이 인생에 다인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야 하고 그 책 속의 물음을 따라 살아간다. 나를 드러내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나는 책과 대화하며 직접적으로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 마음을 풀어나간다.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로운 존재구나 위로를 받는다. 마음을 글로 풀어내어 위안을 얻는다. 실타래처럼 얽힌 마음을 글로 정리해 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감기는 사소한 거라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그 어떤 것 하나도 사소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마음을 기울여야만 하는 삶이 되었다. 덕분에 글을 쓰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마음의 조각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게 해 준 것도 그의 사소한 마음씀 때문인지도.
마음 앓이. 무던하다 생각했던 나의 성격이 때론 그렇지 않음을 글을 쓰며 알아가게 됐다. 작은 것 하나에 마음이 쏠려 마음이 상하게 될 때면 마음 한쪽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과 따뜻한 햇살에 흘려보내야 마음에 안정을 찾고 나란 사람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마음과 감정이 있노라고 잊힐 뻔한 나의 이름을 되새겨 보곤 한다. 대화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과 마음을 글을 통해 기억해 내려 애쓴다. 그게 아이엄마이자 I인 내가 할 수 있는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를 기억하는 것.
내가 나를 기억하는 것. 그 어떤 사람에게 나란 사람이 기억되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기억하는 것이 더 큰 과제인 나다. 부당한 것도 불편한 마음도 마음 쓰레기통에 버려두는 것이 아닌 온전히 나란 사람을 내가 기억해 내기 위함으로 글을 쓴다. 다른 사람의 기대 혹은 눈총에 원하는 것을 버려야만 했던 나였기에 아프면 아픈지도 즐거우면 즐거운 지도 잘 몰랐다. 힘들면 우는 것이 다였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혹여 내 잘못이라 할지라도 나를 탓하는 것이 이리도 힘들었던 것인지, 상대를 위해 나를 부정해 왔던 시간들이 없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입도 마음도 닫게 했다.
하지만 이젠 사소한 어떤 것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꼭꼭 담아내어 글로 기억하려 한다. 그게 나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상대를 배려하는 나만의 방법이자 미워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