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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부모의 사랑과 애착

나도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였다.

셋째 아이가 최근 쪽쪽이를 떼면서 자다가 우는 일이 반복이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를 토닥이다 꼭 끌어안았다. 안정감을 주던 쪽쪽이를 대신해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는지 아이는 세차게 나를 끌어안았다. 자고 일어나서도 울음으로 엄마를 찾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이는 마치 잃어버린 엄마를 찾은 것처럼 꽉 끌어안고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아이가 자다 깨다 할 때마다 피곤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엄마의 사랑이 이리도 중요한 거였다는 걸 새삼 깨달아 아이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버텨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 내향형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혼자 있으면 어떤 이의 시선도 견뎌내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성향을 타고났다기보다는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의 양육태도 등 후천적인 영향이 더 컸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자녀를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플랜이 있어서가 아니라 늘 가족들 사이에서 외딴섬 같았던 내가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걸 택하게 됐고 좋아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관계 맺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결혼을 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혼자서는 결단도 잘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결정도 잘했지만 나의 결정을 거스르려는 상대가 있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결국 상대가 원하는 대로 결정을 했다. 나의 의사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혹은 혼자 해야 할 일들은 혼자 결정을 내리고 조용히 나의 할 일을 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가족들 중에서 나의 생각이나 의사를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다. 심지어 옷이나 신발도 무엇을 입고 무엇을 신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엄마가 옷을 하나씩 사 오셨고 그에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라는 표현도 없이 주는 대로 입고 주는 대로 먹었다. 그래서인 건지 누가 무엇을 먹고 싶으냐 물으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시댁에 가면 가끔 시어머니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시는데 나는 그때마다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말하지 못했다. 생각은 해보지만 메뉴의 가격을 떠올리면 말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고민을 하곤 했다. 결국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거리다 메뉴 결정이 끝이 났다. 우리가 오면 늘 먹었던 메뉴로 결정이 나거나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데워 먹기도 했다. 늘 먹던 순댓국이나 추어탕은 맛이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쭈굴 해진 마음은 도저히 펴지질 않았다. 엄마가 사 온 옷으로 선택 없이 입어야 했던 그때처럼 주어진 대로 먹었다.


분명히 어린 시절이 있었고 청소년기 시절이 있었는데 통으로 날아간 느낌이다. 즐겁거나 수용받았던 기억이 별로 없어서인지 드문 드문 생각나는 장면 외에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그 시절들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희뿌옇다. 혼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더 만족스러워서일까 지금보다 좋았던 적은 없었다. 아무도 나를 탓하는 사람도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도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 안심이 되어 편안함을 느낀다.




누군가 알아주지 못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글을 쓴다. 작가라는 꿈 뒤로 허망하고 슬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뒤엉켜 복잡해진 마음을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겠어서 글을 쓴다. 거리를 걷다 보면 계절마다 느껴지는 감성과 감정이 달라지는데 날씨가 달라진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겨울엔 추위와 함께 봄엔 따뜻한 바람과 함께 어쩐지 외로운 마음이 내 가슴으로 밀려 들어온다. 해결되지 않는 마음들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무조건적으로 수용받고 싶은 마음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추워도 따뜻해도 더워도 청량해도 외로웠다. 그걸 감성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태생적으로 감성적인 사람이라 글쓰기란 예술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음악이 노래가 나를 위로했다.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온도로 불어오는 바람과 음악이 섞여 내 마음과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는데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보며 나란 존재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살길 바라는 가족들의 바람과 달리 내 마음은 늘 새로운 희망과 사랑을 갈구했다. 다정한 말과 웃음이 그리웠다. 따뜻함과 다정함은 그리움이 되어 자꾸만 거리를 헤매었다. 허공을 바라보며 허공이 아니라 생각했다. 푸르른 자연과 풍경을 바라보며 감성을 채워나갔지만 알고 보면 빈 화면이었고 무채색이었다.


무관심과 비난 속에 마음은 자꾸만 다쳐갔고 나는 다정하고도 따듯한 공기를 찾으려 책을 읽었고 음악을 들었다.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어 글을 썼다. 글을 잘 쓰면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줄까. 잘 쓴다 칭찬을 들으면 기쁠 것 같아 계속해서 써내려 갔다. 사랑받기 위해 글을 더 잘 쓰고 싶었다. 더 잘 쓰기 위해 책을 놓지 않았다. 가방 속에 늘 품고 다녔다. 마치 값비싼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소중히 책을 품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책과 음악 그리고 생각과 글 그것이 다였다.




마음이 다쳐 외로울수록 아이를 더 세차게 끌어안았다. 아이를 꽉 끌어안고 사랑한다 속삭였다. 아이와 주고받는 따뜻한 숨결은 사랑이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이지만 되려 아이가 엄마에게 사랑을 더 주고 품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는 존재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러운 아이는 내게 사랑을 주었다. 따뜻한 포옹으로 아이 또한 어여쁜 소리를 내며 엄마의 사랑에 화답을 해주었다. 그 소리와 그 숨결로 삶을 버텨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어도 아이를 위해 꾹꾹 참으며 지나온 시간이었다. 찬바람과 함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12월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마음들이 꼭꼭 숨겨져 있지만 다가올 봄바람에 마음이 설렐 날이 올 거라 생각하니 올해의 마지막이 결코 두렵지만은 않다. 살아있어 줘서 살아내 줘서 고맙다.



이 글은 엄마와의 애착이 아이를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성장시킨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부모의 사랑과 애착이 평생의 행복을 좌우한다는 신념이 나를 살도록 해주었다. 이 믿음은 아이를 통해 증명이 되고 있다. 셋째를 임신하고 다짐했던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잘 지켜나가고 있음을 아이를 통해 확인해 가는 과정으로 지나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나는 부모로부터 태어나 이 세상에 왔고 내 아이 또한 부모인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왔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다. 긍정의 에너지가 아이의 온몸을 돌고 돌아 아이를 바르게 성장시킨다. 다정하고 따뜻한 온도가 아이의 체온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생명의 필수 요소가 음식이나 물 외에 사랑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사랑에서 왔고 사랑으로 흘러간다. 그러니 사랑만이 내 삶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이자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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