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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Jan 05. 2024

공감에도 연습이 필요해

남편이 오랜만에 휴가를 낸 어느 날 둘째 아이에게 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을테니 급식을 먹지 말고 나오라 했다. 그런데 아이가 급식을 먹고 나오는 바람에 식당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보다 늦어졌다. 첫째는 둘째보다 한교시를 더 하고 하교를 하고 셋째는 어린이집에서 오후 늦게 하원을 하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둘째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선생님에게 급식을 먹지 않고 하교할 수 있도록 미리 말씀을 드렸으니 수업이 끝나면 바로 나오라 이야기 했다. 아침에는 남편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점심을 먹지 말고 나오라고 또 이야기를 했지만 수업시간이 종료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왜 안나오냐는 남편의 계속된 전화에 마음이 급해져 교문 앞에서 등하교를 지도해주시는 분에게 협조를 구해 급식실로 가보았다. 아이는 급식을 다 먹고 교실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은 좀 지체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의 뒤를 따라 교실에서 가방을 가지고 나올때까지 기다렸다 같이 나오게 되었다. 아이에게 점심 먹었구나, 점심 먹지 말고 나오라 했는데...라고 말을 하며 교문을 빠져 나욌다. 학교에서 나와 남편의 차로 가는 동안 아이에게 왜 먹고 나왔는지 물어보니 선생님이 아이에게 점심을 먹지 않고 가도 된다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점심을 먹지 말고 나오라는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점심을 먹고 나온 것이다.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아이에게 왜 급식을 먹고 나왔냐 물었고 아이는 파인애플이 나와서 라고 말했다. 아빠가 파인애플이 나와서?라고 되묻자 아이는 다시 맛있는 냄새가 나서 먹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는 평소 급식표를 보지 않기 때문에 파인애플이 나오는지 알지 못했을 것인데 파인애플 때문에 급식을 먹었다는 말에 의아했다. 아이가 혼자 급식을 먹지 않고 나오는 것이 부끄러웠다든지, 반드시 점심을 먹고 다같이 하교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는 아빠에게 혼이 날까봐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음식냄새가 좋아서, 혹은 파인애플이 맛있어서 라고 말을 한 것 같다.


아이가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챈 이유는, 아이가 목욕탕을 가고 싶다 했을 때 그럼 4교시인 날에 점심을 안먹고 나오면 일찍 목욕탕에 도착해 더 많이 놀수 있으니 점심을 먹지 말고 나오라 했는데 아이가 안된다고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점심을 먹고 나와야만 한다고 했다. 안먹더라도 친구들이 다 먹을때까지 교실에서 기다리다가 친구들이 점심을 먹고 돌아왔을 때 같이 하교를 해야 한다고 말을 했었다. 


아이는 엄마인 나와 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어떤 기분인지 솔직하게 말을 하는 편인데 아빠와 있을 때는 솔직하게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할 때나 동생이 자신의 물건을 가져갔을 때, 언니와 투닥거릴 때 큰소리로 칭얼대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에게 혼이 났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떤 이유에서 그러는지 묻기 보다 떼를 쓰지 말라며 언성을 높였다. 평소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 자신의 논리나 원칙으로 가족들이 따라주기를 바랐다. 아이는 아빠에게 혼이 날 때마다 주눅이 들어 자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무멋을 원하는 지 말하지 못했다. 아이가 점심을 먹지 않고 혼자 나오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점심을 먹고 나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상황이 반복이 되면 늘 다른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는 아빠 엄마와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은 좋지만 혼자 나오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밥을 먹고 나왔어요.' 라고 말을 했더라면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게 왜 부끄러운 일이냐고 아이의 느낌을 무시했을까?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아무렇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남편을 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해는 되지 않더라도 긍정의 표현을 할 수도 있는데 그 마저도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존중받았던 경험이 부재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좋은 의도를 가진 부모, 교사, 성직자, 그 밖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인간적으로 제약하는 것들을 배워왔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읽어 내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의식을 적극적으로 막아 버리는 문화적 훈련을 받았고, 자신들의 욕구를 인식하는 일을 억제당하고, 권위에 온순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 받았다고 한다.


평소 남편이 말을 잘 들어라 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에게도 말을 잘듣는 착한 와이프가 되길 바란다. 남편은 자신의 원가족 안에서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수평적 관계보다 수직적관계로서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며 자라왔기 때문에 부모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권위자의 모습으로 자녀를 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욕구와 감정을 숨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성격적인 면으로만 해석하기보다는 문화적인 것으로 설명했을 때 좀더 와닿는 것 같다.  


아이에게 솔직해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나 또한 남편에게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의 느낌과 욕구를 말했을 때 거절당할거라 생각해 혼자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다. 아이들이 놀다 집안이 어지러워지면 남편은 "이거 얼른 치워, 안치우면 갖다 버릴거야"라고 말을 하는데, 이 말처럼 남편의 말은 협박?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거의 매일 이런 말들을 들으며 사는 아이들이다. '얘들아 재밌게 놀았지? 이제 잘 시간이니 다같이 정리하자'라는 말처럼 좀 더 부드럽게 이야기 해주면 좋을텐데, 아이들은 명령처럼 느껴지는 말을 들을 때마다 표정을 숨긴채로 입을 꾹 다물고 정리를 한다. 


나 또한 늘 상대를 생각하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몸이 피곤할 떈 아이들에게 빨리 정리하도록 재촉하게 된다. 아이들이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지 않았을 때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독려 해야 하는데 왜 자신의 할일을 해야만 하는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는다. 아이들을 혼내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아이에게 늘어놓고 있다. 때때로 아이들은 이런 나의 말과 태도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이들을 혼내 놓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연출된다.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감정을 조절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뒤돌아 서면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다시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을 해본다.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아이가 아닌 내 안에서 찾는다. 마음과 몸이 편안할 땐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아이의 편에서 말을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땐 나의 욕구가 먼저라 생각해서인지 감정이 앞서 아이를 힘들게 하곤 한다. 아이들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 부모인 나는 당장 나의 욕구가 급해 억지로 화를 내서라도 아이가 하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님을 안다. 반성을 해보지만 시간이 지나 같은 상황이 생겼을 때 또 언성을 높이는 나를 보게 된다.


무언가를 잘 하려면 꾸준한 연습을 해야하 듯 감정을 조절하며  말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말을 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꾸준히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며 말을 할 수 있도록 나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은 경험이 평생의 자산이 될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자신감있게 행동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부모에게 존중 받았듯이, 존중하고 공감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의 행복한 현재와 미래를 위해 남편과 내가 달라져야 함은 분명하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변화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억압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면 독립된 어른으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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